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안

[한국농어민신문]

네 살 손녀 하윤이가 올 시간이다. 제 어미가 퇴근할 때까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아이와 한 시간 정도 놀아주는 것이 농한기의 내 일과다. 기온이 뚝 떨어진 날씨에 꽁꽁 싸매고 나왔는데도 몸이 움츠러들 정도로 거친 바람이 분다.

어린이집 노란 버스에서 내린 하윤이의 손을 잡고 집을 향해 달린다. 저만치 줄에 매여 있는 강아지 ‘나무’가 빨리 오라고 채근이다. 어찌나 카랑카랑 짖어대는지, 손녀는 할미의 손을 놓아버리고 강아지를 향해 달려간다. 넘어질 듯 위태롭게 달리는 아이를 멈추게 한 것은 노을에 물든 서쪽 하늘 아래 막 어두워지는 산마루다.

“할머니, 저 산 좀 보세요. 낙타 같아요.”

“어디? 어디가 낙타 같아?”

“저기 보세요. 산이 낙타 혹처럼 볼록하잖아요.”

세상에나. 저 구불구불한 산등성이는 분명 해 질 녘 사막을 건너가는 낙타 모습이 아닌가. 고개를 들고 먼 데를 바라보며 저렇게도 깊은 상념에 잠긴 쌍봉낙타를 나는 여태 본 기억이 없다. 태어나서 예순 중반이 되도록 농촌에서 산과 들만 보고 살았거늘, 어째서 나는 숱한 이야기를 간직했을 법한 저 고독한 존재가 곁에 있음을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더란 말인가.

그러는 사이 강아지는 쉬지도 않고 짖으며 빨리 오라고 방방 뛴다. 다시 뛰는 하윤이가 또 멈추더니 뒤돌아선다. 얼굴을 덮친 바람에 숨쉬기가 어렵구나 싶어 뛰어가 품에 안는다. 그런데 아이는 내 품에서 빠져나오더니 바람에 실려 우르르 날아가는 낙엽을 향해 달리며 소리친다.

“얘들아, 언니가 구해줄 게. 걱정하지 마!”

낙엽을 쫓는 아이를 앞질러 가 느티나무 낙엽 두 장을 주워 고사리손에 쥐어준다. 겨우 두 장밖에 못 구한 아이는 센 바람에 속절없이 날리는 많은 낙엽이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강아지가 빨리 오라며 짖어도, 감기 걸린다고 그만 들어가자고 할미가 재촉해도 마이동풍이다.

얄밉게도 바람은 낙엽이 편안하게 한곳에 머물도록 가만두지 않고 불어댄다. 방향도 일정하지 않다. 바람 따라 이쪽저쪽으로 새 떼처럼 날아올랐다 내려오기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하윤이는 꼼짝하지 않는다. 할미의 외투로 감싸 안고 바라보기를 한참 지나자 드디어 바람이 잦아든다.
새처럼 날던 낙엽들이 비로소 쉴 곳을 찾았다. 사철나무 울타리에 기대 수북하게 자리 잡은 낙엽들이 마음 놓이는지 하윤이는 그제야 강아지에게로 뛰어간다. 힘든 시간을 건너 오늘에 이르렀는데 지금까지도 시달리는 낙엽이 어쩐지 짠하다.

올봄 날씨는 유난히 거칠었다. 태풍에 버금가는 강풍이 봄 내내 불며 건조한 땅을 더 메마르게 했다. 척박한 환경에도 싹을 틔워 키를 키워가던 잎새에 시련이 찾아든 때는 여름이었다. 성큼성큼 진초록을 향해 힘찬 발걸음 내딛던 시기에 두 달간이나 줄기차게 내린 비는 치명적이었다. 햇빛을 받지 못한 온 산하의 식물이 모두 고통 받았다. 피지도 못하고 져버리는 꽃들, 익지도 못하고 떨어지고 만 열매들, 가을이 깊어가도 곱게 물들지 못한 잎새들…. 그 속에서도 꽃은 피어났고 열매는 익었으며 잎새는 있는 힘을 다해 물들이고 한해의 삶을 마감했다. 네 살 손녀 덕분에 내 눈이 밝아진 걸까. 저들이 겪은 시련 따위에는 관심도 없던 마른 감성이 이 시간 문득 촉촉해진다.

핑계는 있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에도 벅차 앞만 보고 달려왔다. 틈만 나면 행복해지고 싶었지만 심술궂은 운명은 불쑥불쑥 내 삶에 끼어들어 간섭하고는 했다. 그것은 세찬 바람 같아서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마치 농사꾼에게 잔인했던 지난여름의 날씨처럼 불가항력이었다. 부러지고 찢기는 세월을 건너는 동안 내 감수성이 억눌린 것이 아닐까.

아이의 투명한 시선은 맑은 물과도 같아 켜켜이 쌓인 응어리도 씻어 주는가 보다. 선연하게 보이는 낙타를 보는 눈도 멀고, 바람에 시달리는 낙엽에 대한 측은지심도 없던 심성. 처음에는 내게도 있었을 그 순수한 시선이 이 시간 다시 깨어나고 있다.

하윤이는 이제 제 키 높이만큼 뛰어오르며 애정표현을 하는 강아지 ‘나무’ 앞에서 까르르 웃음을 터트린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지난 여름날의 맹렬했던 열기처럼 뜨겁게 한 시절을 살아낸 나 자신에게 악수를 건넨다. 한여름 들풀처럼 강하게 살아온 지난 수십 년. 수고했다 격려하며 이제는 유록빛 봄풀처럼 연하게 살아가자는 의미가 담긴 악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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