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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이름최귀옥

작물을 거둬들인 후 비어있던 텃밭이 겨울답지 않게 푸르다. 쑥갓 모양의 이파리에 노오란 꽃송이가 아른아른 이쁘게 피었다. 기후변화 때문인지 근래에는 영하의 날씨에도 겨울을 나는 풀들이 있다. 예년에 비해 따스하다지만 그래도 겨울 한복판 아닌가. 엄동설한에도 기어이 꽃을 피운 야생화의 의지가 신통방통하다.

그 무한한 생명력에 감동하지만 이름을 모르니 궁금하기 짝이 없다. 점심을 먹으러 부녀회관에 들어서며 아주머니들에게 물어보니 오세훈 아줌마가 대답하신다.

“응, 그거 돼지풀이여.”

돼지풀이 정확한 이름인지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일단 믿어보기로 하고, 우선은 이름을 안 것이 뿌듯하다. 농사철에 작물 사이에 피어나면 잡초라고 뽑아버리던 풀꽃, 한겨울 잔설 사이에 무리 지어 피어있는 것을 보니 아름다운 야생화로 다가왔다. 사유화된 권력으로 세상이 시끄러운 때에도 자연은 섭리와 질서를 거스르지 않고 묵묵히 겨울을 건너고 있다.

그 와중에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정유년이라…. 우연의 일치일까. 공교롭게도 작년에는 <병신년>이더니 자물통이 된 최순실 씨의 입을 열 열쇠 정유라의 개명 전 이름이 바로 정유연이었다. 한 해의 이름에도 운명이 있는 걸까? 아니면 이 사태를 몰고 올 인물이었음을 암시한 이름일까.

2017년 새해 소망이 있다면 비선 실세 없는 귀 밝고 머리 좋은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다. 국무위원들과의 토론도 가능하고, 격의 없는 회식 자리도 함께하며, 아닌 것은 아니라고 직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그런 제대로 된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아 직책에 대한 이름값 좀 하는 시대를 열어봤으면. “이게 나라냐!”며 촛불 들고 광장으로 나갈 일이 없는 세상이 와야 할 텐데. 

컨테이너 부녀회관에는 아주머니들이 점심을 준비해놓으셨다. 나이가 제일 어린 나는 맛있게 먹고 설거지만 하면 된다. 가끔 미안한 내색을 하면 아주머니들은 이곳에 오는 것도 봉사요, 먹는 것도 봉사란다.

회관 방 한쪽에는 협탁이 있는데 그 서랍은 아주머니들의 공동 금고다. 그 속에는 이름이 적힌 컵들이 빼곡하다. 백 원짜리 동전이 각기 다른 분량으로 들어있는 화투 밑천 컵이다. 따건 잃건 가져가는 일 없이 그곳에 공동으로 보관한다. 화투놀이를 하면서 매일 준비하는 점심과 청소 등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다툼은 없다. 이 작은 공동체의 평화가 우리 마을이 인심 좋은 고장으로 자리 잡는데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이순영, 오세훈, 이은영, 전경순, 윤현자님 등 얼굴도 이쁘고 이름도 이쁜 아주머니들. 자세히 보고 가까이에서 보면 어여쁘지만 그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야생화를 닮은 이름들. 비록 이름을 기억해주는 이 몇 안 되어도 살아가는 데 별 지장은 없다. 온 국민의 입에 오르내리는 몇몇 이름이 나라를 들쑤셔놓거나 말거나 우리 동네 아주머니들을 오늘도 작은 세상의 평화를 만들어간다.

최귀옥 / 월간 순수문학 시 부분 신인상, 월간 축산 묵장 수기 당선, 농업인 신문 영농수기 당선

   
 

최귀옥
월간 순수문학 시 부분 신인상,
월간 축산 묵장 수기 당선,
농업인 신문 영농수기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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