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우농 최양부

그동안 폐쇄경제의 틀 속에서 세워진 농정의 기본 틀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새로운 대안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농정혁신의 기본은 우리 농수산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농수산업의 장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농어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새로운 농정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1988년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간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대통령소속 경제구조조정자문회의’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나는 1987년 2월부터 추진해온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1세기 농정기획반’ 특별작업의 막바지 마무리작업을 추진하는 한편 자문회의 일을 해야 했다. 대한민국의 유수한 경제전문가들인 자문위원(28명)과 전문위원(8명) 간의 농정에 대한 상충하는 다양한 의견들을 조정하고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국제적 개방시대의 농수산업 발전을 위한 대안적 농정 방안을 정리하는 작업은 그만큼 정신적 부담도 컸다. 그러나 이런 일은 아무 때나 할 수 있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어서 농정연구자로서 도전해 볼만 한 보람 있는 일이었다. 나는 이 일이 나에게 주어진 것을 감사하며 ‘시대적 소명’으로 생각하고 도전에 나섰다.

다만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1987년 2월 이후 1년 넘게 21세기 농정기획반 특별작업을 통해 미래농정의 목표와 과제 등에 대해 상당 수준 구체적으로 정리해 왔기 때문에 이를 간추려 자문회의에 보고하고 자문위원들의 의견을 들어 수정 보완하면 더욱 설득력 있는 농정 대안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21세기 특별작업과 자문회의 일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의 작업이며, 오히려 그동안 추진해온 특별작업 결과를 정부 정책에 반영시키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21세기 특별작업의 주요 내용과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하여 1988년 5월 18일 ‘산업사회의 농업문제와 농업정책’이란 제목으로 자문회의에서 발표하고 자문위원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반응과 의견을 수렴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통령에게 건의할 자문회의 농정 건의(안) 작성에 집중했다. 농어민과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대정부 건의안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30년여 전 고뇌의 자취(自取)가 자문회의 보고서에 남아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경제선진화를 위한 기본구상, 경제구조조정자문회의, 1988.10:88-105, 150-157)

자문회의는 GATT 발(發) 국제적 개방화에 도전하기 위한 농정의 비전과 과제는 산업화의 충격 속에 시장화, 국제적 개방화, 그리고 민주화와 지방화 등 급변하고 있는 국내외 정치경제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그동안 폐쇄경제의 틀 속에서 세워진 농정의 기본 틀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새로운 대안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농정혁신의 기본은 우리 농수산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농수산업의 장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농어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새로운 농정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농수산경제의 주체인 농어가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그들의 소득과 생활 등을 경제적으로 안정시키는 방안이 되어야 한다. 농수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호당 평균 1.2정보 수준의 영세 소농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들의 영세 소농구조 자체를 혁신시켜야 한다.

자문회의는 연간 7∼8%를 상회하는 농수산업과 공업부문 간의 구조적 성장격차와 그로 인한 농어가의 상대적 저소득을 농산물시장개방을 억제하고 농산물가격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식으로 해결해온 폐쇄 경제적 방식은 개방경제 시대에는 더는 유용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농어가의 20∼30%는 사회복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영세빈곤층이며 이들의 지속적인 소득향상과 생계안정을 농산물가격지지정책만으로 달성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농수산업이 국제적 개방화 등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농수산업 자체를 능률산업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영세 소농구조의 혁신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자문회의는 농수산업의 구조혁신은 미래에 도전하는 개혁 의지와 적어도 10, 20년 앞을 내다보는 미래에 대한 장기비전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기본입장을 정리했다.

자문회의는 21세기 농정이 수행해야 할 기본목표는 국민의 안정된 식생활을 위한 농수산식품을 능률적으로 생산 공급할 수 있게 그동안 토지생산력 향상을 통한 ‘증산’ 위주 농정을 농업노동력 감소와 시장경제화에 대응하는 노동생산성 향상을 추구하는 ‘효율성’ 중심으로 농수산업을 능률화하고, 임업은 ‘조림녹화’에서 산지 자원화를 위한 다목적 이용과 ‘산림경영’중심으로, 수산업은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발전해야 하는 구조전환의 단계에 와 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21세기 산업사회 농정은 산업으로서 농수산업, 지역으로서 농산어촌, 자원으로서 농지, 산지, 바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농어민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산업사회의 종합농정’으로 재정립해야 하며 그 중심은 그동안의 ‘품목 중심농정’을 ‘사람 중심’으로 바꾸는 ‘구조혁신 농정(구조 농정)’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농수산업 구조혁신을 보완하는 농촌공업개발과 농촌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농촌지역종합개발정책, 농어민연금제도와 영세빈곤 농어가의 생활 안정을 지원하는 사회보장정책, 국토환경자원인 농지, 산지, 바다를 합리적으로 관리 보전하고 이용하는 국토자원정책 등을 유기적으로 일관성 있게 추진할 것을 건의했다. 1988년 10월에 제출된 경제구조조정자문회의 보고서에 담긴 ‘21세기 농정구상’은 1989년 4월 농림수산부의 ‘농어촌발전종합대책’ 수립에는 물론 1993년 12월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 이후 새롭게 수립된 김영삼 정부의 ‘변화와 개혁의 신농정’으로 이어졌고 이후 역대 정부에서 수정 보완을 거치며 3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우리 농정의 기본 틀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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