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우농(愚農) 최양부 

88년 3월 갓 출범한 노태우 정부는 GATT 회원국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농수산물 수입을 개방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수입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을 설득하고 국민적 합의를 구할 수 있는 특단(特段)의 대책 마련이 필요했다.


박정희 정부가 1979년부터 추진한 일부 농축산물에 대한 수입자유화 조치는 국내물가안정을 위한 자발적 개방이었다. 그러나 1986년 국제수지 흑자전환에 따른 GATT 발(發) 개방화 요구는 1967년 GATT 가입 이후 20여 년간 농산물시장개방 유예 등 최혜국대우를 받아온 우리도 이제부터는 GATT 규정에 따라 회원국으로서 시장개방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는 것이었다. 우리 농업은 그동안 고율 관세, 혹은 양곡관리법, 사료관리법, 식물방역법 등 각종 특별법에 따른 수입 금지나 규제 등 비관세 무역 장벽인 ‘농업보호 정책’을 폐지해야만 하게 되었다.

한편 1984∼1985년간 소 파동을 겪으면서 한국가톨릭농민회(‘가농’)는 외국 농축산물 수입개방 반대 운동을 본격화했다. 가농은 1985년 7월부터 “외국 소로 똥값 된 소, 소값 피해 보상하라! 마구잡이 농산물수입, 농민 죽고 나라 망해!” 등의 여러 가지 전단을 만들어 전국 곳곳에 붙이고 개방화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를 결집하기 시작했다. 국민적인 민주화 운동의 열기를 타고 농민들의 수입개방반대 운동도 활기를 띠었다. 1988년 1월 충남 청양 가농 회원 300명이 수입개방반대시위를 시작으로 2월에는 제천, 안성, 3월에는 보은, 온양, 횡성, 4월에는 음성, 무안, 광주, 춘천 등지에서 농민시위가 이어졌고, 4월 22일 건국대학교에서 ‘수입개방저지 전국농민대회’가 열렸다. 5월 26일에는 전국농민단체협의회 회원 3000여 명이 여의도광장에 모여 ‘농축산물 수입반대 전국농민궐기대회’를 개최했다.

국민의 민주화 요구로 요동치는 국내정치 상황에서 1986년 흑자전환 이후 본격적으로 불어오기 시작한 GATT 발(發) 개방화라는 초대형급 태풍들은 경쟁력이 취약한 우리 농수산업을 불안하게 하는 위협요인이 되었다. 1988년 3월 갓 출범한 노태우 정부는 GATT 회원국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농수산물 수입을 개방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수입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을 설득하고 국민적 합의를 구할 수 있는 특단(特段)의 대책 마련이 필요했다.

노태우 정부는 1988년 4월 25일 대통령령으로 “경제 규모 확대와 국제수지 흑자전환에 따른 대외경제여건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국민적 합의 조성 등에 관한 대통령 자문에 응하기 위해 대통령소속하에 경제구조조정자문회의(‘자문회의’)를 설치”하는 규정을 제정 공포했다. 자문회의는 5월 3일부터 10월 말까지 6개월간 한시 기구로 공무원을 배제한 산(産), 학(學), 연(硏)의 전문가와 시민단체 관계자 25명과 전문위원 8명으로 국제화대책, 산업구조조정, 국민생활향상 등 3개 분과위원회를 구성하고 활동에 들어갔다. 자문회의 위원장은 유창순 전 국무총리가, 사무국장은 구본호 한국개발연구원장이 맡았다, 학계, 언론계, 산업계의 경제전문가들과 농업계에서는 박진환(농협대학장), 김영진(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명의식(축협중앙회장), 김성훈(중앙대 교수)이 자문위원으로, 전문위원에는 내가 위촉되었다.

자문회의는 농업문제의 중요성을 생각해 별도의 ‘농촌·농민문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농어촌 현장을 방문하고 농어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였으며, 농수산분야 공무원, 교수 및 전문가와 단체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었다. 조규일, 박상우(이상 농수산부), 이지연 (수산청), 채홍조(산림청) 등 공무원과 김동희, 정영일, 문팔용, 반성환, 김동일, 김일철, 이무근 교수, 김성호, 허신행, 박성쾌, 이광원, 서종혁, 정명채 등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문가, 정기수, 이우재, 황민영, 노금로, 한영석, 민인기 등 농협 등 농어민단체 관계자들을 초청해 의견을 들었다.

자문회의는 GATT와 회원국의 농산물시장개방 요구를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장개방에 반대하는 농어민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농산물시장개방원칙’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나는 국제화분과 김성훈, 산업분과 박진환 등 자문위원들과 협의하며 농어민 피해 최소화 방안 등을 담은 ‘농산물시장개방 4원칙(안)’ 만들기에 고심했다. 4원칙(안)은 자문회의의 심의 수정을 거쳐 다음과 같이 자문회의 대정부 건의안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이후 4원칙은 정부의 농수산물시장개방정책 수립과 추진의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되었다.

첫째는 ‘개방계획예시원칙’으로 장기농업발전계획에 따라 국가적 중요도, 농업자원의 이용방법, 농가소득에 미치는 영향 등을 반영한 종합적인 개방계획을 예시한다. 

둘째 ‘농업구조혁신과의 연계원칙’이다. 개방대상 품목과 개방수준 등을 농업구조 혁신과 연계시켜 개방으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고, 시장기구를 통해 식부면적 제한, 작부(作付) 전환 등 자율적 생산조정이 가능하도록 농업 내 축소부문에서 성장부문으로 순조로운 자원이동을 유도한다. 

셋째 ‘가격 안정화와 보상 원칙’이다. 전업농가의 소득안정을 위해 가격안정대를 제도화하고 가격변동에 따라 자율적인 수입방출과 수매비축이 이루어지고, 필요한 경우 한시적으로 긴급 수입제한 혹은 보호관세 부과 등을 활용하고, 시장개방으로 피해를 받는 농가에 대한 다각적인 보상방안을 제도화한다. 국내가격과 수입가격 간의 차이의 일부 또는 대부분을 특별회계로 흡수해 시장개방으로 피해받는 농가를 보상하고 농업구조혁신을 촉진하는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넷째는 ‘수출촉진원칙’으로 입지적 조건 등으로 국제경쟁력확보가 가능한 수출 유망 농림수산물의 수출을 촉진하고 생산자단체가 참여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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