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성 여성현장
[농촌여담] 산을 오르며최승옥

[한국농어민신문]

남편 친구 부부와 함께 수정산 입구로 접어들었다. 봄이 가까웠지만 아직은 바람이 차다. 찬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마다 몸이 움츠러든다. 집을 나설 때부터 산을 찾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막상 와 보니 걱정과 달리 산골짜기라 바람도 막아주고 등산하기 딱 좋은 날씨인 거 같아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수정산 중간쯤 올라서자 조금씩 몸에 열이 난다. 많이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숨이 차다. 헐떡이며 잠시 숨을 몰아쉬기를 반복하며 중턱에 닿으니 평탄한 올레길이 나온다. 여기부터는 일행이 나란히 걸을 수 있어 좋다. 뒤를 따르며 한 줄로 걸으며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나란히 걸으며 나누는 담소는 더 정답다.

그런데 걸을수록 숨을 가쁘게 쉬는 사람은 나뿐이다. 내 숨소리를 내 귀로 듣는 것이 부담스러울 정도다. 누구나 편히 오를 수 있는 곳이것만 오랜만에 찾은 내겐 힘겹기만 한 길이다. 다행히 중간중간 쉼터 의자가 있어 잠깐씩 쉬어간다.

겨울 동안 운동을 해서 몸무게를 줄였어야 농사지을 체력이 되는데 그 긴 겨울을 방심하며 다 보내고 말았다. 밀린 방학 숙제하듯 겨울 끄트머리에서 시작한 운동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들과 나선 길이라 마음은 즐겁다. 남편 친구는 나를 약 올리기라도 하는 양 어느새 저만큼 있는 의자에서 숨을 고르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부부가 다가가 한숨 돌리려면 다시 걷기를 반복한다. 마치 내 살을 빼 주기라도 할 요량인 듯 꼭 저만치 앞서서 잘도 걷는다. 농사일이 힘들건만 내 살은 어쩜 그다지도 잘 안 빠지는지…. 걷기는 그렇게 이어져 정상에 올라서야 한숨 돌린다. 정상에서 한눈에 내려다보는 읍내가 평온해 보인다.

친구 부부는 음성이 고향이다. 객지에서 살다 작년 말쯤 음성으로 이사를 왔다. 수십 년을 타지 생활을 하다 새집을 짓고 정착하려니 외지인처럼 낯설음을 많이 타는 것 같다. 도시에서 누렸던 여가 생활도 부족하다 보니 농촌 생활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친구 부부가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 동기는 마음이 고파서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사는 동안 평탄한 길만 있었겠는가. 이 부부는 5형제 중 막내지만 어른들 모시고 살며 맏이 역할을 했다. 맏형님 댁과 같이 꽤 큰 회사를 운영하면서 지내왔다. 회사 직원들 식사는 물론이고 모든 허드렛일은 친구 부부의 몫이라 여기며 몸을 아끼지 않았다.

살만할 무렵 부부의 몸이 견디질 못하고 동시에 병이 찾아왔다. 온몸이 쑤시고 통증이 심해 밤마다 깊은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했다. 하지만 회사 직원들 챙기는 일부터 노부모님 식사를 챙겨드리는 걱정에 선뜻 수술 날짜를 잡지 못했다. 결국, 차일피일 미루다 온 식구가 모일 수 있는 명절 다음날 남편이 먼저 수술을 받았다.

수술 받은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노모가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다. 어깨를 감싸고 병원에 도착하고 보니 온 식구가 모여 있었다. 그런데 노모는 막내는 외면한 채 장남 이름만 찾았다 한다. 친구는 내색은 못 한 채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친구의 속앓이를 듣다 보니 노모의 심경이 의아하다. 그렇게 수십 년간 부모를 위해 헌신했는데 함께한 자식보다 장남만 찾은 건 무슨 연유일까. 어쩌면 장남은 늘 아픈 손가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노모는 그리 오래 아파하지 않고 편하게 운명하셨다.

친구 부부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여러 가지 일들을 정상에서 멀리 날려 보내려는 듯 길게 ‘야~호’를 외친다. 음성 읍내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것처럼 이들 부부의 앞날도 시원하게 열렸으면 좋겠다.

등산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내 커피믹스를 탄다. 달달한 맛이 목젖을 타고 온다. 산 정상에서 맛보는 커피믹스가 유난히 맛있다. 좋은 사람들과 산 정상에서 맛보는 특별한 커피를 한 모금 머금고 주위를 둘러본다. 힘든 겨울을 견뎌낸 가지가 올록볼록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트릴 기세다. 머지않아 피어날 싱그러운 생명처럼, 입안에서 맴도는 달콤하고 향기로운 커피의 맛처럼, 친구 부부의 앞날도 그렇게 푸르고 달콤하며 향기롭기를 소망해본다.

최승옥/문학미디어 등단,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원, 음성문인협회 회원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농어민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관련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성 많이 본 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