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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나의 하루형효순

물을 끊인다. 한 잔의 국화차로 지리산 자락이 거실에 들어선다. 지난 가을 지리산에서 따다 말린 감국 향기로 오늘을 열었다. 그곳을 한 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는 곳에서 산다는 것이 내게는 은근한 자랑거리다. 지리산을 가끔 내 개인 재산인 것처럼 뻥튀기도 한다. 속으로 마음먹었다고 누가 뭐랄 사람도 없으니 이 보다 큰 부자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혼자 의기양양 해 하는데, 팥죽을 쑤어 놓았으니 빨리 회관으로 나오라는 형님의 큰 목소리에 뒤꼍 대나무 숲에서 화들짝 비비새가 날아오른다. 

아침 먹고 이것저것 치우고 회사에 출근하듯이 마을사람들은 회관으로 모여든다. 서리태 한 되가 얼마를 하고 들깨 값은 내리고 콩과 팥 값이 올랐다는 이야기부터 어젯밤 감기로 몸살을 앓았다고 필요 이상 엄살을 부리는 동실 아짐과, 서울 아들집에 가서 닷새가 있어야 내려온다는 영천 댁 소식으로 들썩인다. 손자자랑, 며느리 흉, 시어머니 흉, 참 요즘은 최순실 욕과 대통령 욕도 곧잘 하다 하루해가 저물고 10원 내기 고스톱으로 하루가 짧다. 농촌의 겉모습은 지금 이대로라면 아무것도 걱정이 없는 듯하다.

회관에 출근 하는 것이 싱거워지면 진돌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선다. 진돌이는 오랜만에 신이 났다. 제 꼬리를 물고 빙빙 돈다. 지난여름 뙤약볕에 벼를 안고 키우던 논들은 자식을 떠나보낸 어머니의 가슴처럼 적막하다. 쌀 한 톨에 땀 한 방울씩 들어 있는 쌀이 자꾸만 천대를 받고 있다고 생각되자 안이했던 방안에서의 생각들이 눈밭에 찍힌 진돌이 발자국만큼 어지러워진다. 농민이 쌀을 지키는 것은 생명을 지키는 것과 다름없지만 어디에 대고 목소리를 높여야 제대로 지켜질지 의문이다. 떨어지는 쌀값에 자존심도 떨어진 것이 어제 오늘이 아닌데 새삼 바람이 차고 어깨가 시린 것은 촛불 집회에 동참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도 있다.

어제 시내에서 만났던 지인의 옷이 쌀 일곱 가마 값이었는데 그 옷을 사려면 한 해 동안 서마지기 벼농사를 대신해야 입을 수 있다. 바람소리 따라 그녀의 자랑이 윙윙거린다. 설사 내게 그냥 입혀 준다 해도 일곱 가마의 쌀 무게에 어깨가 편치 않을 것 같다. 쌀값을 기준으로 모든 생활용품들을 계산했다가는 하루도 버티기 어렵지만 그래도 사철 공으로 누리는 산과 들이 있어 위로가 된다. 아니 그 보다 동고동락 할 다정한 이웃이 있어 괜찮다. 다행히 우리 마을은 빈집을 사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가니 앞날이 그리 어두운 것 만 아닐 것으로 기대한다. 찾아와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드는 것도 우리들의 몫이다. 잘 생긴 수탁이 그려진 달력이 여기저기서 들어 온다. 새벽에 어둠을 몰아내는 닭울음소리는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 제발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대통령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수탁의 호기로운 울음소리에 보태 본다.
 

   
 

형효순
전북문인협회 회원, (사)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장 역임
행촌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재주넘기 삼십년’, ‘이래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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