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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더위 탓형효순

오늘이 처서다. 그런데도 여전히 매미소리마저 덥다.

한 보름 마당에 풀장을 만들어 물장난을 치던 손자가 올라가면서 필통을 두고 갔다. 중요하지 않다더니 꼭 필요한 것이 들어 있단다. 필통만 보내기 허전해 포도를 한 상자 사서 우리면 우체국으로 갔다. 직원이 너무 더워 상할 것 같으니 보내지 말잔다. 하긴 벌써부터 땀이 줄줄 흐른 것을 보니 안 될 것 같아 다시 포도 상자를 풀어헤치고 필통만 보냈다. 섭섭한 마음을 뒤로하고 차안으로 들어갔는데 열쇠가 없다. 우체국을 들랑날랑, 가방 뒤집기 두어 번, 두리번거리기 서너 번에 옷이 땀으로 담방 젖는데 아무데도 열쇠가 없다. 머리가 띵하다. 우체국 국장님까지 나서서 찾았던 터라 직원들 보기도 민망해 차로 돌아와 멍하니 앉아 있는데 이런 세상에 열쇠는 운전대에 얌전하게 꽂혀 있는 것이 아닌가! 애초에 빼지도 않았으면서 안절부절 하는 내 모습을 열쇠가 보기에 얼마나 웃겼을까. 소리쳐 부를 수도 없었을 테고, 아마 입이 있었으면….

“그래 정신없는 주인님 오늘 혼 좀 나보쇼. 벌써 몇 번째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숨바꼭질도 한 두 번이래야 웃고 넘어가지 쯧쯧. 예전에도 내 몸에 빨간 종, 조그만 지갑, 커다란 인형도 매달아 보았건만 매 번 그러니 어쩌면 좋소? 더구나 첫 열쇠는 어디에 두었는지 오래전에 없어졌고 나는 보조 열쇠가 아니요. 어제도 상의 주머니에 나를 넣어두고 밭고랑마다 두둑마다 찾아다니면서 아저씨한테 혼도 많이 나던데 자기 몸에 넣어두고 찾는 모습이 참 안타까웠소. 그제는 또 어떻고 고추를 따고 바쁘기도 하고 안과 밖이 잘 구별되지 않는 옷이라지만 시내 가는데 윗옷이 뒤집어 졌더라고. 알려줄 수 없는 내가 벙어리 냉가슴 앓는 딱 그 짝이었구만. 그 여자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거리를 우아한 척 다녔을걸. 누군가 슬금슬금 쳐다보면 자기 옷이 예뻐서 그런 줄 알고 은근히 좋아 했을지도 몰라. 벌건 얼굴로 차안으로 들어와 뒤집어 입는 모습이 가관이었소.”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나중에는 치매까지 들먹일지도 모른다. 어이구, 제발 열쇠님! 그만 하라고 나라고 그러고 싶겠소? 그리고 지금 올 여름 더위가 보통더위요? 몇 십 년 만이라고 하지 않았소. 내 탓이오 더위 탓이지.
 

   
 

형효순
전북문인협회 회원, (사)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장 역임
행촌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재주넘기 삼십년’, ‘이래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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