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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내리사랑이상분

[한국농어민신문]

작은아들이 결혼해서 분가해 나갔다. 새벽 일찍 출근해 자정이 다 돼서야 들어와 하숙집처럼 잠만 자고 나가던 자식인데도 막상 떠나고 나니 섭섭하다. 직업상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기 때문에 세탁과 다림질 힘들다며 빨리 결혼해 나가라고 잔소리했건만 섭섭함이 밀려오는 것은 어인 일인가.

모처럼 내리는 비로 한가해진 틈을 타 아들의 물건이 담긴 보관함을 열어 정리하기로 했다.  유치원 때부터 결혼 전까지의 이력이 모두 그곳에 있다. 오랜만에 보는 것들이 모두 신기하기만 하다. 사진과 상장, 편지와 성적표, 일기장과 스케치북 등등. 언제 이런 것을 다 모아 두었는지 내가 한 일임에도 참 대단해 보인다. 두 아이의 일기장만으로도 책 두 권 정도 묶을 양이다. 착실하게 일기를 쓴 것만 보더라도 아이들은 참 선하게 잘 커 왔다. 고맙다. 어버이날에 두 아이가 우리에게 준 상장도 있다.

‘월드 베스트 부모님 상.’ 참으로 거창한 상이다. 두 형제를 사랑과 정성으로 기르며 성장하는데, 물심양면으로 도움으로써 저희에게 모범이 되었기에 상장을 드린다는 내용으로 최우수상이었다. 철들기 전에 준 상장이지만 새삼스레 가슴이 뜨거워진다. 여느 상장마다 쓰이는 상투적인 문구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마음인 양 고맙고 기특하다. 기쁜 마음에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볼까 하고 남편에게 물으니 코웃음만 친다. 멋없는 사람이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러갔는지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낳은 지 얼마 안 되는 손주를 안고 목욕시키는 친정어머니의 사진 속 모습이 곱고도 젊다. 내 연배 때의 모습이다.

지척에 친정 부모님이 계신다. 아무 때나 수시로 뵐 수 있는 부모님이 계신 것만으로도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연세는 있지만 그래도 비교적 건강하신 편이다. 아침 운동도 거뜬히 하고 경로당도 열심히 다니신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두 분의 지론이다. 이런 부모님이 옆에 계신 것이 난 늘 자랑이다.

어제는 애호박 한 상자와 유황오리 알을 가지고 친정에 갔다. 젊어서는 대농의 농사를 지으며 쉴 새 없이 바쁘게 사셨지만, 개발에 의해 농토가 수용되는 바람에 아파트에서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고 계시다. 참 다행이다.

“힘들게 농사지어 여기로 자꾸만 나르면 어쩌누. 호박 값도 안 좋다는데…”

늘 하시는 소리지만 오늘도 걱정은 끝이 없다. 친환경으로 호박 농사를 짓고 있다. 새 학기에 맞춰 학교급식으로 납품하려고 겨우내 비싼 연료를 써가며 정성 들여 키워 왔건만, 코로나19 때문에 연료비도 건지지 못할 지경이라고 친환경 농가마다 울상이다. 궁하면 통한다고 ‘착한 농산물 장터’, ‘드라이브 스루’, ‘친환경 꾸러미’ 등과 같은 새로운 유통 방식이 나와 눈길을 끌고는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올해는 호박꽃이 많이 피었다. 봄만 되면 잿빛으로 밀려오던 황사나 미세먼지가 확연히 줄어든 때문이다.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하고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시해 온 덕분으로 일조량이 많아서다. 우리 농장은 대풍을 맞고 있다. 그 누가 호박꽃도 꽃이냐고 비아냥했던가! 장미꽃처럼 화려함은 없을지라도 늘 함박웃음을 날리며 후덕함을 보이는 그 당당함을 어느 꽃에 비할까. 벌들에게도 한없이 자기를 내어줄 줄 아는 그 아량은 우리네 부모를 똑 닮지 않았나 싶다. 수입은 예년에 비해 터무니없는 액수지만 비상시국인 걸 어쩌겠는가. 호박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걱정이 많은 친정어머니를 안심시키려다 보니 수다만 는다.

“걱정하지 마세요. 직원들이 힘이 들어서 그렇지 수량이 많아 괜찮아요.”

“내가 가서 도와줄까?”

여든일곱 노모의 말씀이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연일 방송되는 농촌의 일손 부족 현실과 피해 현황에 대해서 우리보다도 예민하게 받아들이니 이 노릇을 어이할까. 환갑이 지나 칠순을 향해 내달리는 늙은 농사꾼 자식에서 언제 놓여날 수 있을 것인지,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순간 울컥한다. 내가 불효자다.

어제의 일에 빠져 있다가 빨간 카네이션에 눈을 돌린다. 고사리 손으로 색종이를 접어 제 딴에는 온 정성을 다해 만들었을 게다. ‘날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삐뚤빼뚤한 글씨와 볼품없는 꽃 모양새가 재미있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다 그러하리라. 아들의 부재가 섭섭함으로 남는 것도, 부모님이 늙은 딸을 걱정하는 것도, 다 어쩔 수 없는 내리사랑이리라.

/이상분 계간 좋은수필 신인상, 좋은수필 작가회 회원, 한국농어민신문 ‘밥상일기’ 기고, 경기도 평택시 소사벌 서예대전 초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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