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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할머니의 말보시박래녀

[한국농어민신문]

동네 할머니가 전화를 했다.

“아요? 바깥양반 안 바뿌모 우리 집 수도 좀 봐 도라쿠모 좋것소. 싱크대도 세탁기도 변소도 물이 안 나오요. 한 댓새 됐는데. 아무리 해도 안 돼요. 고성띠 집에 쥔장이 와서 뚫어줘 물이 나왔다캐서. 염치 불구하고 전화하요.”

“알겠습니다. 감산에 나무껍질 벗기고 있어요. 집에 오면 할매 집에 가보라고 할게요.”

“고맙소. 내가 눈물이 다 난다. 물이 없싱께내 올매나 불편하든지.”

할머니 목소리가 울먹거린다. 사람에게 물은 생명수다. 특히 주부와 물은 불가분의 관계다. 그 물이 안 나온다니. 불편한 것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농촌은 칠팔십 노인이 대부분이고 혼자 사는 노인이 부지기수다. 불편한 일이 생겨도 자식은 멀고 이웃은 가깝다.

할머님이 며칠 동안 얼마나 속을 끓였을까. 모르긴 해도 여기저기 부탁도 했을 것이고, 수도 고치는 사람도 다녀갔을 것이다. 도시 사는 자식에게 하소연도 했을 것이다.

나는 흔쾌히 할머니의 부탁을 들어드리겠다고 했지만 문제는 매일 중노동에 지쳐 오는 남편에게 어떤 방식으로 말문을 열어야 할지 궁리하기 바빴다. 저녁에 어깨가 아프다는 남편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슬쩍 운을 뗐다.

“저기~아직도 동네에 수도가 막혀 고생하는 집이 있는 모양이야. 세간 할매가 전화를 했어. 고성 할매 집에 수도 뚫어준 이야기를 들었나봐. 당신한테 도와 달라네. 물 안 나온 지 닷새나 됐나네. 얼마나 답답할까. 당신 손재주 좋은 거 소문났나봐.”

우리 동네는 아직 오래 된 간이상수도를 사용한다. 지하수도 뚫었지만 물의 양이 적은 모양이다. 지난해 군에서 상수도 사업을 했다. 며칠 전 각 개인 집에 들어가는 상수도 공사를 했단다. 상수도 공사를 한 후에 물이 안 나오는 집이 속출하게 되었지만 상수도 공사에서는 하자가 없다고 하는 모양이다. 물이 잘 나오는 집도 있으니 자기들 잘못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은 콤프레샤와 종합 공구 통을 차에 싣고 할머니 댁에 갔다가 점심때가 넘어 집에 왔다. 해결했느냐고 묻자 기분 좋게 웃는다. 그 할머니 집으로 들어오는 수도관이 온갖 이물질로 막혀 있더란다. 콤프레샤로 바람을 불어넣고 쇠꼬챙이로 뚫는데 고생을 왕창 한 모양이다. 집안에 설치된 수도도 모두 손 봐 드렸더니 할머님이 봉투를 주시기에 다음에 ‘수퇘지 새끼 낳으면 새끼 한 마리 달라’고 했단다.

“이왕 나선 김에 그 길로 가 볼까하고 이장한테 전화해서 또 수도 막힌 집 없느냐고 물었더니 웃더라.”

“할머니가 얼마나 속이 후련하실까. 당신, 참 잘 했어요.”

누군가를 흔쾌히 도와준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도움을 받는 사람도 기분 좋은 일이고 도움을 주는 사람도 기분 좋은 일이다. 기쁨은 나눌수록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눌수록 줄어든다고 하던가. 노동에 지친 남편에게 부탁하기가 미안했는데 흔쾌히 아내 부탁을 들어준 남편에게 더 고마웠다.

사람살이는 혼자 살 수 없고 자신만 챙길 수 없다. 인간의 길은 공생의 길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일갈한 부처님도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깨달음에 이르렀다. 부처님이 고행자로서 죽음의 문턱에 섰을 때 그를 살린 것은 우유죽 한 그릇이다. 즉 타락죽이라고도 한다. 수자타의 우유죽 한 그릇으로 깨달음에 이른 부처님이다.

“기분이다. 오늘 점심은 내가 쏜다.”

그렇게 남편과 집을 나섰다. 길섶이 온통 꽃 천지다. 매화와 산수유에 이어 진달래, 개나리, 목련이 만발하고 있다. 농부는 날마다 논밭과 과수원을 다듬느라 파김치 된다. 산과 들에서 나는 거름냄새가 오히려 기분 좋은 향기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단골 소바 집에 들렀다. 소바란 메밀국수의 일본식 이름이다. 소바가 우리 고장 먹을거리로 자리 잡은 지도 오래 되었다. 소바 한 그릇 먹고 집에 오니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벨이 울린다. 수도 고쳐드린 세간 할매다.

“아지매 고맙소. 쥔 양반이 구석구석 손 봐 주고 가서 올매나 고마운지 눈물이 나더라. 아지매 덕에 인자 내가 다리 뻗고 자것소. 싱크대에 물이 나옹께내 올매나 좋은지.”

동네 할머니 말 보시 덕에 행복한 하루가 저물고 있다.

/박래녀 MBC 전원생활체험수기공모 대상 수상
농민신문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
제 8회 여수해양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 수상
현대시문학 시 등단
수필집 <푸름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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