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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회갑유봉희

[한국농어민신문]

며칠 전에 남편의 회갑을 맞아 수원에 있는 한우 전문점에서 식사를 했다. 그날은 같은 날 회갑인 시누이 남편도 함께했다.

“동생, 축하해.”

큰 시누가 먼저 봉투를 내밀었다. 이어서 “형 축하해, 오빠 축하해, 아빠 축하 드려요” 등의 인사가 이어졌다. 가족들이 한 결 같이 밝은 얼굴로 축하 인사를 건네는데, 남편은 어쩐지 심드렁한 표정이다. 벌써 회갑이라는 본인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사실 진짜 회갑 날은 그 이튿날이었는데 소고기 없는 미역국을 끓이고, 반찬도 평상시에 먹던 그대로 차렸다. 남편을 향해 내가 말했다. “여보, 회갑 축하해요. 차린 것이 없어서 미안해요. 너무 서운하게 생각 하지 말아요. 그래도 32년 동안 당신 생일날 잊지 않고 미역국은 끓였잖아요.”

“그래, 고마워. 난 영원히 당신만 사랑할 거야.” 맛있게 먹으면서 남편이 한 말이다. 결혼 후 계속 농사꾼의 아내로 살아왔다. 가끔은 회사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바쁜 농사철에도 회사원들은 주말이면 쉰다. 그뿐인가. 회갑이 되면 두둑하게 퇴직금을 받고 퇴직할 때가 아닌가. 나이가 들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농사꾼은 쉬기는커녕 더 어려워진다. 그런 생각들로 갑자기 서글퍼진다.

농사꾼에게도 그 아내인 촌부에게도 퇴직금을 주는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회갑 년이 되면 목돈을 주면서 한 달 쯤 여행을 다녀오라고 하면 좋겠다. 그것이 안 되는 현실이고 보니 그동안 참고 견디며 살아 온 내가 기특해서라도 자신에게 상을 주고 싶다. 가사 노동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농사짓는 것이 회사 다니는 것보다 훨씬 힘이 든다. 주말은 고사하고 한 달에 한 번 쉬는 것도 힘든 것이 농사일이다.

남편이 회갑을 맞고 보니 하늘나라에 가신 친정 부모님이 오늘따라 많이 보고 싶어진다. 30년 전에 친정아버지 회갑 때는 온 동네가 며칠 동안 솥뚜껑 엎어놓고 들기름 넉넉히 둘러 두툼한 부침개를 부쳤다. 설설 끓는 가마솥에 토렴한 잔치 국수는 요즘에 비싼 해물 잔뜩 넣고 끓인 짬뽕이나 우동보다 훨씬 맛있었다.부조는 막걸리 몇 동이, 국수 몇 관, 감주 한 방구리, 계란 서너 줄, 콩나물 한 시루…. 그것도 서로 품앗이였다.세월을 더 거슬러 올라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할아버지 회갑도 생각났다. 동네사람들이 많이 오셔서 은행을 물들여서 예쁘게 고이고 호도랑, 대추, 밤, 떡 등으로 상을 차렸다.

시대가 바뀐 요즘은 간단하게 식사하고 해외여행 가는 사람들이 많다. 남편은 농사일이 바빠서 여행은 엄두도 못 냈다. 그렇게 살아왔지만 남편은 해 놓은 게 별로 없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래서 남편은 가족들의 축하를 고마워하면서도 서운한 표정이다. 언제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 회갑이 되었는지, 해놓은 일이 없어 허무하다고 했다.

해 놓은 일이 왜 없겠는가. 평생 농사지으면서 큰돈은 못 벌었지만 두 아이 공부시키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지 않았던가. 경제 논리로 본다면야 농사꾼은 큰 성과를 못 내는 사람들 같지만, 온 국민의 건강한 밥상을 책임져온 큰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세상이 농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몰라준다 해도 우리는 스스로 자존감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회갑은 남들 이야기 인 줄만 알았는데 내 회갑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젊지도 않았는데 젊은 척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늙지도 않았는데 늙은 척할 수도 없다. 나는 남편에게 내 회갑도 얼마 안 남았으니 한 달 동안 밥 좀 해 달라는 특별한 선물을 달라고 할 계획이다.

수십 년 가족들 밥을 해 먹였으니 회갑 때는 내가 원하는 그 선물을 받는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식구들이 아침밥, 저녁밥을 잘 챙겨 먹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나도 한 달 동안 부엌일 멀리해도 삼시세끼 밥을 잘 얻어먹을 수 있을까.어쨌거나 인생은 60부터라니까 다시 한 번 힘차게 새로 시작하는 것처럼 살아가기를 소망해본다.

/유봉희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원, 오이 호박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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