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성 여성현장
[농촌여담] 그 길이상분

92세의 이웃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서너 달 전만 해도 텃밭을 둘러보고 마을 놀이터에서 근력 운동도 하시곤 했는데, 천수를 다하셨나 보다.

“90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테니 재촉 말라 전해라.”

한동안 유행했던 백 세 인생 노랫말처럼 몸 관리 잘하다가 스스로 알아서 가시듯, 그렇게 쉽게 편안하게 떠나셨다.

사정상 자녀들이 가까이에 없어서 무슨 궁금한 일이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수시로 우리에게 묻고 또 묻고 하셨다. 식구들의 눈치 볼 것도 없이 당신 스스로 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조석으로 오셔서 자식들 걱정, 집안 걱정 등 괜한 걱정을 하시다 집으로 가시곤 했었다.

때로 귀찮아 한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정말 오지 못할 그길로 가버리셨으니 참으로 허망할 따름이다. ‘가을날 더운 것과 노인 근력 좋은 것은 못 믿는다’라는 속담처럼 노인의 건강은 장담 못 할 일인 듯싶다.

할아버지의 부음을 전해 듣고 종일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자괴감 때문일 터. 삼가 고인께 조의를 표할 뿐이다.

친정집에도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시다. 아직 두 분이 건강에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계시지만, 부모님 연배의 어르신들이 떠나실 때마다 당혹스럽고 격해지는 마음은 감출 길이 없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는 노인들이라 할지라도 어찌 그것이 두렵지 않을 수 있을까. 가깝게 계셔서 자주는 찾아뵙지만, 언제 어떻게 되실지 늘 노심초사다.

발인하는 날이다. 운구차가 마을로 들어섰다. 생전에 사시던 집을 둘러보기 위함이다. 모든 것이 그대로이다. 영정사진이 집 안팎을 돌고 나오는데, 일흔이 넘은 큰딸이 오열한다.

“아부지, 아부지..”

부모를 떠나보내는 자식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마지막으로 고인을 배웅하러 나오신 마을 분들이, 늙은 딸의 통곡에 함께 눈물을 적신다. 한때는 다정한 친구였고 또, 한때는 원망의 대상이기도 했겠지만, 고인을 향한 모두의 마음은 한결같이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라고 계실 것이다.

늙은 딸은 목 놓아 아버지를 부르는데, 어른들은 ‘호상’이라는 말로 적잖이 위로를 전한다. 호상好喪!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가 어떠한 복을 누리며 사셨다 한들, 다시는 돌아오지도 못할 영원한 이별일진데, 어찌 감히 호상이라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왠지 듣기가 거북스럽다.

영화 ‘축제’를 본적이 있다. 거기서는 장례를 하나의 축제로 전달한다. 죽은 자를 위한 산 자들의 마지막 축제이며 또, 장례를 통하여 가족 간의 오해와 화해를 풀어가는 산 자들의 축제의 장으로 의미를 두었다. 그리하여 삶과 죽음이 다 축제라는 것이다. 죽음을 편하게 받아들이고자 하는 의도라 여겨지지만, 그래도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기에 그 슬픔은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될 것 같지가 않다.

영구차가 움직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곡소리도 멀리 사라지고 돌아서 가는 노인들의 처진 어깨 위로 무심한 햇살만이 따사롭다.
 

   
 

이상분 
계간 좋은수필 신인상
좋은수필 작가회 회원
한국농어민신문 ‘밥상일기’ 기고
경기도 평택시 소사벌 서예대전 초대작가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농어민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관련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추천뉴스
농협중앙회장 선거전 돌입…19일부터 예비후보자 등록 [한국농어민신문 이병성 기자] 내년 1월 3...
한농연 창립 32주년 기념식 “내년 총선서 농업농촌 위한 일꾼 선출에 역량 발휘”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
구제역 백신 항체 양성률 미흡시 처벌 강화 ‘양돈농가 반발’ [한국농어민신문 우정수 기자]항체 양성률 기준치 이하 3년...
후계농 성장 단계별 지원 체계화…예비농도 정책범위에 포함해야 [한국농어민신문 이병성 기자] ...
[농업·농촌의 미래, 우리는 청년여성농업인] “농촌 내려오니 힘들지만…살아 있다는 기분 들어” ...
[논 타작물 단지화 현장을 가다] 규모화·기계화·기술력으로 무장···논콩 재배 중심에 서다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
세계김치연구소, 한식연과 통합 추진 ‘논란 가열’ [한국농어민신문 주현주 기자]▶운영효율화 앞세워 추진김치 ...
농촌교육농장 프로그램 경진대회, 제주 ‘초록꿈’ 대상 [한국농어민신문 조영규 기자]한국농촌교육농장협회(회장 윤상...
살처분 후 입식제한 농가 생계안정비용 지원 확대 [한국농어민신문 이현우 기자]농식품부, 10일부터다시 소득...
농특위 타운홀 미팅 경남서 마무리 [한국농어민신문 구자룡 기자] ...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