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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대파 꽃박윤경

[한국농어민신문]

상추를 뜯다가 윙윙대는 소리를 따라 벌떼 쪽으로 눈길을 준다. 진달래나 패랭이꽃에 찾아든 벌 소리가 아니다. 예쁘지도 않거니와 향기 또한 없는 대파 꽃에 저리 많은 일벌이 드나드는 게 궁금하다.

수줍은 듯이 씨앗 주머니를 달고 막 나온 송이는 뽀얀 망에 싸여 있다. 좀 더 성숙한 꽃은 숙주나물이 거꾸로 올라오는 것처럼 노르스름한 실 가닥을 달고 있다. 그 대파 꽃에 일벌들이 다닥다닥 모여들어 꽁지를 묻고 꿀을 모으느라 분주하다. 실한 꽃을 매달고 있는 대공을 꺾는다.

대공에서 진액이 흐른다. 뒤집어보니 속이 횅하다. 뼈대도 없이 푸른 잎으로 어찌 제 몸집보다 무거운 꽃을 받쳐 들고 지켜내는 걸까. 가만 들여다보자니 대파 꽃은 생전 어머니가 머리에 인 임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리다.

어머니는 땅 한 마지기 없는 가난한 아버지를 만나 혼인했다. 땅은커녕 솥단지 하나 성한 것 없는 살림살이는 시작부터 고난이었다. 거기에 무엇이든 일거리를 찾아 살림을 일궈내려는 어머니와는 달리 아버진 터무니없이 낙천적인 성격이셨다. 남들한테는 착하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노동은 피하려 애쓰는 바람에 지아비로서는 무책임했던 것 같다. 어떡하든 식구들의 배를 채우고 땅 한 뙈기라도 마련하려 안간힘을 쓰는 어머니에 비교해 아버진 인내심이라곤 없는 분이었다.

어머니의 몸집은 작달막했다. 작은 몸으로 콩대든 나뭇짐이든 웬만한 짐은 임질로 날랐다. 그래서일까. 똬리 자국으로 늘 납작하게 눌려있던 어머니의 정수리. 그 정수리도 고불고불 파마로 자존심을 세울 시기가 있다. 명절 전 마을회관으로 미용사가 찾아와 공동으로 파마를 한 후 잠시뿐, 어머니의 정수리를 늘 눌려있었다.

때때로 아버지의 지게로 모판이나 소 꼴을 짊어질 때가 있었다. 그런데 무거운 짐을 지고 내리막을 내려올 때는 지그재그로 내려오면서 지겟작대기로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를 썼다. 한쪽으로 기울거나 지겟다리가 바닥에 닿으면 나뒹굴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저녁나절임에도 어머니가 오지 않아 마중을 나갔다. 저만치 언덕 밭에서 지게 위에 소 꼴을 한 짐 짊어지고 내려오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를 부르며 뜀박질을 했다. 거의 어머니한테 다가가 맞닿으려는 그 찰나였다. 지겟다리 한쪽이 그만 비탈진 언덕에 쿡 박혀버렸다.

엄마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지겟다리가 박힌 반대쪽으로 곤두박질을 당했다. 엄마가 정신을 잃었다. 한쪽 팔이 지게에 눌려있고 목이 꺾인 듯 젖혀져 있다. 어떡하든 팔부터 빼보려 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놀랍고 당황하여 가까운 이웃집을 향해 울며불며 고함을 쳤다. 가까이 사는 관준이 할머니가 재빨리 달려왔고 우리 할머니도 달려왔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어머니는 내리막이나 오르막에서의 지게질은 피했다. 지게로 한 번이면 될 짐을 임질로 두세 번씩 이어 날랐다. 마루 한 귀퉁이엔 두건으로 두 개의 똬리를 틀어 언제든 재빨리 가지고 나갈 수 있게 포개 놓았다. 그렇게 어머니는 한평생을 자식이라는 씨방이 여물도록 긴 시간 헌신한 대파의 모습과 흡사했다. 자식들을 위해 뼛속의 모든 진액까지 내어줬다. 사는 내내 희생만 하다 임질에 지쳐 쓰러진 어머니.

한 알의 씨앗이 한 포기의 대파가 되는 과정은 사람 살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대파의 뿌리를 보면 가운데 심지처럼 굵은 부위가 있다. 한여름 뙤약볕을 이겨내고 양분을 만들어 실가지들과 함께 엄동설한의 한겨울을 이겨낸다. 곧 우리네의 부모 역할인 셈이다. 그렇게 봄이 되면 파릇한 움이 땅을 비집고 올라오고 대공은 억세게 쑥쑥 자라 진액을 끌어 올린다.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목이 아픈 줄도 모르고 임질 한 것처럼 대파는 씨앗을 위하여 대공을 세워 꽃을 받쳐 들고 씨앗이 제대로 여물 때까지 꽃집을 임질한다. 그래서일까. 까만 씨앗이 가장 빛나는 보석 다이아몬드의 모양을 닮았다.

묵묵히 임질을 이겨내고 있는 꽃대, 치열한 삶을 감내하며 강인함으로 승화한 대파꽃 앞에서 내 어머니가 임질한 모습이 그려진다.

/박윤경 문예한국등단, 진천문인협회 회원, 대소창작교실 회원,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장 역임, 수필집 ‘멍석 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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