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봉희

[한국농어민신문] 

몇 년 전, 전남 진도의 신비의 바닷길 이라는 곳으로 1박 2일 세미나를 갔었다. 신비의 바닷길은 1975년 주한 프랑스 대사가 진도로 관광을 왔다가 바닷길이 열리는 것을 보고 프랑스 신문에 소개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 두 차례 길이 열린다고 했다. 바로 옆에는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뽕할머니 동상이 있었다. 나는 가족의 건강과 더불어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옆에 있던 문우는 시집간 딸에게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빌고 있었다. 그때 나는 '설마 저런 기도는 안 하겠지' 했다. 그때 딸이 결혼한 지 4개월밖에 안 되었을 때였다. 

그런데 1년 지나고 2년이 지나자 은근히 걱정되었다. 딸에게 아기가 생기지 않는 것이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그때 뽕할머니한테 기도를 올렸어야 했는데,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남편과 나는 시간을 내서 다시 진도를 찾아갔다. 뽕할머니 앞에 섰다. 

“뽕할머니! 우리 여식에게 아이를 점지해 주십시오.”

우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고 올라왔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아침부터 까치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막연하게나마 좋은 소식을 기대하고 있었다. 오후에 딸한테 전화가 왔다. 밝은 목소리가 뭔가 기분 좋은 소식이 전해질 것만 같았다.

“엄마 지금 뭐 해요?”
“오이 따고 있지.”
딸아이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 앉아서 전화를 받으라고 했다.

“엄마, 기쁜 소식이야. 나 임신했데”
“정말이야? 진짜지?”
“3주 됐데. 엄마 이제 할머니 되는 거야. 엄마가 너무 좋아서 뒤로 넘어질까 봐 방에 앉아서 전화를 받으라고 한 거야.”
이렇게 좋고 감격스러울 수가. 임신이라니, 결혼한 지 3년 만의 일이다.

하우스 안이라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는데도 에어컨을 켠 듯 마음은 무척이나 시원했고, 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부른 듯 하여 종일 콧노래만 흥얼거렸다. 남편은 할머니 되는 게 그렇게도 좋냐 면서도 나보다 더 신이나 싱글벙글한다. 

시부모님께는 천천히 알리라고 했더니 신랑이 벌써 소식을 전했다. 시부모님은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오셔서 용돈까지 주고 가셨다. 딸은 임신하자 직장도 그만두고 출산에만 신경 썼다. 그 덕분인지 아이가 너무 커서 제왕절개수술을 했단다. 

남편과 나는 한걸음에 달려가서 딸과 아이를 보았다. 금방 낳은 아기답지 않게 머리는 새까맣고 코도 오뚝하고 입은 앵두처럼 작고 이목구비가 정말 예쁘다. 이렇게 해서 나는 할머니가 되었다.

출산 후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가 우리 집에 왔다. 똥도 예쁘고 울음소리도 이 세상에서 최고 좋은 노랫소리로 들렸다. 목욕시키고 아기 옷을 빠는데 너무나 작은 옷이 앙증맞고 특히 아기 양말이 너무나 귀엽고 예뻤다. 나는 아기 옷을 건조대에 안 널고, 마당에 빨랫줄을 길게 메어 거기에다 널었다. 우리 집에 손주 있다고 자랑하고 싶어서였다. 아무래도 나는 손주 바보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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