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우농(愚農) 최양부

우리 농정이 농민에게 농업과 농촌의 미래발전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농업은 쇠퇴산업이고 농촌은 ‘언젠가는 떠나야 할 곳’으로 인식하게 하고 ‘적어도 내 자식만은 떠나게 해야 한다’라는 강한 탈농의식을 심고 농촌을 버리고 떠나게 하면서 ‘도시·농촌문제의 누적적 악순환’이 되풀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1985년 5월 경제기획원이 주관한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산업사회 농정론’을 발표한 이후 새로운 자신감으로 이를 더욱 발전시키고 확산시켜 나갔다. 나는 ‘한국농업의 구조변화와 발전지향: 한국농업의 발전방향정립을 위한 시론’이란 언론 기고(사상과 정책, 계간 경향 2(2), 경향신문사, 1985:66-75)와 조선일보가 기획한 ‘21세기 모임’의 ‘전환기의 농촌: 농촌 이대로 두면 국가발전 안된다’ 전문가 집중토론(황인정, 김일철, 반성환, 김정수, 류우익, 최양부) (조선일보 1985년 11월 13일 자 보도)의 대표 집필을 맡아 우리 농정이 당면한 기본문제와 원인을 정리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21세기 산업사회를 향한 새 농정 비전과 과제를 정리했다.

나는 우리 농정의 근본 문제로 1) 농가소득 성장의 한계와 기계화를 위한 영농비 과다지출, 교육비 부담증가 등으로 인한 농가 경제의 만성적 수지 적자와 부채누적, 2) F-사이클 지배로 인한 부재지주와 농지임대차 증가로 농지의 합리적 소유와 이용을 위한 농지 질서의 붕괴, 3) 농촌 젊은 층의 이촌과 비농민화, 농민의 노령화와 부녀화 등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에 대응하고 M-사이클에서 벗어나기 위한 농업기계화 등 농기계 혁명의 지연, 4) 전통적 소농경제의 시장편입과 시장경제질서의 농업지배확산에 따른 노령화된 소농들의 시장 소외와 빈곤화에 대한 사회복지대책 미흡으로 농촌사회 불안정 증가, 5) 농촌사회의 세대교체에 대응한 새로운 산업사회 농업과 농촌을 이끌어나갈 주도적 기간세력형성 등에 대한 정책 부재를 지적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 발생의 첫 번째 원인으로 1960~70년대 고도 경제성장을 위한 국가개발전략이 성장거점개발론에 의한 대도시 우선 개발, 수출주도 성장론에 입각한 대기업 우선 지원의 산업화 전략 추진을 꼽았다. 그 결과 산업으로서 농업과 인간 정주공간으로서 농촌의 발전이 상대적으로 소외되면서 농업은 ‘쇠퇴산업’이, 농촌은 도시를 제외한 국토의 ‘나머지 지역’으로 떠나지 못해 ‘남은 사람들’의 소외지역이 되었으며 노인과 빈곤 문제 등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국민 식량 공급이란 역할 수행마저 위협받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두 번째는 그러한 급격한 산업화의 충격으로 한국 사회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행하는 문명적 대전환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나타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화, 공업화, 도시화, 국제화(개방화) 등 새로운 사회경제환경과 질서, 가치에 대응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우리 농업과 농촌, 농민의 ‘자기변혁의 아픔’이라고 진단했다. 셋째는 이러한 3농(農)의 구조전환 과정에서 전통농업과 농가와 농촌을 지배하고 있는 F-사이클과 M-사이클 등이 일으키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을 국가균형발전의 거시적 관점에서 해결하기 위한 농정철학의 빈곤과 추진전략의 부재를 당면한 현실문제로 지적했다. 이 때문에 우리 농정이 농민에게 농업과 농촌의 미래발전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농업은 쇠퇴산업이고 농촌은 ‘언젠가는 떠나야 할 곳’으로 인식하게 하고 ‘적어도 내 자식만을 떠나게 해야 한다’라는 강한 탈농의식을 심고 농촌을 버리고 떠나게 하면서 ‘도시·농촌문제의 누적적 악순환’이 되풀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나는 오늘의 농업, 농촌, 농민을 둘러싼 농정 문제는 증산이나 가격과 같은 기술적, 경제적 처방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정치, 경제, 사회복지 등의 관점에서 3농을 유기적으로 아우르는 종합처방이 필요하며, 특히 ‘경제성장만을 위해서’ 또는 ‘농민만을 위해서’와 같은 편향된 주장을 넘어 국가발전전략에 대한 국민적 합의에 따라 결정해야 할 21세기 산업사회를 향한 새로운 농정철학과 추진전략에 대한 결단이 필요한 국가적 농정의제라고 강조했다. 나는 ‘21세기를 향한 국가발전은 수출에만 의존하면서 국민 식량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공급하는 인구 5.000만의 도시국가가 될 수 없다’라며 산업사회의 농업·농촌·농민에 대한 새로운 인식 제고를 역설했다. 21세기를 향한 농정은 산업사회화라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 발전지양을 수용하면서 농촌의 산업사회화를 촉진하고 농촌이 사람이 살만한 곳이 되고, 농업은 생활양식이 아닌 직업, 산업이 되어야 하며, 농민은 경영능력을 갖춘 경제주체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농촌산업화를 위해 고용 및 소득기회 확충을 위한 농촌산업경제개발, 농업능률화를 위한 구조혁신과 새로운 농지 질서 확립, 농가소득안정을 위한 다양한 소득원 개발과 농산물 가격안정, 농촌도시화를 위한 교육, 의료, 도로, 교통, 통신 등 농촌생활환경의 획기적 개선이 필요하며, 농촌의 향토적 특성과 주민 개발수요와 우선순위에 따라 농촌개발을 추진하는 지방정부의 자치능력확보와 농·축·수협 등 농민단체들의 자율화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농민은 ‘대한민국 40년사에서 해방과 분단, 건국, 민족상잔의 전쟁 속에서도 국토와 경제를 지키고, 우리 모두의 고향을 지키면서 오늘의 산업 일군을 길러낸 위대한 한국인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역설했다.

1984~85년간 소값 파동, ‘복통(합)영농’에 대한 농민의 거센 저항을 받으며 새로운 농정 대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던 청와대로부터 연락이 왔다.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으로 파견근무 중이던 이상무 농수산부 과장의 연락을 받은 나는 ‘산업사회 농정론’을 이석채 경제비서관과 홍철 국토개발 비서관에게 보고했고, 별도로 사공일 경제수석비서관에게 특별보고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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