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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다 그렇다이상분

[한국농어민신문]

얼마 전에 뉴스에서 접한 소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축사에 불이 났다고 한다. 80m 쯤에 떨어져 있는 주인의 거처까지 달려온 어미 소가 위급상황을 알리고는 화상을 입고 숨을 거뒀다는 이야기다. 머리로 마루를 들이받으며 울부짖어서 주인을 깨웠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몸에 전율이 일며 소름이 돋았다.

우사 밖을 나와 본 적이 없는 그 소가 어떻게 주인집을 알고 찾아왔을까! 오로지 새끼들을 살려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뛰었을 소를 생각하니 그 긴박한 상황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 마음이 아려온다.

마을이 이주해온 이후로는 안타깝게도 짐승을 키울 수 없는 환경으로 바뀌었다. 농촌이지만 도시형 마을로 조성하다 보니 강아지 키우는 것조차도 이웃에 눈치를 보아야 하는 실정이다.

이주 전까지만 해도 늘 소와 함께했다. 어릴 적에는 외양간이 대문 안에 있어서, 서로 마주 보며 생활했고, 그때는 소가 친구이며 또, 한 가족이나 진배없었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는 모든 과정과 집안의 대소사를 다 꽤 차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아주 까마득한 여름날에 일이다. 아침부터 어른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여느 날과는 다르게 쇠죽이 끓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솥에다 콩깍지와 쌀겨를 아끼지 않고 듬뿍듬뿍 넣으신다. 어머니는 빳빳하게 풀물을 한 할아버지의 모시 적삼을 챙겨서 사랑채로 가져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삼촌과 나의 친구 노릇을 해주던 송아지에게 코뚜레를 매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날이다. 경험 많은 어미 소는 오늘이 무슨 날이라는 것을 알아챈 듯 낮은 소리로 연신 애타게 송아지를 찾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하무인격인 송아지는 코뚜레가 불편한지 천방지축으로 날뛰며 학교 가는 우리의 앞길을 막는다. 여느 때와는 다른 분위를 감지했지만, 철부지인 우리는 무슨 영문인지를 알 리가 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송아지가 보이질 않는다. 어미 소도 없었다. 외양간에도 마당가 쇠말뚝에도 어미 소와 송아지는 보이지가 않았다. 송아지의 행방을 물으니 장에 팔러 갔다고 할머니가 넌지시 일러 주신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친구였던 송아지가 없어지다니 믿을 수 없었다.

밤늦게 우시장에서 돌아오신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미 소는 매우 지친 듯 초췌한 모습이었다. 새끼를 떼놓고 온 어미 소는 반미치광이가 되어 벽에 머리를 박아가며 입가에 거품을 품고서 송아지를 찾으며 울부짖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얼마나 울부짖으며 왔는지 소리가 쉬어서 잘 나오질 않았다. 어미 소의 울음소리로 식구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처음으로 한없이 밉다고 생각했었다.

다음날 아침, 생일에나 먹을 수 있었던 소고깃국이 상에 올라왔다. 그러나 난 먹지 않았다. 그저 어른들이 밉기만 했다. 어미 소도 새끼만을 찾으며 며칠째 소죽과 풀에 입도 대지 않았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더니 결국 두 줄기의 진한 눈물을 흘리고 만다. 내 친구인 송아지도 어미가 그리워 울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서러워 눈물이 났다. 그러나 눈에서 멀어지면 잊힌다는 말처럼 어미 소의 울음소리도 잦아들고 나도 그 송아지는 서서히 잊혀 갔다.

소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생리적인 현상으로 몸의 긴장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나의 얕은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다. 긴장 때문이라니, 어찌 됐건 소에게도 감정이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 아닌가. 떼어 놓고 온 자식을 찾으며 밤새워 울부짖고 또, 화마에 휩싸인 새끼들을 구하고자 높은 울타리를 뛰어넘어 주인을 찾아와 울부짖는 모성은 무엇이란 말인가. 감정의 눈물이 아니라니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며칠 전 복날을 맞아 연로하신 부모님을 뵙기 위해 친정에 들렀다. 애호박을 싣고 갔던 P BOX를 챙겨 나오려 하는데, 늙은 여식이 아직도 어리게만 보이는지,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아버지는 굳이 당신이 들어야 한다고 나를 밀쳐내신다. 부모에게 자식은 늘 챙겨야만 할 대상인가보다. 그런 부모님이 곁에 있음이 그저 자랑스럽기만 하다.

어미 소 덕분에 살 수 있었던 새끼소들은 목숨과도 바꾼 어미의 그 끝없는 사랑을 알고나 있으려나. 종(種)을 불문한 모든 어미의 사랑은 다 그렇다.

/이상분 계간 좋은수필 신인상, 좋은수필 작가회 회원, 한국농어민신문 ‘밥상일기’ 기고, 경기도 평택시 소사벌 서예대전 초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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