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귀옥

[한국농어민신문]

요즘 우리 동네는 뻥 뚫린 묵시적인 감옥 같다. 서로 발길을 끊고 만나기를 삼가고 있다. 칠팔십 대의 어른들이 갈 곳이 마땅찮아 집에 갇혀 지내고 있다. 코로나에 걸리면 다시 소생하기 어렵다는 두려움 때문에 손님을 안으로 들이지 않고 문밖에서 보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위가 찾아와도 문밖에서 보냈다는 분도 있다.

종일 TV를 벗하는 어른들은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층에 집중된 확진자 사망률 발표에 민감하다. 봄가을로 함께 놀러 가고 먹고 마시며 유쾌하게 모임을 하던 일상이 그렇게 큰 행복이고 축복이었음을 깨닫는 즈음이다.

친정엄마는 요즘 40년 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이민 간 이모 가족이 잘 지내는지 걱정 떠날 날이 없으시다. 첨단기술의 발달로 암도 완치의 길이 열리고, 인체에도 기능을 잃은 부분은 교체할 수 있는 부품이 생겨 백세 시대의 서막이 열린 때에 위대한 호모사피엔스에게 치욕을 안겨준 코로나 바이러스. 눈에 보이지도 않고 현미경으로도 보기 어렵다는 극히 초미세한 바이러스에 이렇게 어이없이 당할 수 있다니. 

농업을 하는 우리에게 바이러스는 너무나 친숙한 이름이다. 농작물에 중간 숙주 역할을 하는 진딧물만 잘 방제해도 잡히기 때문이다. 이 모두가 자연을 훼손하고 야생의 것을 함부로 취한 재앙이라고 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백신이 개발되었다지만 전 세계인과 우리 개개인에게까지 오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텐데. 지금 이 시간도 바이러스는 변이를 거듭하며 퍼져나가고 있다. 하루 확진자가 1000명대를 넘나들자 남편은 현관문에 외부인 출입을 삼가 달라는 글을 써 붙였다. 외부인이라야 동기들과 나가서 노는 아이들뿐인데.

공지문을 써 붙이자마자 여동생 내외가 왔다. 난감한 남편이 거리 두기를 한다며 의자를 끌고 가 떨어져 앉으며 마스크를 쓴다. 모처럼 온 동생에게 미안했으나 시국이 그러니 서로 이해하고 마스크를 쓰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에게는 카톡으로 당분간 오지 않게 했으니 집안이 적막하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동안거에 들어가 면벽하고 수행하는 스님들도 있는데, 그렇게는 못해도 이 겨울 나도 스스로를 성찰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지 다짐해본다.

농한기의 나의 일상을 새벽에 일어나 체조를 하고 단전호흡이 끝나면 경건한 마음으로 성모상 앞에 촛불을 켠다. 이 난국이 어서 빨리 극복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묵주기도를 마치면 날이 밝아오고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오전에 잠시 독서삼매경에 빠졌다가 돋보기 쓴 눈이 피로해지면 쌀쌀한 겨울바람을 벗하며 길을 나선다. 텅 비어있어도 쓸쓸하지 않고 아름다운 들판, 봄이 오면 또다시 씨앗을 뿌리고 가꾸어야 할 지평선을 바라보는 흐뭇함. 막힌 데 없이 광대한 하늘과 유빙처럼 흘러가는 구름. 그 아래 마을을 이루고 있는 색색의 지붕들.

또한 다 거두어간 바람에 날아간 빈 쭉정이들이 철새 떼의 먹잇감이 되나보다. 다갈색의 몸집이 큰 기러기 떼들이 어찌나 많은지 양계장의 닭을 다 풀어놓은 것 같다. 들판 한복판에 가득한 기러기 떼를 보면 자연이 참 위대하다. 저 많은 날짐승을 키우는 일 없이도 저 스스로 잘 생존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요즘 철새들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퍼트려 양계장들이 비상이고 보니 밖에 나가도 걱정, 안에 들어와도 근심이다.

일 년 내내 쉴 새 없이 땀 흘리며 일한 농민들도 지난해에는 기나긴 장마와 기습적인 폭우, 그리고 연이어 온 태풍으로 작황도 좋지 않아 콩 농사가 반 토막이 나고 벼도 수율이 떨어져 농부의 시름이 깊었다. 두 달 동안 한여름의 햇볕을 보지 못 한 작물들은 잎사귀만 무성했지 제대로 된 결실을 이뤄내지 못했다. 영양분이 모자라면 채워줄 수 있지만 햇볕은 돈으로 살 수도 없고 노동력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삼복의 불볕더위가 얼마나 소중한지 경험한 한해였다.
코로나바이러스와 기후재난의 긴 터널을 지나 신축년 올해는 모두가 평범한 일상을 회복하고 마스크도 벗어 던지고 이웃과 마음껏 대화하며 박장대소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해 본다.

코로나로 세상을 떠난 이들이 질병 없는 천국에서의 명복을 빌며 또한 생업으로 어려움에 처한 분들이 끝까지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백신 접종이 되어서 집단면역으로 코로나 19가 감기처럼 가볍게 앓고 치료될 수 있는 평범한 질병으로 정복되었으면 좋겠다. 신축년 소의 해. 소처럼 느리지만 큰 걸음으로 뚜벅뚜벅 인류 역사의 고난을 헤쳐나가 반드시 질병 없는 밝은 세상이 오리라는 믿음으로 새해 새말을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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