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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대목장 일기이길숙
   

설 대목장 물가가 만만치 않다. 시금치도 밭에 가득하고 도라지도 있고 무, 배추도 있으나 뻔히 두고도 사서 쓸 처지에 이르니 더욱 비싸게 다가온다. 사실 보름 전 치른 어머니제사에는 밭에서 그대로 뽑아서 썼기에 나물은 푸짐하게 장만했었다. 그럴 때 설 몫으로 따로 떼어놓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실로 아쉬운 마음이다.

하긴 그때 생각에는 설에도 밭에서 그냥 뽑아 쓸 줄 알았던 거다. 그런데 갑자기 날씨가 매섭게 변했고, 추운 날이 오래가더니 밭의 모든 것을 꽁꽁 얼려놓아서 벌어진 상황이다.

시금치는 그야말로 명절맞춤단 답다. 너무 실팍해 세단을 바구니에 집어 넣은다. 흰색과 고도액, 파란색의 삼색 나물은 구했으니 더 필요한 나물은 말려놓은 묵나물로 충당하기로 작정한다.

과일도 배, 사과는 선물로 들어왔으니 없는 종류만 구하면 될 일이다. 사실 명절 즈음하여 들어오는 선물은 차례 상용으로 모셔두기 때문에 과일 한 개도 건드리지 않고 산다. 먹고 싶은 유혹을 다음으로 보류해 두는 데는 이골이 났다 할까?

뭐니 뭐니 해도 고기 선물이 제일 반갑다. 고기는 고가인데다 차례 상을 받쳐주는 대표 음식이므로 숫제 냉동실에 고스란히 모셔놓고 필요할 때 쓰고 있다. 명절이 임박해오면 이들을 찾아 쓰기 위한 냉장고 뒤집는 작업을 하곤 한다.

바로 엊그제에는 냉동실 구석에 숨은 손바닥만큼 큰 보리굴비를 만났다. 마침 점심때여서 밥을 물에 말았다. 단단한 살점을 맛있게 뜯어먹으며 ‘종부는 조기대가리 빠는 맛에 산다’는 말을 실감하였다. 그러고 보니 종부란 위치가 그리 고단한 자리만은 아닌가보다. 살아 있는 사족에겐 사서 먹일 엄두조차 못내는 굴비를 비록 상에 올렸던 것일지라도 이처럼 마음 놓고 먹는데서 비롯된 말이 아니었을까?

대목장은 사람이나 물건이나 모두가 흥청 인다. 흥청거리는 열기에 어우러져 같이 돌아가는 코스 또한 자동이다. 건어물, 생선전을 지나 야채코너를 돌고 정육점을 거쳐 과일 코너에 다다른다.

사과, 배, 감 과일마다의 고유색이 색동저고리를 입혀놓은 듯 곱다. 저 예쁜 색깔, 예쁜 놈들!
아니지, 예쁜 걸로 따지자면 사람보다 더할까? 만날 때면 까르르 웃어대는 마냥 듣고 싶은 소리, 사람 꽃 내 아기들!

조상님께의 차례상차림으론 부족하겠지만 이만 되었다싶다. 명절이라서 둥지로 모여드는 자식들 생각도 미친다. 어느새 우리세대가 어른대열에 들었다는 사실과 속절없이 어른자리로 떠밀려 올려 졌으나 어른노릇을 딱히 해 본적이 없는 것도 같다.

주머니를 뒤져본다. 마을 사람이나 지인에게 더러더러 팔은 고추 몇 근, 들깨 몇 말의 농산물 값. 많지 않은 돈이지만 딴 주머니가 존재하는 사실이 왜 이리 흥분될까? 어차피 장보기로 쓰는 시간인데 내친걸음에 한발 더 내딛어 보리라. 물건을 정렬하여 트렁크에 싣고 또 다른 대목장을 둘러보려 페달을 힘껏 밟는다.

희망찬 새해를 향해서다. 모든 가정에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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