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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 최양부의 자전적 농정사 <10>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무역협의 최전선에 서다-(12)4년 6개월간의 UR과의 전쟁(1990.7-1994.12),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리다

[한국농어민신문]

우농 최양부

1993년 12월 15일 UR 협상이 타결되자 GATT는 1994년 3월까지 UR 협정문 최종 문안 정리와 협정문에 첨부할 국가별 이행계획서(Country Schedule, CS)에 대한 최종 검증작업을 마치고 4월 12일부터 15일까지 모로코의 마라케슈에서 UR 협정문에 대해 각국이 서명하는 것을 끝으로 1986년 9월에 시작된 UR 협상을 8년 만에 종결짓는 일정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각국은 이행계획서 최종안을 1994년 2월 15까지 GATT 사무국에 제출하게 되었다.

1994년 2월 초(?) 천중인 농림수산부 농업통상국장이 이행계획서 제출에 대한 사전 협의를 위해 청와대 수석실로 찾아왔다. 천 국장은 1993년 말 쌀과 비교역관심품목(NTC) 협상에 집중하면서 상당수 품목에 대해 국영무역 조치, 종량세 도입, 양허관세 인상 등 GATT가 허용하는 법적 조치를 적용하지 못했다며 이제라도 농민 이익 보호를 위해 이행계획서 수정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시 정부는 야당과 재야 시민·농민단체의 ‘UR 재협상론’에 대해 각 나라와 협상을 통해 이미 합의된 사항에 대해서는 ‘한 자 한 획도 고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행계획서 수정은 자칫 정치적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매우 예민한 문제였다. 1993년 12월 최종 협상 당시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을 국익을 위해 마지막 검증 회의에서라도 챙기겠다는 것은 농림수산공직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책무라고 생각했다. 나는 농림수산부의 이행계획서 수정에 동의했다. 하지만 야당이나 언론 등이 수정을 정치적으로 문제 삼을 경우를 대비해 1993년 말 쌀 협상에 치중하면서 챙기지 못한 품목들에 대해 뒤늦게나마 국익 차원에서 챙기려 하는 것이란 것을 정치권과 언론에 대해 솔직하게 사전 설명하고 이해와 협조를 당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나는 이행계획서 수정의 자초지종과 불가피성을 비서실장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회의에 보고하고, 김영삼 대통령께도 별도로 보고했다.

3월 17일부터 GATT에서 열린 우리나라 이행계획서에 대한 검증 회의에서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의 반발로 정부가 제시한 수정계획을 일부 조정하는 선에서 검증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수정작업을 통해 쌀, 쇠고기 등 97개 품목에 대해 새로 국영무역을 지정하고 관세 부과금을 새로 부과했으며 고추, 마늘 등 63개 품목에 대해서는 종량세를 부과했으며 배, 홍차 등 71개 품목에 대해서는 기준관세율을 새로 인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행계획서 수정이 GATT 검증과정에서 쟁점이 되자 국내 언론들은 이행계획서 수정사실을 대서특필했고 정부가 이행계획서 수정 보완에 대한 자초지종을 솔직하게 언론에 설명하지 못하면서 ‘정부가 국민을 속였다’는 언론과 야당의 정치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1994년 4월 5일 이회창 총리는 “이행계획서를 보완 조정하게 된 것은 농림수산부 실무진들이 우리 농민들을 위하여 유리한 결과를 얻고자 함이었으며, 실제로 93.12.15 당시의 협상 결과보다는 상당히 유리한 실리를 확보하였습니다. 93.12 당시의 협상 결과가 미흡하였지만 그 상태로 방치하지 않고 국익을 위하여 조금이라도 더 얻고자 애쓴 점을 국민 여러분께서 알아주셨으면 합니다”라는 내용의 대국민 사과 담화를 발표했다. 정치 문제로 비화된 ‘이행계획서 파동’은 김양배 농림수산부 장관과 이회창 총리가 책임지고 사임하면서 수습되었다.

1994년 4월 15일 모로코 마라케쉬에서 UR 협상 종결선언을 위한 GATT 장관회의가 열렸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111개 국가가 UR 최종협정문에 서명했다. 각국이 연말까지 자국 내 비준 동의절차를 마치면 1995년 1월 1일을 기해 UR 협정문이 발효하게 됨과 동시에 GATT 체제를 대신하는 새로운 WTO(세계무역기구) 체제가 출범한다고 선언했다. 나에게는 UR 협정문 국회 비준 동의라는 UR 8년 협상(1986.9-1994.4)의 마지막 ‘고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나는 청와대 내에 설치된 ‘UR 협정문 국회 비준 동의 특별대책반’ 책임을 맡아 당·정·청 간 정책 조율을 책임지고 있었다.

여야는 ‘UR 재협상과 쌀 관세화 반대’를 외치는 시민·농민단체 등의 눈치를 살피느라 UR 협정문 국회 비준 동의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WTO 가입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며 UR 협정문 비준 동의에 반대하는 여야 국회의원에 대한 비판 여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반대하는 여야의원들의 명분 있는 출구전략이 필요했다. 그때 등장한 것이 ‘WTO 협정이행 특별법’ 제정이었다. 그러나 정부와 청와대는 특별법 제정에 부정적이었다. 나는 UR 협정의 원만한 국회 비준을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특별법은 협정이행으로 발생하는 농림수산물 관세와 수입 이익금을 농어민 소득향상과 농어촌 발전 등을 위해 사용하는 법적 근거와 UR 협정이 인정하는 ‘직불제 도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앞으로 예상되는 남북간 경제교류 협력에 대비하여 북한산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민족 내부 간 거래원칙’ 수립을 위해 필요했다.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설명하고 대통령께도 보고했다. 1994년 12월 16일 UR 협정문에 대한 국회 비준 동의가 이루어졌고 의원입법형식으로 ‘세계무역기구협정의 이행에 관한 특별법’도 제정되었다. 이로써 4년 6개월에 걸친 나의 UR과의 전쟁(1990.7-1994.12)이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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