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희

[한국농어민신문]

올해 2000평 밭에 미니 밤호박 6000주를 심었다. 딱히 돈 나올 작목이 없다 보니 이 지역에서는 많이 심는다. 인건비가 4000만 원 정도 들어간다. 인건비나 건져 볼까 해서 새로 조성한 키위밭 사이로 3년째 간작을 하고 있다.

7월 5일 진도에 400m가 넘는 비가 짧은 시간에 내렸다.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폭포처럼 부었다. 밤새 쳐대는 천둥 번개에 차단기를 내리고 뜬 눈으로 긴 밤을 지새웠다. 동이 뜨는 새벽에 밖으로 나가보니 도로에 물이 잠겼다가 빠진 흔적이 뚜렷했다. 내가 시집온 1984년 이후 가장 많이 온 비였다. 주변 정리하랴 피해신고하랴 정신없는 날이었다. 읍내 시가지가 잠기고 넓은 농경지가 바다가 되고 차량이 운행하기 힘든 지경이었다.

오후쯤 되자 물이 어느 정도 빠져서 들에 다녀온 남편은 밭 언덕이 많이 무너졌다며 일을 많이 하게 생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진이 네는 벌써 호박순을 다 잘랐는지 순이 다 시들었다고 했다. 친구네 호박밭이 다 다 따지도 않았는데 왜 그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는 밭마다 호박순들은 처져서 시들고 호박들은 뜨거운 햇빛에 나뒹굴고 있었다. ‘에구, 우리 호박도 다 죽었겠구나’ 하는 포기하는 마음이 들었다. 좀 힘든 해가 되겠다는 생각에 막막한 마음으로 밭에 도착했다.

이제껏 무농약이 좋다는 이론과 조그마한 실험을 통한 믿음으로 농사지은 밭이다. 유기농으로 전환하기 위하여 올해에는 화학비료도 쓰지 않았다. 무농약이 무엇인지, 자연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보여주려고 했던 걸까. 호박밭은 그 무서운 물난리를 겪고도 노오랗고 환한 꽃을 많이도 피우고 있었다. 세상의 폐허 속에 우뚝 선 낙원 같은 모습이었다.

이번 재난을 겪고 나는 의심 없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되었다. 땅이 건강해야 인간도 건강하다는 것이다. 건강한 땅만이 건강한 생명을 키우기 때문이다. 호박은 잘 되어서 평년과 같은 수확을 해서 판매 중이다. “무농약 농사는 약값도 안 드니 더 싸야 하는 것 아닌가요?” 기가 차는 질문이다. “약은 안 하지만 많은 노력을 해서 땅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답니다.” 이 답에서 말하는 수고의 크기를 가늠이나 할까.

내 나이 서른 때였다. 남편은 우수후계자 자금을 받아 야산을 사서 개간을 시작했다. 큰 중장비가 와서 잡목들을 제거하고 밭 형태를 만들어 주었다. 축사에서 나오는 퇴비를 발효시켜 해마다 넣었다. 토양개량을 위하여 석회도 3년에 한 번씩 뿌리고, 밭 만들기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흙만 있다고 작물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실패, 소득 없는 수고가 지나고서야 땅은 좋은 작물을 보여주었다. 키재기에서 늘 작물보다 일등인 풀들, 덕분에 인건비가 많이 들었다. 농사는 형편없고 김메고 돌아서면 또 그만큼 커 있는 풀들이었다. 끝내 지는 것이 나였다.

주변 어르신들은 답답하다며 제초제를 뿌리라고 권하셨다. 아! 나도 그러고 싶었다. 제초제 한 병 5000원, 두어 시간이면 서너 달은 편할 텐데. 늘 이런 유혹에 빠지는 걸 감시하는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남편이었다. 풀도 죽는데 사람한테 좋겠냐며. 그 작물을 인간이 다시 섭취하니 이름 모를 병이 생긴다고 긴 설명을 들어야 했다. 사람도 한번 아픈 사람은 아프기 전보다 건강할 수 없다. 작물도 마찬가지다. 건강하게 자란 작물이 몸에 좋은 것이지 아팠던 작물이 몸에 좋을 리 없다. 긴 세월 동안 토양을 건강하게 만드느라 소득이 낮았다.

땅은 이제야 건강함을 과시하듯이 풀도 쑥쑥 작물도 쑥쑥 키워낸다. 폭포수와도 같은 엄청난 비를 맞고도 흔들림 없이 열매를 키워내고 있는 나의 호박. 무농약이 이리도 대단한 것임을 재난 후에 알았다. 올해는 남편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승리하는 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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