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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 최양부의 자전적 농정사 <8>산업사회와 개방시대의 새 농정을 설계하다-⑥2000년대를 향한 복지농촌건설계획을 설계하다

[한국농어민신문]

우농(愚農) 최양부

정 주생활권이라는 토대에서 통합적인 농촌지역종합개발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군의 자치행정 능력이 획기적으로 혁신되어야 하고, 군이 주민의 요구와 희망 등을 반영한 지역개발 우선순위에 따라 지역개발을 추진할 수 있는 지방자치가 실현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치재정기반이 세워져야 한다.


칼 포퍼 (Karl Popper)는 학자의 삶을 등산에 비유했다. 처음 산에 오르면 바로 눈앞에 더 높은 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시 그 산을 오르고 나면 더 높은 산이 또 나타난다. 그래서 또다시 산에 오른다. 그리고 그때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고 시야는 넓어지고 생각은 깊어진다. 그리고 진리를 터득하게 된다. 그것은 그 산에 오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희열(喜悅)의 세계다. 그래서 학자는 더 높은 산에 오르는 도전을 멈출 수가 없다.

내가 우리 농(農)이란 산에 오르는 도전의 삶을 시작한 것은 1966년 대학 3학년 때 우연히 추진했던 ‘전국 독농가 영농실태에 대한 조사’가 처음이었다. 돌이켜 보니 53년 전의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낮은 산이었지만 처음 오르는 산이어서 힘들었던 산이었다. 그리고 1970~71년간 석사졸업논문인 ‘도시화-공업화에 따른 농가소득의 지역격차에 관한 연구’와 1978~80년의 농촌 새마을운동, 농외소득과 농촌공업개발 연구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나 1970년대에 올랐던 산들 가운데 1974~77년간 박사학위 논문을 쓰며 올랐던 ‘농업경제학의 이상과 논리에 대한 성찰’은 정말 높고 험한 산이었고 많은 깨달음을 준 산이었다.

1982년 강진 농촌정주생활권개발 기본구상(‘강진구상’)은 내가 올랐던 또 하나의 높고 험한 산이었다. 나는 강진을 붙잡고 2000년대를 향한 복지농촌건설의 꿈을 꾸었다. 돌이켜 보면 강진구상이란 새로운 산에 오르지 못했다면 아마도 나의 농촌연구의 미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일생일대의 도전이었고 우리나라 농촌개발역사의 새 장을 여는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과 보람을 가지게 한 연구였다. 강진구상은 산업사회 농정의 새 비전을 품게 한 연구였다.

강진구상에 앞서 주민들의 강진 정주생활에 대한 만족도와 그들의 개발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일반 주민(386명), 이장(241명), 강진지역의 단체장, 기관장, 공무원(204명)을 대상으로 지역생활만족도를 조사했다. 총 응답자 818명 가운데 주민들의 24.1%, 지역지도자들의 35.1%가 지역 생활에 대해 불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들 가운데 주민의 64.1%, 지도자의 46.7%가 계속 강진지역에 거주하겠다고 했다. 강진을 떠나겠다는 주민도 19.3%, 지도자는 34.2%나 되었다. 조사가구 386호 가운데 이촌(離村)자가 있는 216호 가구(56.0%)에서 총 457명(가구당 평균 2.1명)이 강진을 떠났다. 이들 가운데 61.8%(278명)가 고졸 이상의 학력자였고, 95.4%(436명)가 30세 미만이었으며, 이들 중 90.2%(388명)가 도시지역으로, 그 가운데 46.3%가 서울, 부산 등 대도시로, 33.7%는 광주 등 도내 도시로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촌자들의 70%(320명)가 취업을 위해, 나머지 30%는 취학 때문에 강진지역을 떠났다고 했다. 인구추이 장기전망을 해 보니 1970~80년간 연평균 2.0%씩 감소해온 추세를 연장하면 1980년 인구 11만4135명이 2001년에는 6만5200명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다. 강진지역 주민들의 지역 생활에 대한 높은 불만족과 이촌으로 지역사회가 불안정하고 동요하는 것은 지역 내 산업경제기반이 지나치게 농업 의존적이어서 상공업 등 농업 이외 부문에서의 취업기회가 너무 부족하고, 빈약한 생활환경(취약한 의료, 교통,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 등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강진주민들의 개발수요조사 등에 나타난 주민들의 장래희망 등을 바탕으로 2000년대를 향한 강진 농촌정주생활권 개발 목표를 ‘강진주민들이 강진을 떠나지 않고 지역에서 안정된 소득과 일자리를 갖고 일상생활의 기본수요를 충족시키며 보람과 긍지를 갖고 살아가는 복지 강진건설’이라고 설정하고 이를 위해 농촌정주기반과 정주생활환경 정비, 산업경제와 농업개발, 교육과 인력개발, 의료 등 사회복지개발, 향토문화진흥과 관광산업개발 등 7개의 발전과제를 정리했다. 그리고 각각의 과제에 대한 구체적인 부문별 세부사업전략과 투자계획을 세웠다.

강진구상을 통해 나는 처음으로 농촌 현장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농촌 현실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농촌에 대한 문제의식을 새롭게 정립했다. 농촌이 인구부양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상공업 등 농촌공업개발을 통해 지역 내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주민들의 취업기회가 확대되어야 하며, 농업생산도 주곡 위주에서 경제작물과 축산 등의 확대가 필요하며, 자녀들의 교육환경과 주민을 위한 의료환경 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농촌지역종합개발의 주체인 군(郡)의 취약한 행정 현실을 처음으로 생생하게 접하게 되었다. 정주생활권이라는 토대에서 통합적인 농촌지역종합개발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군의 자치행정 능력이 획기적으로 혁신되어야 하고, 군이 주민의 요구와 희망 등을 반영한 지역개발 우선순위에 따라 지역개발을 추진할 수 있는 지방자치가 실현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치재정기반이 세워져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정주생활권의 관점에서 군에서 읍을 분리 시로 승격시키는 행정구역개편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농촌정주생활권 개발계획의 제도화를 위해 ‘(가칭)농촌개발계획법’의 제정을 촉구했다.

37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강진은 몰라보게 발전했다. 그러나 인구는 2017년 현재 3만6569명으로 줄었고 군이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강진을 덮고 있다. 1982년 농촌정주생활권 개발구상은 젊은 날의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던가? 그러나 그때는 농촌발전을 위한 새 희망과 꿈으로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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