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농(愚農) 최양부

경제이론의 틀로 농을 재단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농업경제학자들의 자유로운 영혼과 호기심, 창조적 상상력을 박탈하고 그들을 영구적으로 경제이론의 노예가 되게 하여 결국은 농업경제학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일반경제학, 특히 신고전 경제학을 공부하고 농업경제학에 뛰어든 슐츠-헤디 두 교수가 주장하는 ‘경제이론은 선험적으로 자명한 진리다. 농업경제학자는 경제이론이란 분석 도구를 가져다 쓰는 사람이지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은 학문하는 과학적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농업경제학자의 사회적 존재 이유가 농(農)을 이해하고 농이 당면한 문제를 설명하고 해결방안을 찾기 위한 것인데 시작부터 경제이론을 농에 적용되는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학문적 미성숙으로 낙인찍는 것은 학문적 오만이고 독단이란 생각도 들었다.

농가경제를 기업경제로 간주하라고 하는 것은 농가경제를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학문적 노력 자체를 포기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욱이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시대 이전부터 농사를 지어온 역사적 존재인 농민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업인(경제인)으로 의제(擬制)하고 시장경제에서 경제인처럼 이윤 극대화를 위한 행동을 할 수 없는 농민들에게 오히려 그 결과의 책임을 묻는 것은 역사적 인과관계를 왜곡시키며 농민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고 그들에게 부당한 사회적 편견을 심어 준다. 농업경제학자는 농가의 현실에 비추어 경제이론 등이 타당한지를 비판적으로 검증하고 적합한 이론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는데 그런 노력을 포기하고 경제이론의 틀로 농(農)을 재단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농업경제학자들의 자유로운 영혼과 호기심, 창조적 상상력을 박탈하고 그들을 영구적으로 경제이론의 노예(serfdom)가 되게 하여 결국은 농업경제학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슐츠-헤디의 응용경제학적 방법론이 가진 오류를 찾아내야만 했고 이를 위해 (사회)과학적 방법론과 과학적 객관성, 과학적 지식의 본질과 진리가 무엇이고 ‘선험적으로 자명한 진리’가 존재하는지를 알아야 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농업경제학이란 새로운 학문을 개척하고 독립된 사회과학으로 세우고자 했던 초창기 학자들은 농민이 당면한 현실 세계의 문제를 이해하고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농민에 대한 현장조사를 중시했다. 그들은 방법론적으로 사실적, 경험적, 또는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귀납적 일반화’ 통해 이론을 도출하는 ‘경험적 귀납주의자’였다. 그들은 순수경험만이 지식의 확실한 근원이라고 했다. 이론은 현실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사실적 서술이며 그 진위는 실증적 경험자료들에 의해 검증되어야 한다는 사실주의자였다. 그러나 슐츠-헤디와 같은 응용경제학자들은 경제이론을 수학 법칙과 같이 보편성을 가진 ‘공리(公理)’나 ‘명제’와 같은 경제법칙으로부터 도출된 논리적 연역체계라는 ‘선험적 연역주의자’ 였다. 그들은 귀납적, 경험적 일반화를 부정하고 지식은 순수이성이나 직관을 통해 얻어지는 것으로, 이론을 사실적 서술이라기보다는 자명한 진리의 연역적 논리체계라며 사실주의를 부정했다.

초창기 농업경제학자들과 응용경제학자들은 학문연구의 방법과 지식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입장이 서로 달랐다. 그들은 서양 철학사의 오래된 귀납적 경험주의와 연역적 선험주의 간 논쟁의 연장 선상에 있었다. 나는 두 철학적 입장의 잘잘못을 밝히고 그들을 뛰어넘는 제3의 논리를 찾아서 고민하며 어두운 ‘문헌의 바다’를 떠돌던 어느 날 우연히 칼 포퍼(Sir Karl R. Popper, 1902-1994) 경(卿)의 생각을 만나게 되었다. 그의 과학철학과 인식론에 대한 글들을 읽고 쾌도난마(快刀亂麻)와 같은 그의 생각과 논리에 매료되었고 그의 철학에 빠져들었다.

포퍼는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을 막론하고 모든 학문은 학자들이 개인적으로 또는 공통으로 관심을 가진 현실 세계의 ‘문제풀이(problem-solving)’를 위해 문제를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한 창조적 노력의 결과 얻어진 ‘사실적 서술(true description)’인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지식, 즉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학문은 숨겨진 답을 푸는 ‘정답풀이(puzzle-solving)’가 아닌 답이 없는 문제풀이의 학(學)이다. 그는 사실적 경험과 관찰은 물론 직관과 이성, 논리를 이용하여 명제나 원칙, 이론이라는 지식을 창작한다고 했다. 모든 과학적 지식은 학자들의 호기심과 창조적 상상력의 결과로 얻은 창작물이며 그것이 선험적으로 자명한 진리라는 인식론적 근거는 없으며, 같은 이유로 귀납적 일반화도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모든 이론은 ‘오류 가능성’을 가진 ‘가설(假說)’ 상태에 있으며 학자들 상호 간의 혹독한 ‘논리적 논박(論駁)과 경험적 반증(反證)’이란 비판에서 살아남은 이론들만 과학적 객관성을 확보하면서 진리에 접근한다. 학자들 간의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통해 오류가 적고 더 객관적인 지식을 쌓아가며 진리를 향해 나아간다. 포퍼는 자기 입장을 ‘비판적 합리주의’라며 논박과 반증을 통한 자유로운 비판이야말로 오류를 줄이고 학문적 권위와 독단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했다.

포퍼의 철학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의 생각은 해도 없이 철학의 바다를 떠돌던 나의 나침판이 되었다. 농업경제학은 모든 학문과 마찬가지로 문제풀이의 학(學)이며, 특별히 농업·농촌·농민과 농정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사실에 기초한 경험적, 역사적, 논리적 연구를 통해 독립된 이론체계를 구축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란 오래된 진리를 재확인했다. 1977년 5월, 3년간의 철학적 방황 끝에 얻은 생각을 정리하여 ‘농업경제학의 이상과 논리에 대한 성찰(An Essay on the Idea and Logic of Agricultural Economics)’이란 제목의 박사 논문을 완성하면서 마침내 나는 농경제학자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홀로서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1968년 농경제학에 뜻을 세우고 공부를 시작한 후 10년 만이었고 내 나이 32살이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