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경

[한국농어민신문] 

삼 년 만에 잔치를 열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천일이 넘는 동안 남의 집 대문조차 함부로 두드릴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해가 바뀔 때마다 인구가 줄어드는 농촌, 사람 구경이라도 할 수 있고 두 다리 쭉 펴고 소통할 수 있는 마을회관마저 자물쇠에 채워졌다. 어른들은 살다 살다 코로나의 생뚱맞은 질병에 위협을 받는 건 처음이라며 몸서리를 쳤다.

마스크를 벗고 함께 식사해도 된다는 해제 명령이 떨어졌다. 이참에 초년생 이장과 부녀회장은 동리 계를 열어 음식 대접을 하겠다고 했다. 그간 마을에는 코로나로 한 분이 돌아가셨고 어머님과 이웃집 어른이 요양원으로 가셨다. 몇 분은 등급을 받아 주관보호센터를 다니기도, 아예 바깥출입이 어려운 어른도 있다.

질병으로 갇힌 시간이 길어 지친 탓일까. 부녀회 쪽에서 음식을 만들 수가 없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50여 가구가 사는 우리 동리에 환갑 아래의 아낙은 다섯 손가락도 안 된다. 그마저 생업에 종사하다 보니 자유롭지 못하다. 이장과 부녀회장도 곧 환갑에 든다. 상의 끝에 음식점에서 맞춰오기로 했다. 마을회관에 모여 음식만 차려내면 되니 일이 확 줄어든 셈이다.

그 소식은 집집이 급습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한나절도 안되어 일이 틀어졌다. 큰일 때마다 음식을 주도해 왔던 왕언니를 비롯해 그 또래 언니들이 누가 뒷수발을 드느냐, 이제는 늙어 설거지도 못 한다는 항의가 빗발쳤다. 이웃 동리도 식당으로 나가 모임을 하는데 우리 할멈들도 제대로 대접받아야겠다는 것이다. 당황한 초짜 임원진은 맞춘 음식을 취소하고 식당에서 모이기로 했다.

손만 씻고 면 소재지의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의 메뉴 삼겹살이 담긴 접시가 수시로 들어온다. 45명의 손님을 위해 분주한 식당 주인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몇몇 안 보이는 분이 계셔 안부를 여쭈니 거동이 어려워 참석을 못 하였단다. 세월 앞에 장사는 없다지만 걱정이 앞선다. 우격다짐하듯 몰아세운 것이 다소 미안했는지 왕언니가 말한다.

“어뗘, 내 말대로 하니 신세 편코 대우받아 좋지?”
“맞아유. 언니들 말 안 들었으면 젊은 할미들 손에 물 마를 새 없었을 거유.”

왕언니는 웃단말에 사는 대종손의 오빠에게 시집을 온 이후로 손이 갈퀴가 되도록 농사일과 집안 대소사에 큰 몫을 해냈다. 시할머니에 시부모, 철없는 시동생과 시누들까지 출가하기까지 긴 세월 수고가 많았다. 농사지어 삼 남매 대학 보내고 앞앞이 아파트도 한 채씩 해줬다.

또래의 언니들 역시 그리들 살아왔다. 동리 큰일이 있을 때마다 밤잠 설치며 앞장선 언니들이 이제는 우대받고 싶단다. 벌어진 다리 굽은 허리 골 깊은 주름살이 지나온 역사를 대변한다.

농촌 마을마다 누군가 앞장서는 사람은 꼭 있다. 우리 동네에도 애경사가 있을 때마다 치맛바람 난리며 극성맞도록 전통을 이어온 사람들은 왕언니들이다. 때로는 일방적인 것 같지만, 아무리 큰일도 해내고야 마는 주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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