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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 최양부의 자전적 농정사] <2> 춥고 배고팠던 한겨울의 한반도/①해방세대, 분단의 땅에서 태어나다
   
 

우농(愚農) 최양부

인생을 자연의 4계에 비춘다면 나의 유소년기는 아마도 나에게는 가장 춥고, 배고팠고, 길었던 한 겨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하루가 가면 또 하루를 걱정했다.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살지를 걱정했고 나라가 어떻게 될지를 걱정했다. 알 수 없는 미래가 사람들을 더욱 불안하게 했고 춥게 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호흡을 시작한 때를 전후로 한 1940년대와 6.25동란이 일어난 1950년대 한반도는 분단과 대결과 갈등과 전쟁과 폐허의 한 겨울이었다.

1945년 10월 10일, 해방이 되고 두어 달이 지날 무렵, 나는 전라남도 광주시(오늘의 ‘광주광역시’) 금남로 4가에서 아버지 최창진(崔昌鎭)과 어머니 김종자(金鐘子)의 5남매(3남 2녀) 가운데 네 번째(3남)로 태어났다. 나는 분단의 땅에서 태어난 해방세대가 되었다. 여동생은 2년 후에 태어났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분단이 몰고 온 겨울을 품고 살아야만 했다.

1941년 일제가 일으킨 태평양전쟁을 지원하는 전쟁물자 조달이며 식량생산으로 한반도의 백성들은 군인으로, 노동자로, 광부로, 위안부로 끌려갔다. 허기진 배를 초근목피로 달래며 억압과 수탈에서 벗어날 날이 오기만을 기도하며 살고 있었다. 한반도는 흑암의 땅이었다. 그러다 1945년 도둑같이 해방이 찾아왔고 빛이 들고 봄을 맞는 듯 했지만 감격과 기쁨은 잠시 한반도는 다시 분단으로 얼어붙은 땅이 되었다. 이제는 남북으로 갈려 싸우는 분열과 대립과 갈등의 땅이 되었다. 한반도는 주인인 백성도 모르는 사이 미국과 소련이 38도선 분할점령에 합의하면서 38도선 북쪽은 소련군에게, 남쪽은 미군에게 점령당해야만 했다. 한반도와 백성들의 미래를 결정짓는 운명의 새 역사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남북분할 점령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이념과 체제분단으로 이어지고 민족분단으로, 그리고 민족상잔의 1950년 6.25동란으로 이어졌고 한반도는 폐허가 되었다.

1945년 8월 24일, 내가 태어나기 한 달여 전, 소련군은 평양에 입성했고 8월말까지 북한전지역을 장악하고 38도선을 비롯한 경원선, 경의선을 차단했고, 통신과 우편물교환도 차단했다. 미군은 해방 후 20여일이 지난 9월 8일에서야 서울에 들어와 미군정실시를 선포했다.

소련군은 스탈린의 ‘북한을 소련의 극동기지로 만든다’는 위성국가건설방침에 따라 북한을 소련식 1당 독재의 공산주의국가로 건설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5도별로 인민위원회를 만들어 일제총독부의 행정권을 인수하고 신속하고 일사불란하게 북한지역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미군은 자치능력부족을 이유로 한반도를 미영중소 4대국 신탁통치를 통해 중립지대로 만든다는 생각을 가지고 남한에 들어왔다. 미군정은 일제 총독부 행정기구와 관료를 그대로 존치시키고, 우익과 중도 진영인사들을 고문단으로 임명하고 그들의 자문을 받으며 남한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한사회는 좌익(조선공산당, 박헌영), 중도(좌)(건국준비위원회, 여운형), 우익(한국민주당 김성수, 송진우, 조병욱, 윤보선 등)으로 나뉘어 해방공간에서의 주도권 장악을 위한 정치권력싸움이 시작되어 분열과 경쟁, 대립과 갈등으로 혼란에 빠져들고 있었다.

내가 태어난 바로 그 날(10.10) 북한에서는 북한의 운명을 가르는 조선공산당이 태어났다. 그날 북한은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창설했다. 10월 13일에는 김일성환영군중대회가 열렸고 그는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었다. 1당이 국가와 정부를 통제하는 독재국가에서 공산당의 창당은 곧바로 1당 독재의 공산주의국가가 건국되었음을 의미한다. 북한은 그날 사실상 공산주의국가로 새로 태어났다. 그래서 북한은 조선공산당창당기념일을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일보다 더욱 성대하게 북한 최대의 국경일로 경축하고 있다.

1945년 10월 5일 내가 태어나기 바로 5일전 미군정은 남한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반고시 제1호를 발표했다. 일제가 실시했던 식량통제를 해제하고 미곡시장거래를 자유화시키기 위한 ‘미곡의 자유시장’에 관한 조치였다. 이 조치로 내가 태어난 다음 날인 10월 11일부터 미곡시장의 자유로운 개설이 허용되었다. 10월 20일에는 ‘자유시장 설치에 관한 건’에 대한 일반고시 제2호를 공포하고 미곡시장개설과 미곡유통거래를 전면 자유화시켰다. 미곡시장자유화를 위한 미곡시장개혁으로 남한은 자유시장경제를 향한 첫 발걸음을 시작했다.

북한은 11월 19일 5도 인민위원회 연합회를 개최하여 행정조직 등 정부구성을 완료했다. 1946년 2월 8일에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창립을 선포하고 김일성독재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임시인민위원회는 소련군의 지도를 받아 3월 5일부터 농지개혁(무상몰수, 무상분배-소유권이 아닌 경작권)를 시작하여 20여일 만에 완료했다. 지주소작제에서 벗어난 북한농민들은 앞으로 그들에게 닥쳐올 운명도 모르고 환호했다. 북한의 농지개혁은 김일성과 조선공산당의 정치기반구축을 위한 혁명적 조치였다.

1946년 8월에는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을 북조선공산당으로 바꾸고 남한의 조선공산당과의 관계도 단절했다. 북한은 1954년부터 본격적으로 전통적인 농가와 마을을 해체하고 소련식 집단농장을 만드는 사회주의농업혁명을 시작했다. 1957년경까지 전 농촌은 집단농장체제로 개조되었다. 농민들은 집단농장의 농업노동자로 재배치되었고 농지는 집단농장의 소유가 되었다가 모두 국유화되었다. 북한농민들은 일제의 소작농에서 풀려나 내 땅에서 내 농사를 짓는 자유로운 자작농, 가족농이 되는 꿈에 부풀었지만 결국 땅 없는 (무산의) 농업노동자로 귀결되었다. 북한은 농지개혁으로 농지국유화를 통한 ‘국가소작제’를 창설했다. 북한은 사회주의경제를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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