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안

손바닥만 한 텃밭에서 고구마를 캐는 날, 두 사위가 앞장 서 넝쿨을 걷어낸다.

사위들 뒤에서 딸과 나는 널찍한 두둑을 타고 앉아 보물을 찾는다. 옆 이랑의 딸 입에서 외마디 탄식 소리가 나온다. 요령 없이 두둑 위 흙에 호미질하다 고구마를 찍은 것이다. 고구마를 캘 때는 먼저 두둑의 오른쪽 왼쪽 옆구리 흙을 번갈아 가며 파야 한다. 호미 끝을 땅에 대고 두 손으로 지그시 누르며 당기노라면 묵직한 느낌이 호밋자루를 통해 전해온다. 이때 아래쪽 흙을 살살 긁으면 드러나는 자색의 보물, 고구마는 의좋은 형제처럼 한 줄기에 올망졸망 달려 나온다. 지난 오월에 고구마 순을 모종할 때는 가뭄이 몹시 심했다. 그래서인지 올해 고구마 작황이 저조하다고 들었는데 뜻밖의 풍작이다.

“고구마가 무처럼 커요.”

넝쿨을 다 걷어내고 고구마를 캐던 큰사위가 무만큼 큰 고구마를 들고 껄껄 웃는다. 내가 캐는 이랑은 고만고만한데 큰 사위는 제대로 손맛을 보는 중이다.

“이 사람아, 소발에 쥐잡기라는 말 들어 봤는가?”

나는 농사지은 지 삼십 년이 지났지만 고구마 농사는 올해로 겨우 두 번째다. 그것도 고구마 순 달랑 두 단을 심었으니 농사랄 것도 없다. 가뭄이 심했지만 복숭아 농사일에 밀려 물도 몇 번 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땅은 이렇게 실한 고구마를 키워냈다니.

고구마뿐만이 아니다. 풍부한 가을 햇볕 덕분에 들녘의 벼들도 통통하게 알이 찼다. 콩밭에는 유난히도 콩잎 단풍이 곱더니 콩 꼬투리가 오지게 열렸고, 윗집 언니네 배추는 김장할 때가 된 것처럼 속이 찼다. 땅속에서도, 땅 위에서도, 저 아니고는 아무도 할 수 없는 장한 일을 해 놓고도 땅은 도무지 생색이 없다. 나 같은 소인배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현인의 모습 아닌가. 땅의 깊은 도량에 내가 부끄러워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예순이 되어도 나는 아직 철부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뭐 좀 잘했다 싶으면 인정받아야 좋고, 조금 억울하다 싶으면 바르르하고 반응한다. 나이에 걸맞게 점잖아져야 하거늘, 올해 특히 마음에 걸리는 장면이 두엇 있다. 돌아서면 후회할 짓을 왜 버리지 못하는지. 어쩌겠는가.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면 고쳐서 살아야지. 하지만 예순 나이를 사는 동안 굳어진 성격을 과연 고칠 수 있을까? 예순 철부지에게 정신 번쩍 나게 해 줄 스승은 누구일까?

“장모님, 이것 좀 보세요. 서연이 머리통만 해요!”  

이번에는 작은 사위가 호박같이 둥근 고구마를 들어 보인다. 이다지도 번듯한 고구마를 품고도 그동안 어찌 그리 시치미를 뚝 떼었더란 말인가. 이제야 알겠다. 예순 철부지에게 정신 번쩍 나게 해 줄 스승이 누구인지. 항상 내 발아래에 있는 땅의 이 겸손한 모습이 바로 나를 의젓한 인간으로 이끌어 주리라는 것을.    
 

 

이수안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편집장, 회장 역임
한국포도회 이사
향기로운포도원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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