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우농(愚農) 최양부

‘농촌중심지개발 계획수립 세미나’는 농촌 지역의 소규모 시나 읍, 또는 면 소재지와 같은 농촌 중심지들을 농촌주민들의 서비스 센터로 개발하여 국토의 균형개발과 농민들이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교육, 의료, 복지, 문화 등 다양한 기본수요를 농촌 지역에서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농촌개발방안을 제시했다.


1977년 8월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국립농업경제연구소에 복직하면서부터 나는 새마을운동연구에 참여했고 마을 중심 새마을운동의 한계와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도시산업사회에서 날로 벌어지고 있는 도·농간 발전격차를 보면서 농민들도 도시민과 같은 수준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새로운 농촌발전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세계적으로도 1950~60년대에 풍미했던 ‘지역사회개발론’이 퇴조하고, ‘통합적 농촌개발론(integrated rural development, IRD)’, ‘기본수요론 (basic needs approach)’, 중앙정부 주도의 하향식 대신 주민자치에 기초한 ‘상향식 개발론’ 등이 대안적 농촌개발전략으로 학계와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국내외적으로도 지난날의 농촌개발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생각들이 넘쳐나고 있었고 이것들을 우리 농촌 현실에 맞게 적용하는 실천의 문제가 남아있었다.

나는 1960~7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개방화의 충격으로 한국 사회가 농경사회에서 도시산업사회로 전환하고 있는 현실을 중시하고 제조업과 서비스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노동자 중심의 도시산업사회에서 농촌의 새로운 위상 정립과 함께 농민들의 생활 수준 향상으로 늘어나는 교육, 의료, 복지와 주택, 도로, 상하수도, 연료, 교통, 통신, 소비 및 문화생활 등등의 일상의 기본수요를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고도 불편 없이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게 하는 농민들의 1일생활권의 공간적 범위를 어디까지로 보아야 하느냐가 새로운 실천적 관심 사항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기회들이 우연히 찾아왔다. 하나는 1979년 7월 12일부터 20일까지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유엔 국제식량농업기구(FAO/UN)가 주관한 ‘농지개혁 및 농촌개발 세계회의(World Conference on Agrarian Reform and Rural Development, WCARRD)’였고, 다른 하나는 1981년 9월1일부터 7일까지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유엔 아시아태평양지역 경제사회위원회(ESCAP/UN)가 공동으로 개최한 ’농촌중심지개발 계획수립 세미나(Roving Seminar on Rural Center Planning in Asia and the Pacific)’였다.

1979년 7월의 로마 세계회의는 농지개혁과 농촌개발을 위해 유엔회원국과 국제기구가 수행해오고 있는 정책들을 검토하고 1980년대에 추진할 새로운 개발목표와 원칙, 행동계획을 채택하기 위한 회의였다. 세계회의는 유엔회원국 145개국과 70여 개의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NGO)가 참여한 대규모 국제회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인희 농수산부 차관보를 단장으로 이병석 국장과 이동배, 천중인 등 정부 대표와 김영철 농협 조사역과 내가 대표단 고문자격으로 참여했다. 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여 대규모 국제회의에서 발언하는 새로운 경험도 했다.

세계회의는 1960-70년대 개발이 도시·공업 편향적으로 이루어져 도시·농촌 간, 그리고 농민계층 간 불균형 성장을 가져왔음을 적시하고 개발의 목표가 성장과 사회정의구현에 입각한 소득의 균등한 배분에 있음을 재확인했다. 개발도상국의 자원개발과 선진국과의 무역에 있어서 개도국 이익 우선을 중시하는 ‘신국제경제질서(new international economic order)’에 입각한 국제협력과 공정한 교역을 증진하고, ‘생태학적 자연환경보존’을 존중하는 농촌개발원칙을 선언했다.

세계회의는 회원국들이 1980년을 기준연도로 설정하여 농민의 소득분배, 영양, 교육, 보건, 복지, 후생 등에서 실질적인 향상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1) 토지의 균등한 분배를 촉진하고 소작제도를 규제하는 농지개혁, 2) 농촌개발과정에 농민들의 자발적 참여 촉진과 여성의 역할 증대, 3) 비료, 농약, 신품종 등 개량된 농자재 사용 수준 제고, 4) 농촌 공업화의 적극적 추진과 5) 농촌인력개발을 위한 농촌교육 훈련확대 및 농촌지도 강화 등을 촉구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1) 개발도상국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하여 원료와 가공농산물에 대한 공정한 시장과 가격 확보 등 교역조건을 개선하고, 2) 개발도상국 간의 기술, 정보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3) 외국자본에 의한 농지개발과 농촌개발투자 기준 설정, 4) 개도국에 대한 농지개혁과 농촌개발을 위한 개발원조 확대와 조건 개선 등을 촉구했다. 세계회의는 나에게는 농촌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추진전략에 대한 논의 방향을 이해하고, 특히 농민(사람) 중심적이고 종합적인 농촌개발전략에 대한 새로운 생각과 확신, 그리고 영감을 주고 나의 시야와 사고의 폭을 넓히는 기회였다. 나는 그때부터 자신감을 가지고 농촌문제가 곧 도시문제라는 생각으로 ‘도시·농촌문제의 누적적 악순환’이란 개념을 실증적으로 체계화하기 시작했다.

1981년 9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ESCAP이 공동으로 개최한 ‘농촌중심지개발 계획수립 세미나’는 농촌 지역의 소규모 시나 읍, 또는 면 소재지와 같은 농촌 중심지들을 농촌주민들의 서비스 센터로 개발하여 국토의 균형개발과 농민들이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교육, 의료, 복지, 문화 등 다양한 기본수요를 농촌 지역에서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농촌개발방안을 제시했다. 농촌 지역을 농촌 중심도시와 배후지역인 마을을 하나의 통합된 생활권으로 설정하고 유기적으로 연계 개발하여 농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자는 새로운 농촌발전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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