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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파트너박윤경

[한국농어민신문]

트로트를 들으며 농장 울타리 주변으로 호박 모를 심는다. 노래를 따라 부르며 모종을 하다 보니 표실 포실한 흙살의 촉감이 좋다. 음악과 함께 일하는 농부는 나뿐만이 아닌듯하다. 농장 앞 논에서 논갈이하던 트랙터가 잠시 쉴 때마다 열네 살의 신인가수 노래가 흐른다. 그 옆 오이 하우스에는 종일 노래를 틀어준다. 오이 맛이 아삭아삭하지 않을 수 없다. 들일을 하면서도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건 핸드폰의 유튜브(YouTube) 덕이다. 엉덩이까지 실룩이며 한창 일을 하고 있는데 ‘카톡카톡’ 알림이 울린다.

따끈따끈한 동영상이 도착했다. 여섯 살 손자가 식탁에 올라 ‘파트너’의 노래를 부른다. 엄지손가락은 추켜세우고 다리는 들었다 놨다 박자를 맞춘다. 길게 음을 빼는 동작에선 허리까지 뒤로 젖히며 가수의 동작 하나하나 그대로 따라 하는 모습에 박장대소가 절로 나온다. 손자 바보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간지러웠는지 산새들도 신이 난 듯 지지배배 지저귄다.

호박 모를 다 심은 후 마스크를 쓰고 마트로 향한다. 어머님이 좋아하는 사탕과 초코파이를 사 들고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애미 왔니?” 아련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어머님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햇살이 너무 눈 부셔 영산홍 그늘에 앉아 계신 어머님을 보지 못한 것이다. 활짝 핀 영산홍이 돋보여서일까. 오늘따라 어머님의 등이 더 굽어보인다. 한동안 자손들을 만나지 못한 탓이려니 싶어 특효약을 꺼내 들었다. 증손자의 동영상이다. 때때로 말씀이 없거나 화가 난 듯 할 때 들이밀면 만사가 풀린다. 커피믹스 한잔을 타 드리며 동영상에 담긴 증손자의 모습을 보여드렸더니 함박웃음과 함께 신나게 손뼉을 친다.

그러다 느닷없이 “오늘이 음력으로 며칠이니?”라고 하신다. ‘코로나 19’로 절에 가지 못하면서 음력 날짜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눈을 찡그리며 핸드폰의 달력을 확인하는 순간, 아차! 가슴이 콩닥콩닥 얼굴까지 화끈 달아올랐다. 어머님 생신이 여드레나 지나가 버린 것이다. 윤사월 윤달이 든 올해는 음력이 빨리 찾아왔다. 바이러스 여파 때문이었는지 모두 새까맣게 잊었다.

혁신도시 빵집으로 달려가 케이크를 사고, 근처 반찬가게를 들렀더니 마침 미역국이 있다. 잡채와 달걀부침 등 반찬 몇 가지를 더 사서 부리나케 집으로 왔다. 어머님은 여전히 영산홍 아래 앉아 계신다. 한 짐 챙겨 들고 서 있는 며느리에게 많이 서운했던지 쉽게 엉덩이를 들지 않으신다. 여우짓을 아니 부릴 수가 없다. 처음으로 간지럼을 떨어본다. 케이크에 촛불을 밝혔다. 손자 목소리보다, 온 식구가 함께 부르던 축가보다 더 크게 손뼉을 치며 나 혼자 노래를 불렀다.

“생신 축하합니다. 어머님의 생신을 축하합니다.”

한 곡 더 뽑기로 했다. 손자의 동영상을 틀어놓고 ‘파트너’ 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나도 멋진 트로트 가수가 되어 보았다. 신나게 손뼉 치는 어머님의 모습에 내 목소리가 음 이탈을 한다. 고부간으로 만나 철부지 며느리를 보듬어 주신 사이 어느새 여든아홉, 살결엔 밭고랑보다 더 깊은 주름이 골골이 패어있다.

코로나 19의 첫 확진자가 나온 지 넉 달째, 봄이 무겁게 지나가고 있다. 많은 확진자가 나올 땐 마스크 한 장 값이 돼지고기 두 근 값보다 비쌌다. 한몫 챙기려는 꾼들까지 극성을 부려 마스크 대란을 초래했다. 구순을 앞둔 어머님 역시 살다 살다 이런 난리는 처음이라며 손수건을 접어 손수 마스크를 만드셨다.

사람이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갑갑증이 증폭될 시기에 마음의 위안이 되어준 건 신인 트로트 가수를 뽑는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 역할이 컸다. 시청률이 역대 최고라고 했다. 매일 재방송을 시청하여도 질리지 않는 트로트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큰 힘이 되어주었다.

나는 트로트를 좋아한다. 사료 포대를 짊어질 때부터 구구절절한 가사가 좋았다.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면 나의 삶을 그대로 말하는 것 같았다. 힘든 상황을 이겨내면 쨍하고 해가 뜨듯 소원이 꼭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가사마다 굴곡진 삶이 담겨 있어 울컥할 때도, 인생은 다 그런 것이라 받아들이며 위안을 삼기도 했다.

미스터 트로트의 준결승전에서 열네 살 소년과 맏형이 함께 부른 ‘파트너’의 가사처럼 오래전부터 어머님과 나는 동반자였는지도 모른다. 아들딸, 며느리 손자까지 온 가족을 아우르며 함께해 온 파트너, 어머니 얼굴의 골이랑이 내 얼굴에도 하나둘 닮은꼴로 짝을 이루어 간다.

꽃밭을 찾은 벌들이 꽁지깃을 유달리 분주히 움직이는 봄날, 어머니와 나는 손자의 재롱이 흐르는 휴대폰 동영상에 흠뻑 빠져 바보 웃음을 흘린다.

/박윤경 문예한국등단, 진천문인협회 회원, 대소창작교실 회원,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장 역임, 수필집 ‘멍석 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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