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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맹꽁이 소나타형효순

모내기철에 적당하게 내려주는 비는 농부에게 그 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다. 잘 정비된 농수로마다 물이 철철 넘친다. 쌀 값 걱정은 나중이고 지금 보는 물에 마음이 풍족하다. 이렇게 모내기가 시작되면 오래전 그날이 생각난다.

천수답인 성적굴 산 밑 우리 논은 긴 가뭄으로 모가 시집오기를 주인보다 더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더는 비를 기다리지 못하고 냇가웅덩이에 양수기를 설치하고 논이 멀어 중간에 또 한 대를 설치하여 아예 논 옆에 솔가지로 얼기설기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내는 고된 작업이 시작되었다.

논은 아홉 다랑지 계단식으로 되어 있어 겨우내 들쥐와 두더지가 구멍을 뚫어 물이 들면 아래 논으로 새기 일쑤였다. 그런데 하필 마지막 논에 물이 들기 시작한 시간이 밤이었다. 나흘 동안 간신히 품어 올린 물, 피 같은 물을 말 그대로 쥐도 새도 모르게 아래 남의 논으로 빠져나가게 놔 둘 수는 없었다. 밤이지만 논두렁을 부쳐야 했다. 마른 흙을 괭이로 잘게 부수고 물길을 앞 방천으로 끌어와 흙이 물에 불면 발로 꼭꼭 밟아 여인의 입술보다 더 도톰하고 예쁘게 손으로 부쳐야 물이 새나가지 않는다. 작대기에 손 전등불을 달아 세워 놓고 이왕 하는 밤일 노래를 불렀다.

“저 건너 조그만 호숫가에~ 맹꽁~ 개구리노총각이 살았는데~ 소쩍~ 사십이 다되도록 장가를 못가~ 부엉~ 안간 건지 못간 건지 나도 몰라~ 소쩍~ 부엉~ 몰라~ 맹꽁 맹꽁 맹맹 꽁~”

신까지 났다. 간간히 날려 오는 밤 꽃 향기, 하늘 가득히 쏟아지는 별빛에 반딧불들의 군무와 어우러진 오직 나만의 독무대, 밤의 교향곡이 펼쳐지니 피곤하지 않다고, 아이들이 잘 자는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와 양수기 사이를 오가는 남편에게 걱정 말고 모터나 잘 보라며 큰소리로 당당하게 말했다.

그렇게 조금만 붙이면 끝이 날 것 같아 엎디어 두 다리에 힘을 주는데 맞은 편 산위로 아침 해가 불끈 솟아올랐다. 거꾸로 강렬한 태양을 마주한 순간 머리가 빙그르 돌고 말았다. 그리고 그대로 일 미터가 넘는 아래 논으로 뒹굴었다. 실로 관객이 없어 아쉽기 그지없는 마지막 무대 연출이었다. 다만 맹꽁이들은 여전히 맹꽁 맹꽁 힘내라는 건지 전신 머드팩을 하고 일어난 나를 보고 박장대소 하는 건지 아리송했지만 그렇게 한 여름 밤 화려한 독주회 막을 내렸다.

이제는 기계로 많은 일들이 수월해졌는데 그날이 그리울 때가 있다. 쌀을 사료화 한다는 농촌 현실이 올 거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젊었던 내가 있어서이다. 그날 밤새 함께 했던 소쩍새와 부엉이, 맹꽁이도 몰랐겠지 그렇게 소중하던 쌀이 갈 곳이 없어질지… 쑥국새는 한나절 목이 쉬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또 모내기를 한다.
 

   
 

형효순
전북문인협회 회원, (사)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장 역임
행촌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재주넘기 삼십년’, ‘이래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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