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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사랑이 밴 맛구슬 찰옥수수박래녀

<맛구슬 찰옥수수 팝니다>

올해도 오월 말이 되자 동네 입구 갓길에 표지판이 붙고 굴다리 밑에 난전이 벌어진다. 평상이 놓이고 솥이 걸리고 장작도 수북하다. 아침 일찍 꺾어 온 찰옥수수는 마른 수염을 달고 땅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동네 할머니 두엇 앉아 옥수수 껍질을 벗긴다. 촌부는 아궁이에 불을 붙인다. 찰옥수수는 푸르고 거친 겉피를 벗고 하얀 속살을 드러낸다.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찰옥수수는 제철을 잊고 알이 통실하다. 옷을 다 벗긴 옥수수를 솥에 넣어 삶는다.

도로가에서 벌어지는 진풍경에 지나는 차들이 주차한다. 손님들은 뜨끈뜨끈한 옥수수를 먹는 동안 잠시 쉬어가는 것이다. 물론 시골 인심은 후해서 덤도 푹푹 퍼 주고, 이웃끼리 서로 팔아주기도 한다. 농사지을 때는 힘들어도 퍼낼 때는 신나는 것이 촌부다.

나도 한때 그 대열에 끼어 옥수수 장사를 했다. 비닐하우스 두 동에 옥수수 농사를 지었다. 판로가 시원찮아 고민할 때 작목반에서 거리장사를 해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거리 장사 첫날은 손님이 와도 부끄러워 쭈뼛거렸지만 나중에는 재미를 붙였었다. 고생스러워도 도매로 넘기는 것보다 소매로 파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한해는 찰옥수수를 따러 갔더니 도둑이 들었다. 이쪽 비닐하우스 골에 익은 옥수수를 따 놓고 다음 비닐하우스에서 옥수수를 땄는데, 익은 옥수수를 다 따 놓고 실어내려고 보니 먼저 따 놓은 옥수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무성한 옥수수 그늘에 묻혀 일하느라 사람이나 차량이 지나다녀도 무심했던 것이 탈이었다. 누군가 한 골의 찰옥수수를 싹쓸이해 간 것이다.

농산물 도둑질 하는 사람은 진짜 양심 없는 사람이다. 몇 달을 지극정성으로 키워 수확을 해도 생계비도 건지기 어려운데 남의 손까지 타 버리면 그런 허탈감이 없다. 농사 포기하고 싶어질 만큼 맥이 빠지지만 농사꾼이 땅을 놀릴 수는 없다. 촌부는 농사에 인이 박혀서 손해 보는 장사라 해도 제 철이 되면 또 씨앗을 심고 가꾸고 거둔다. 촌부의 뿌리는 땅에 박혀 있다.

우리 마을은 맛구슬 찰옥수수로 이름이 알려졌다. 노지에 키우는 것도 벌써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자라는 중이다. 가뭄이 길어져 걱정이다. 어떤 지역은 탁구공만한 우박이 쏟아져 과수 농가가 피해를 봤다는데. 저수지 물이라도 끌어댄 밭의 옥수수는 이들이들 한데 물이 모자라는 밭은 잎이 말라가고 있다. 애잔한 마음으로 옥수수 밭을 바라본다. 농심이 천심이라는데.

나는 현재 고사리와 단감 농사짓느라 찰옥수수 농사를 접었지만 제 철이 돌아오면 그립다. 모종을 키우려고 들쥐와 숨바꼭질 하던 때도 그립고, 내가 삶아 파는 찰옥수수가 맛있다고 일부러 먼 길을 돌아와 사 가던 고마운 사람들이 생각나 따뜻하다.

아랫동네 실이 네도 전을 벌였나 보다. 조만간 찰옥수수 마수걸이 해 주러 가야겠다.

“우리 동네 맛구슬 찰옥수수 참말 맛나 예. 일단 맛부터 보이소.”
 

   
 

박래여
전원생활체험수기 공모 대상, 농민신문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
제8회 여수 해양 문학상 소설 대상, 현대 시문학 시 등단,
수필집 <푸름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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