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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검둥이최승옥
   

과수원 맨 꼭대기 밭에 심은 고구마 잎이 무성하다. 111년 만에 온 무더위가 무색할 만큼 고구마 고랑 옆에 심은 콩 이파리까지 웃자라고 있다. 이렇게 푸지게 올라오는 모습을 바라보니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미소가 절로 퍼진다.

예년 같으면 날짐승과 들짐승에게서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치를 시기인데 대풍이 엿보이니 영문을 모르겠다. 주위를 살펴보지만 짐승 발자국조차 찾아 볼 수 없다. 검둥이만이 꼬리를 뒤흔들며 졸졸 따를 뿐이다. 의아해하며 검둥이를 불러 쓰다듬어 주다가 아하! 누가 문지기였는지 깨닫고 박수를 쳤다.

콩을 심어놓고 나면 맨 먼저 기웃대는 도둑이 산비둘기다. 아기 탯줄처럼 콩잎이 콩대가리를 매달고 삐져나오기 시작하면 이놈들은 어디에 숨어있다 나타나는지 떼거리로 날아든다. 날짐승은 여간 민첩한 게 아니다. 찌그러진 냄비를 두드리면 그때 뿐, 사람이 저만치에 있다는 걸 먼저 알고 싹쓸이를 하려 든다. 콩대가리가 콩잎으로 자라고 콩대가 제법 올라올 때까지 지켜내면 이번에는 고라니놈이 뛰어들어 콩대까지 먹어치운다. 어찌어찌 해서 고라니의 푸진 먹성을 비껴 자라난 것들에 콩꼬투리가 조롱조롱 열리면 최고의 강적 멧돼지가 콩밭을 노린다. 멧돼지가 쳐들어오면 밭을 아예 초토화 시켜버린다. 밭고랑에 주저앉아 하늘을 보며 삿대질을 해본들 빼앗긴 자의 울분이 허공에 맴돌 뿐이다.

곡물을 지켜내려 허수아비를 세워 보지만 허사다. 풍선인형도 소용없다. 지팡이에 긴 헝겊을 묶어놓거나, 길고 반짝이는 줄을 매 놓아도 저들의 침입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밭을 놀릴 수도 없고 곡식을 안 먹을 수도 없어 농사꾼은 또 다시 고구마도 심고 콩도 심었다. 올해도 작년처럼 도둑맞을 각오를 하고 큰 기대 없이 과수원 위 밭을 일구었다. 이후론 위 밭 근처는 아예 발길을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올 같은 무더위에 절반은 타 죽었거나 짐승의 밥이 되었으려니 싶어 거들떠보지 않았다. 단지 과수원부터 밭 고랑사이사이를 제 운동장인양 활보하는 검둥이만이 오르내렸을 뿐이었다. 

오랜만에 콩밭으로 올라갔다. 매년 짐승의 먹이가 되어 올해도 그렇겠지 싶어 별 기대도 안 했다. 그런데 저만치 콩밭이 보일 때 예상과 달리 파란 이파리들의 나풀거림이 보여 의아했다. 바로 위쪽 산에서 잡목이 번져 자라난 나뭇잎이거니 했다. 가까이 올라갈수록 얼기설기 뻗어 나가는 고구마 넝쿨이 보였다. 잎이 내 손바닥만 하다. 그 옆의 콩잎도 웃자라 줄을 서 있는 모습이 갓 군입대한 청년의 모습처럼 늠름했다. 신기하여 고랑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숨죽이고 있던 산비둘기가 화들짝 놀라 날아가 버린다. 검둥이가 컹컹 짖어대며 쏜살같이 달려가 비둘기를 쫓는다.  

검둥이는 우리 집 누렁이가 낳은 칠 개월 된 새끼다. 작년 추운 겨울에 누렁이가 모두 여덟 마리 새끼를 낳았다. 그중 막내로 태어난 검둥이는 다른 강아지형제들보다 유달리 자그마했다. 새끼들 틈바구니에서 잘 자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조막만 했다. 한 달반쯤 지나 다른 강아지는 입양을 보냈는데 검둥이는 우리가 키우기로 했다. 한 마리의 밥을 챙겨주다 두 마리를 챙기려니 그도 일이 컸다.

그런데 이 녀석은 지 귀염 지가 받아야 한다는 걸 아는지 애교가 보통아 아니다. 남편 발소리나 화물차 소리만 듣고도 꼬리는 살랑살랑, 머리는 땅바닥에 콕 처박고 엉덩이를 하늘로 쳐들며 아양을 떤다. 하는 짓마다 귀여울 때가 많다보니 남편이 밥을 더 잘 챙겨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평화로운 우리 과수원 풍경과는 달리 바깥은 점점 더 무서운 세상이 되어간다. 어린 것에게 폭행을 일삼는 일부 어린이집의 교사, 서슴없이 부모를 해하는 자식 등,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심한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개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는데 검둥이를 보면 정말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무더운 이 여름, 검둥이 덕에 우리 과수원이 푸르르다. 검둥이를 데리고 계곡으로 향한다. 물놀이를 즐길 참이다. 앞서가는 검둥이 꼬리가 유난히 반질반질 힘이 넘친다.

최승옥 / 문학미디어 등단,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원, 음성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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