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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미실이가 엄마 되던 날권혁숙

미실이, 꺼뻑이, 왕눈이, 눈치쟁이…. 축사에 있는 소가족들의 이름이다. 언뜻 보기에는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각각의 개성과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 모양새에 따라 한 마리 한 마리의 이름이 지어지고 이름을 부르며 다가가면 반가이 주인을 맞이한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축산인들은 바짝 긴장하고는 한다. 날씨가 추워지면 구제역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다른 해 보다 겨울이 빨리 와 더 조마조마하다. 제발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더 조심하고 축사 청결에도 신경 쓴다.

어제는 미실이가 건강한 수송아지를 낳았다. 통증이 시작되면서부터 사료도 먹지 않고 밤새 서서 서성거렸다. 통증이 더 심해지자 그 선한 눈망울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출산의 고통이 얼마큼인지 어미가 되어본 사람은 알리라. 아무리 짐승이지만 눈물까지 흘리는 것을 보니 그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미실아, 부디 힘 내거라.’ 우리부부도 밤을 꼬박 새워 미실이를 응원하며 분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밤은 점점 더 깊어지고, 새벽녘에야 송아지의 주둥이 모습이 살짝 비쳤다. 초산일 경우 자궁과 질이 좁아서 혼자 낳기 어렵다. 초산인 미실이의 분만을 돕기 위해 우리는 손을 넣어 송아지 다리를 묶은 다음 지그시 당겼다. 이때 미실이와 우리는 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미실이가 힘  주는 그 순간에 우리 부부도 같이 힘을 썼다.

이윽고 양수를 흠뻑 뒤집어 쓴 수송아지가 태어났다. 미실이의 고통이 끝난 순간이다. 미실이는 제 몸 상한 것은 아랑곳없이 막 태어난 송아지의 몸을 열심히 핥아 준다. 송아지의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털을 빨리 말리려는 것이다. 

송아지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살아났다는 듯 눈을 뜨고 머리를 든다. 조금씩 일어날 기미를 보이면 미실이는 일부러 툭툭 친다. 어서 일어나보란 신호다. 처음에는 비척비척 쓰러지던 송아지도 몇 차례 반복하자 처음보다 훨씬 더 균형을 잘 잡으며 일어선다. 그리고는 어미젖 가까이로 가서 입을 댄다. 하지만 어미는 그렇게 쉽게 젖을 물리지 않고 천천히 그 자리에서 원을 그으며 돈다. 송아지에게 걸음마부터 시키려는 의도다.

몇 바퀴를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한 후에 미실이는 드디어 새끼에게 젖을 물린다. 비로소 어미의 초유를 빨게 된 것이다.

초유를 먹은 송아지는 건강하게 자라는데 필요한 첫걸음을 무사히 떼었다는 뜻이다. 초유에는 다량의 면역성분이 들어있어서 별문제 없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어쩌면 새끼에 대한 모성이 저리도 지극정성일까 싶어 그 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한다.

혼신을 다해 새끼를 키워내는 어미 소의 모성. 그 앞에서 문득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반추해 본다. 또 나는 자녀에게 얼마나 정성을 다해 키웠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이다. 새끼를 돌보느라 잠 못 드는 미실이가 나에게 인생 공부를 하게 한다.
 

   
 

권혁숙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원, 대소 수필 창작문학 회원
음성군 바르게 살기 수기 대상, 삼성면 바르게 살기 수기 대상
안성맞춤 백일장 으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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