최귀옥

[한국농어민신문]

농어촌여성문학회 충남 모임이 있는 날이다.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고 설렌다. 천안 김 회장이 당진 버스터미널로 트럭을 몰고 왔다. 함께 가는 목적지는 서산시청 부근이다. 

탁 트인 길을 달린다. 차창 밖의 야트막한 지붕, 낮은 산, 빈들에 내려앉은 햇살이 따스해 보인다. 봄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서산시청에 도착하니 청사 앞 나무들이 시야를 압도한다. 수많은 세월을 압축해 놓은 듯 우람한 기상에 겸허해진다. 수령이 삼백 년이라는 이 느티나무는 대체 사람의 몇 생을 산 것인가. 지금이 백 세 시대라고 하지만 사람은 백 년 살기가 어렵다. 우리네는 늙을수록 고집스럽고 초췌해지는데 나무는 나이 들수록 그 자태가 형언할 수 없이 경이롭고 아름다워진다. 긴 세월 갖은 풍상에 꺾여지고 휘둘리면서도 뿌리 깊게 살아남아 아름드리가 된 나무. 이 도시의 살아 숨 쉬는 역사로 우뚝 선 나무가 존경스럽다. 삼십년 지기 문우들을 만나러 와서 삼백 살 느티나무를 보고 감동한다. 우리는 무엇으로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 가슴에 화두 하나 새겨본다. 

대한민국 팔도의 농촌에서 흩어져 사는 문우들이 매년 작품 활동을 함께 한지도 정확히 32년 되었다. 촌부의 삶을 작품화하고 농촌살이를 집대성한 동인지 『농어촌여성문학』을 28집까지 출간했다. 나무가 한 해 한 해 나이테로 굵어지듯이 우리의 예술세계도 뿌리가 깊어져 가는 중이다. 잠시 문우들을 기다리는 동안 상념에 젖는다. 코로나 때문에 3년간 못 만나면서도 매년 작품집을 출판해낸 저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농업과 농촌 환경이 풍요롭고 살기 좋아서 한가하게 취미활동을 하기 위함일까. 속속 도착하는 문우들과 자리 잡고 앉으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식사 후 각자 써 온 글을 낭독하며 감상 겸 공부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삶에 있어서 바람 불고 눈비 온 날의 기억을 더듬어 마음 근육을 탄탄히 다지는 농사를 짓는 것이다. 코로나로 격조했던 시기에 누구는 코로나로 가족을 잃고, 누구는 병상에 쓰러진 환자가 있다. 교통사고로 한 해의 수입을 몽땅 지출한 사건도 있었으며, 수몰된 고향의 추억을 건져낸 작품도 있다. 이런 일들은 누구에게라도 닥쳐올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하니 숙연해진다.

32년 전 <흙을 사랑하는 우리, 글로 하나 되는 마음>이라는 주제로 한국농어민신문의 주선으로 모였던 우리. 그때 그 시절 농촌은 어려웠고 우리 촌부들은 젊은 용기 하나로 지적 호기심이 충만했었다. 이제 나이 들어서 나무같이 늠름하지는 않지만, 자연에 순응하며 때로는 극복하며 살아온 내공이 쌓였다. 

그러나 쌓인 내공에도 한계가 있다. 농촌은 이제 젊은이가 없다. 그리고 정치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럴수록 우리 문우들이 담아내고 있는 작품 속의 문제의식을 숙제 삼아 흙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길게 갈 것이다. 겨울 짧은 해를 아쉬워하며 우리 충남 회원들은 그간의 안부와 격려 속에 우정을 다진 소중한 시간이었다. 우리 소중한 만남이 이어지는 그날까지 스스로를 다그치는 구도의 글쓰기를 멈출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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