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경

[한국농어민신문] 

옥동리 옥골, 마을 바로 앞에는 만여 평의 연꽃 방죽이 자리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원통으로 보이지만 방죽은 둘로 나뉜다. 왼편으로는 소들이 즐겨 먹는 줄이라는 풀이 자라고, 자라 등 같은 둑을 경계로 오른편이 연꽃 방죽이다. 

방죽은 농사철과 홍수 때 주로 이용한다. 강수량이 많으면 먼저 큰 연꽃이 자라고 있는 쪽부터 물을 뺀다. 이후 날씨를 보며 경계 둑을 눌러 두면 자연스레 물이 빠져나간다. 그 물은 실개울을 따라 흐르다 여러 갈래의 봇도랑으로 나뉘어 논으로 들어간다. 

오래전 방죽은 조무래기들의 놀이터였다. 대야만 챙겨 물로 들어가면 연 줄기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우렁이를 잡을 수 있었다. 대야를 앞으로 살짝살짝 밀며 우렁이를 잡다 보면 금세 가득 찼다. 저녁이면 매미처럼 생긴 방개가 가장자리로 다글다글 몰려와 잡기만 하면 되었다. 한복판으로 들어가도 얼기설기 자란 연 줄기가 있어서 물에 빠질 염려가 없었다. 발가락으로 연 줄기를 잡은 후 코를 막고 물속으로 들어가 잡아당기면 연한 연근이 뽑혀 나왔다. 그 자리에서 물에 흔들어 먹으면 오이 맛과 바나나 맛이 났다.

소담스럽게 핀 연꽃이 한 잎 두 잎 수면 위로 떨어지고, 가운데의 노란 수술이 품어내는 향내는 온 마을을 품어 안았다. 꽃잎 진 자리에서 밤 맛이 나는 연밥이 익어가면 조무래기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일찍 떨궈진 꽃자리에 연밥이 익었다는 징조다. 

때가 되었다. 단짝인 원이와 성냥과 소금을 주머니에 넣고 살금살금 고무함지박을 타고 방죽으로 잠입했다. 널찍한 연잎을 따서 머리 위에 얹고, 톡톡 연밥을 따 긴 줄기에 꾀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살금살금 줄기를 잡아당기며 앞으로 나간다. 그때쯤이면 “그 안에 누구여?” 하며 누군가 소리를 지른다. 들켰나 싶어 산 쪽으로 도망치다가도 오빠들이 쳐놓은 그물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가물치나 뱀장어 한 마리를 슬쩍 빼돌리곤 앞산으로 들어가 잔가지를 모아 불을 지핀다. 넙데데한 돌을 달궈 그 위에 물고기를 올리면 최고의 맛이다. 때때로, 중년이 된 그때의 친구들이 모이면 어렸을 적부터 이야기한다. 방죽에서 보양식만 먹어 백 살은 너끈히 살 거라며. 

얼마 전 연예인 이덕화 씨를 포함하여 ‘도시 어부’의 제작진이 다녀갔다고 한다. 그 많은 사람이 종일 낚시를 던졌는데 겨우 붕어 한 마리만 잡았다는 것이다. 이장님은 도랑을 타고 흘러 들어간 폐수 때문일 거라고 했다. 겨울이면 얼음을 깨고 낚시를 즐기려 도회지 사람들이 관광 차를 타고 몰려들었던 방죽, 우리는 썰매를 타며 기차놀이에 빠졌고, 한쪽에서는 고무신 가운데에 새끼줄을 칭칭 감고는 공차기를 했다. 웅웅 얼음도 응원했다. 어른들은 얼음이 운다고 하지만 나는 힘찬 응원 소리라고 느꼈다.

요즘은 방죽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다. 양동이 들고 모였던 조무래기들의 목청도 들리지 않는다. 지지고 볶으며 살았던 예전에 비교하여 삶은 풍부해졌지만, 동리에는 청년도 아기도 없다. 연꽃만큼 많았던 옥골 주민, 부지깽이 들고 언성 높이며 연밥처럼 다글다글 뭉쳐 살았던 그때 그 시절이 참말 그립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