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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나이 든다는 것이상분

집안네 아주머니의 부름을 받았다. 웬일인가 싶어서 밭에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한달음에 달려가 보았다. 말씀인즉슨 느닷없이 한전으로부터 단전 예고통지서가 날아들었단다. 이유를 알고 싶어서 한전에 전화를 해보니 음성안내 멘트만이 날아올 뿐, 직원과의 통화가 통 되질 않아 화가 나서 나를 부른 것이란다. 통지서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별일도 아니었다. 통장에 잔액이 없어 몇 달 동안 전기 요금이 미납되었던 것을 몰랐던 것이다. 통지서에 적힌 연체료를 시중 은행에 입금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알아듣게 설명을 해주니 금세 얼굴이 밝아진다.

“눈이 어두워 간단한 것도 못 읽으니 참 처량해.”

이 아주머니는 시력이 나빠 못 읽지만, 마을 어른 중에는 글을 모르는 분들이 대다수다. 젊었을 때는 글 모른다는 것에 대해 매우 부끄럽게 여겼지만, 연세가 드신 지금은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다만 불편함을 호소할 뿐이다. 연세가 많으신 아주머니들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지하에 계신 세종대왕께서 얼마나 통탄해 하실까! 애민 정신으로 백성들이 쉽게 글을 익힐 수 있도록 글자를 만들었다 했거늘, 가난과 여자라는 이유로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허다하니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그들은 또, 얼마나 갑갑한 세월을 살아왔을까. 그것이 한이 되어 뒤늦게 학교공부를 시작하는 어르신들을 방송을 통하여 종종 볼 수가 있다. 참으로 존경스러운 모습이다.

이 아주머니도 배움의 기회조차 주지 않은 부모님 때문에 글을 배울 수가 없었지만, 오라버니들의 공부하는 어깨너머로 간신히 글을 깨우쳤다고 한다. 가만히 보니 아주머니는 연세가 드셨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든지 배우려는 의지가 대단하시다. 이면지에다 연필로 그림을 그려서 보여 주는데 어찌나 잘 그렸는지 그 섬세함에 감탄하고 말았다. 어찌 이것이 배움이 없는 노인의 솜씨라 말할 수 있으랴. 시대적 상황 때문에 그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이렇게 썩히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독학으로 영어 공부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파벳 대문자와 소문자를 익히다가 소문자는 포기하고 대문자만 익혔다고 한다. 자녀들과 함께 외출할 때마다 달리는 차들을 보며 회사의 마크까지 읽어 보였더니 자녀들이 깜짝 놀라더란다.

“나 삼성·기아도 알고, 카가 차고 워터가 물인 것도 알아. 책에 다 있어. 그림도 있고”

아주머니의 연세는 올해로 아흔인 구순이시다. 노익장이란 말이 괜한 말이 아님을 실감하고 있다. 나를 돌아본다. 게으른 모습에 낯이 뜨거워진다. 농사일이 고되다는 이유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해야만 할 공부를 미루기만 했던 모습이 정말 부끄럽다. 성의가 없고 열의가 없는 탓일 터. 오늘부터 나도 주경야독을 해볼 거나!
 

   
 

이상분 
계간 좋은수필 신인상
좋은수필 작가회 회원
한국농어민신문 ‘밥상일기’ 기고
경기도 평택시 소사벌 서예대전 초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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