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성 여성현장
[농촌여담] 나는 농사꾼이다금경애

[한국농어민신문]

겨울 가뭄이 심각하다. 마을 앞 시냇물까지 말라버린 가뭄에 겨울을 나고 있는 사과나무를 바라보는 내 심정이 타들어 간다. 이러면 꽃눈이 부실해지고 올 농사에 지장이 있을 듯해서 과수원을 둘러보고 왔다. 곧 전정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일손 구하기가 힘들어 늦어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남편과 시아버지 둘이서 이 큰 과수원 전지를 다 했다. 물론 뒷정리는 내 몫이었다. 잘라 놓은 가지들을 파쇄기로 칩을 내 밭에 거름으로 쓰고 그럴 수 없는 곳은 낫으로 잘게 쳐 묶어 냈는데 허리가 무척 아픈 일이었다.

요즘은 남편도 수술한 허리가 아프다고 한다. 무리한 탓일 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까지 허리가 아파 올해도 일손을 사려는 것이다.  인건비 걱정에 어떻게든 내가 했으면 싶지만 아픈 허리로는 힘을 쓸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남의 일손을 빌릴 수밖에 없다.

연 수입이 억대 농가라고 하지만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사과 가격은 몇 년째 그대로인데 농자재 값이나 인건비는 해마다 오르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내 인건비도 못 건지는 게 농사다. 그러니 남의 손 빌리지 않고 해야 그나마 조금 남는다. 그러나 올해 역시 어쩔 수 없이 전정 전문 인력을 사서 이틀 작업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내 손으로 농사를 제대로 지으려면 무슨 수를 써서든 허리를 고쳐야 한다.

생각 끝에 난생처음 수영장에 입성했다. 며칠이 지났지만 물이 무섭다. 발이 닿지 않으면 순간 당황해서 벌컥 물 한 사발을 먹어 치운다. 오늘도 그렇게 수영장 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집으로 왔다. 

수영장에서 오는 길에 이웃 할머니 집 앞에 대기 중인 택시를 보았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들어가 보니 할머니가  나오시는데 쩔쩔매신다. 인공관절 수술을 하셨는데도 걷는 게 힘들다 하시며 겨우 타시고는 허한 웃음을 보이신다. 병원 치료받으러 가시는 길이란다.

혹사시킨 몸은 세월을 건널수록  삐걱거리기 시작하고, 종국에는 허리, 무릎, 손가락 등 성한 곳이 없어진다. 시부모님 두 분 역시 인공관절 수술을 하셨고 남편 또한 척추에 인공 디스크 세 개를 넣고도 농사일을 한다.

나 역시 수술을 한다 해도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열심히 치료해서 일할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려 애쓴다. 그러나 심한 통증이 몰려올 때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절박함이 들었다. 수술해서 안 아프다면 얼른 하고 싶었다. 주위에서 수술하신 분들이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조언해주시니 그 또한 조심스럽다. 그래서 수술 없이 약물이나 운동 등으로 허리 건강을 찾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농촌에서 일이 없으면 심심하다. 어쩌다 몸이 아파서 집에 있으면 하루가 지루할 만큼 길다. 논·밭을 휘젓고 다닐 때면 어느새 해는 서산으로 숨어들고 어둠이 팔을 펼쳐 안는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구나. 편안히 쉴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양 개선장군의 위세로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일어서는 것도 앉는 것도 힘이 든다. 다들 백세 시대라고 하지만 칠부 능선에 서 있는 내 몸은 누더기가 되어가고 있다. 이것이 농촌의 현실이다.

내 허리가 아파도, 겨울 가뭄이 심해도 전정이 끝난 사과나무는 곧 움찔 거릴 것이다. 가문 땅에서도 기어이 물을 찾은 뿌리는 꽃눈을 향해 생명의 물기를 올려 보낼 것이다. 그 물기를 머금은 꽃눈은 통통하게 생기를 품고 막바지 추위도 이겨낼 것이다. 그러다 보면 봄은 어느새 발밑에서 꼬물거리기 시작하고 이에 질세라 얼음 속 시냇물도 작은 소리로 속삭일 것이다.

힘은 들지만 나는 사과농사가 좋다. 시시각각 커가는 새순이며 사과 알을 보면 그 얼마나 대견하고 이쁜지. 사과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나는 곳곳에 숨어있는 행복을 마주하고는 했다. 긴 세월 나를 행복하게 해 준 사과나무. 칠팔월 못지않은 가뭄 속에서 겨울을 나는 사과나무를 보며 다짐한다. 사과나무가 겨울가뭄과 추위를 이겨내듯 나도 이번 시련을 잘 이겨낼 것이라고. 치료를 잘해 이 통증에서 벗어나 산비탈 과수원을 다람쥐처럼 뛰어 다녀야지. 그렇게 신명나게 사과농사를 짓고 싶은 나는 농사꾼이다.

/금경애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원, 모듬북 공연단 ‘락엔무’ 회원, 사과과수원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농어민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관련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성 많이 본 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