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분

[한국농어민신문] 

오늘은 면민 체육대회가 있는 날이다. 이장인 남편이 어제 오후에 방송으로 공지를 했건만, 관심 갖는 분들이 드물다. 코로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고 또, 연세들이 워낙 많다 보니 이장으로서도 굳이 참석을 강요하지 못하는 처지다. 예전 같으면 어른들이 앞다투어 차편을 물어오곤 했는데 펜데믹이 세상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다.

그래도 마을을 대표하는 정예 선수가 열두 명이나 되었다. 보무도 당당하게 참가를 위한 출정 길에 올랐다. 그중에 우리 농장 직원인 빤, 로희 부부도 포함되었다. 호박 정식을 막 끝내고 요즘은 좀 한가한 시기다. 얼마 전엔 부산 시티투어도 함께 했었다. 잠깐씩 짬을 내어 한국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공감하려 우리는 노력하고 있다. 

도착해보니 경기가 한창 진행 중이다. 많은 사람이 북적였지만, 코로나 이전에 비하면 이도 소규모의 인원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갑자기 운동장으로 빤의 등을 밀어붙였다. 얼떨결에 그는 알 낳는 인간 새가 되었다. 한치의 거리낌도 없이 현지인과 정서적 유대감을 나눠가며 재미있게 게임을 풀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는 슈퍼맨이었다.

경기 중간중간에 경품권 추첨도 있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다양한 경품들은 그 누구라도 욕심낼 만하다. 요행하고는 거리가 먼 난 언감생심이다. 우리 직원들도 많은 기대를 하는 듯, 번호를 부를 때마다 연실 경품권을 들여다본다. 

“빤! 냉장고 타서 빨리 라오스 가자.”

“자전거에 냉장고 타고 가요”

사람들과 나누는 농담도 정겹다. 그 친구들만이라도 무엇이든 하나 걸려들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나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값나가는 냉장고보다 수십 대의 자전거에 더 눈독을 들이며 복 타령을 해댄다.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들이다.

그사이에 신나는 음악이 터져 나온다.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나가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든다. 삽시간에 춤판이 벌어졌다. 춤을 좋아하는 로희에게 가서 놀라 이르니 나하고 함께 가잔다. 이를 어찌할 거나! 몸치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라. 계속 손사래를 치자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뛰어가 금 새 그 무리와 한 통속이 되었다. 제 식구라서인지 제일로 돋보인다. 저 끼를 어찌 참아 왔을까. 

춤도 소통의 언어라는 것을 새삼 느껴본다. 말과 문화가 통하지 않아도 흥으로써 쉽게 하나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남편이 사회자에게 외국인 노동자라고 귀띔을 해준 모양이다. 사회자가 얼른 화장지 한 둥치를 가슴에 안겨 준다. 부부의 몸놀림이 더 격렬해졌다. 어우러져 잘 노는 걸 보니 보람차고 참으로 뿌듯하다. 

고국에 대한 향수와 일상의 고단함을 종종 이렇게라도 풀어야 할 터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여 주인으로서 그저 미안할 뿐이다. 이제 경기도 경품도 막바지 달했다. 대형 세탁기만이 홀로 덩그렇게 서 있다. 내 옆에 다가온 그들은 이젠 경품 따위엔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인다. 

“싸모님! 오늘 해피해요. 너무너무 감사해요”

매우 상기된 얼굴이다. 오늘이 꽤 만족스러운가 보다. 덩달아 나도 해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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