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안

[한국농어민신문] 

얼굴이 달아오르고 온몸에 땀이 흐른다. 핸드폰을 열어보니 이제 겨우 여덟 시가 되어간다. 아침부터 이렇게 더운 걸 보니 오늘 폭염도 어지간할 모양이다. 수확한 복숭아를 싣고 작업장으로 향하며 나무들을 바라본다. 불볕더위를 고스란히 겪을 나무가 안쓰럽다.

작업장에 들어오자마자 에어컨부터 켜고 돌아서는데 마음이 영 불편하다. 더위가 웬만큼 순하면 선풍기를 틀 텐데, 요즘 같은 더위에는 에어컨을 안 켜면 어지럽고 두통이 생겨 일을 할 수 없다. 당장 시원한 환경에서 일하기 위해 에어컨을 켜는 나의 행동은 환경에 얼마만큼의 나쁜 영향을 줄까.

환경운동가는 아니지만, 나는 지구 환경이 정말 걱정이다. 이상기후 때문에 농사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반복되면서 기후 위기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다. 어느 해는 겨울 혹한이 너무 심해 추위에 약한 한 품종이 몽땅 동해를 입다시피 했다. 그다음 해는 개화기인 사월 중순에 함박눈이 내려 꽃 동해를 입고 결실률이 낮아 흉작이었다. 작년에는 수확기에 들어 거의 두 달이나 쉬지도 않고 내린 비에 복숭아가 차례차례 다 떨어져서 수확을 포기하기도 했다. 

보름쯤 전에도 하늘에서 물 폭탄이 떨어지는 광경을 보았다. 예순 나이가 넘도록 삽시간에 그렇게 큰비가 내리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한낮에 더위가 맹렬하더니 늦은 오후가 되니 갑자기 시원해졌다. 하늘이 컴컴해지면서 돌풍이 들이닥치는 것과 동시에 폭우가 쏟아졌다. 그것은 보통 폭우가 아니라 하늘 둑이 터져 갇혀있던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딸과 나는 비에 가려 보이지 않는 복숭아밭 쪽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다. 돌풍은 정원수 가지들을 사납게 흔들어 부러트렸고, 정원에는 금방 물이 차올라 잔디가 잠겼다. 그러기를 불과 10여 분, 거짓말처럼 먹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나는 딸과 함께 복숭아밭으로 뛰었다. 돌풍이 휘젓고 간 과수원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과수원을 둘러싼 방풍망은 쇠파이프가 뜯겨 내동댕이쳐져 있고, 수확을 앞둔 품종의 복숭아가 낙과되어 나무 아래는 마치 타작마당처럼 복숭아가 즐비하게 떨어져 있었다. 어떻게나 심하게 흔들어댔는지 여기저기 가지도 부러졌다. 이상기후가 일상화되어버린 환경에서 우리는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을까.

기후는 이제 30여 년 전에 내가 농사를 시작하던 때의 예측 가능하던 날씨가 아니다. 그때는 아무리 추운 겨울도 삼한사온이 있었고, 오랜 가뭄도 때가 되면 장마가 찾아와 땅을 적시고 바닥이 드러난 저수지를 채워 주었다. 마냥 눌러앉을 것 같은 지루한 장마도 삼복더위가 힘을 쓰면 슬며시 꼬리를 감추고는 했다. 그러던 기후가 이제 바뀌었다. 추위도, 더위도, 가뭄이나 장마도 한번 시작했다 하면 극단적으로 치닫는다.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 인도, 유럽, 케나다 등등. 전 세계가 자연재해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다행히도 인류는 어디서부터 이 문제가 시작되었고, 이것을 해결할 실마리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온실가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면 지구온난화의 가속을 늦출 수 있다는 사실은 전 세계인이 다 알만큼 상식이 되었다. 문제는 알기는 하지만 느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당장의 불편함이나 효율성, 경제성 앞에서 화석연료의 사용을 포기하지 못하는 인간. 만일 농사에 화석연료의 사용을 멈춰야 한다면 나의 농사도 멈추게 될 것이다.

나는 병충해 방제, 풀 깎기, 운반기 등의 기계를 사용할 때는 휘발유를 에너지로 쓴다. 수확물이나 농자재를 실어 나르는 화물차에는 경유를 쓴다. 농사짓는다는 핑계로 내가 배출하는 탄소는 아마 적지 않을 것이다.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수많은 생명체 중에서 하나일 뿐이다. 억겁의 세월 축적된 에너지 화석연료, 이 에너지를 통해 산업의 발전을 이루었으며 인류의 삶이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이제 와서 보니 그것은 지구의 시간을 앞당기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지구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상기후를 통해 제발 이 짓을 멈추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 모든 생명체 중에서 가장 높은 지능을 가진 인간, 언제쯤 우리는 지구의 경고를 알아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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