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농(愚農) 최양부

1945년 10월 ‘해방세대’로 태어난 나는 지난 72년간 질풍노도와 같은 대한민국의 온갖 풍상을 온 몸으로 보고, 듣고, 느끼며 자랐고, 한때는 나라의 부름을 받아 세상에 나가 나라와 국민과 ‘3농(農, 농민, 농업, 농촌)’을 위한 일을 하며 지금 여기에 와 서있다.

나의 길 70년은 곧 우리 대한민국 70년 현대사이기도 하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한 한반도는 남북으로 갈라졌고 남한은 미군정, 북한은 소련군정의 시대가 열렸다. 남북은 미소의 냉전구도 속에서 이념적 갈등에 휩싸였다. 해방정국의 좌우갈등과 미군정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대한민국 최초의 국민에 의한 직접선거로 국회를 구성하고, 7월 17일 제정된 주권재민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주의 등 새로운 대한민국 가치를 담은 제헌헌법에 따라 8월 15일 자유민주공화국으로 건국되고 초대 이승만 정부가 출범했다.

1948년 건국당시의 대한민국은 전형적인 ‘3농’ 중심의 농경국가였다. 농업은 국부의 원천이었고 대다수 국민들의 삶의 양식(樣式)이었다. 대한민국은 6.25 동란이 남긴 폐허를 딛고 일어나 1960~7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1980~90년대 개방화와 민주화를 이루며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대한민국은 서구가 500여년에 걸쳐 이룩한 산업화와 개방화, 민주화를 50년으로 압축하며 도시산업국가, 글로벌 통상무역국가, 지유민주주의국가로 천지개벽했다.

그리고 2000년대를 맞아 정보지식국가가 되었다. 이제는 압축적 산업화가 가져온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 등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탈산업적 생태주의와 신자유주의로 심화된 계층 간 소득격차와 불평등해소를 위한 ‘협동과 공생’의 새로운 ‘생태문명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70년사를 3농의 관점에서 보면 화려한 현대사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그 것은 격동과 격변의 ‘탈농화(脫農化, deagriculturalization)’의 역사였으며 3농의 변천사요 수난사였다. 그것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 몰아치는 태풍과도 같은 산업화, 개방화의 충격을 받으며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붕괴되고 해체되고 재편되어온 3농의 아픈 역사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농자(農者)들의 헌신과 희생,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자기혁신의 몸부림이 있었다.

농과는 무관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1964년 ‘우연히’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경제학과에 입학하면서 나는 우리 ‘3농’과 ‘천생의 연’을 맺었다. 그리고 지난 53년간 산업화와 개방화의 격랑에 휩쓸린 농을 붙잡고, 농을 아파하고 사랑하며, 더 나은 농의 내일을 그리며 살아왔다.

농을 품고 ‘세상을 다스려 어려움에 처한 농을 구한다’는 ‘경세제농(經世濟農)’의 일념으로 살아왔지만 53년이 지난 2018년 오늘 우리 농자가 겪고 있는 어려운 역사적 현실 앞에 서니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죄송한 마음 뿐이다. 이렇게 밖에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과 허탈감, 그리고 허무감마저 든다.

인생은 연속되는 우연의 길을 걷는 삶인지도 모른다. 내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특히 그렇다. 1964년 내가 농대 농경제학과에 들어간 것이, 농업경제학이란 학문에 뜻을 세우고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것이 그렇다. 1968년 농촌진흥청 농업경영연구소의 임시연구원이 된 것도, 1972년 미국유학을 가게 되고 그것도 미주리 대학교로 가게 된 것도 그렇다. 미국유학에서 돌아와 1978년 4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자리를 잡고 농어촌지역종합개발과 21세기농정비전을 연구를 하게 된 것도, ‘전쟁과도 같았던’ UR농업협상에 나서게 된 것도, 청와대 농림해양수석비서관과 주 아르헨티나 대사를 하게 된 것도, 농식품신유통연구원을 만들고 농협제자리찾기국민운동을 만들어 농협개혁운동을 하게 된 것도 그렇다. 어느 것 하나 내가 사전에 목표를 세우고 계획하고 준비해서 걸었던 길이 아니었다.

세월이 가고 세상이 바뀌면서 시대가 요구하는 일들이 우연히 나에게 찾아왔고 나는 그 일들을 바르게 완수하기 위해 세상과 농과 나와 싸우며 나의 길을 걸어왔다. 그것은 우리 농의 시대적 과제를 붙잡고 더 나은 농의 내일을 고민하며 세상과 맞서고 농과 벌린 나의 정신적 싸움의 역사였다.

그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나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 싸움을 포기하는 순간 내가 농과 함께한 53년의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 싸움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愚農의 자전적 농정사-經世濟農>은 농을 품고 살아온 나의 지난 53년, 그 치열했던 날들에 대한 나의 반성과 성찰의 기록이다. 그것은 나의 자전적 농정사이며 대한민국 농정사이기도 하다.
 

약력
출생 : 1945년 10월 10일, 광주
1968 서울대학교 농업경제학
1972 서울대학교 대학원 농업경제학석사
1977 미주리 대학교 대학원 농업경제학 박사
1978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1993 대통령비서실 농림해양수석비서관
1998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2000 농식품신유통연구원 이사장
2002 밀양대학교 석좌교수
2003 주아르헨티나대사관 대사
2006.08 ~ 2007 대한민국 농업통상대사
2007 한국아르헨티나협회 회장
2008 경상북도농어업FTA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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