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우농(愚農) 최양부

농가 경영주의 고령화와 영농후계자 단절로 인해 농가 창출이 중단되고 부재지주가 증가하면서 농가 감소로 인한 마을의 소멸 전망 등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33년이 지난 지금 당시 농가와 마을이 어떻게 변했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1970~80년대 농가경제는 산업화의 충격을 받으며 동요하고 있었다. 농가인구의 급격한 탈농이촌으로 농가인구가 감소하면서 소농적 가족농가는 분해 해체되고 농가호수의 절대적 감소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영세 부재지주가 생겨나고 농지임대차가 급격히 증가면서 1950년 농지개혁 이후 30여 년 만에 우리 농업경제의 근간인 자작농 체제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한 전두환 정부는 1980년 10월 27일 헌법을 개정하면서 농지임대차를 허용했다. 1987년 6.10 민주항쟁으로 10월 29일 전면 개정된 헌법에서도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제121조)라고 규정했다.

이로써 1980년 농지임대차가 허용된 이후 경자유전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농지임대차를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임대차관리법’제정은 시급한 국가적 정책과제가 되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성호 연구위원은 김운근, 전경식, 허영구, 김태곤과 함께 1983년부터 전국적인 농지 소유와 임대차, 농지보전에 관한 연구를 하여 농지임대차 관행 실태를 조사하고 관리법 제정 방향을 검토했다. 1982년에 이어 1986년 8월 26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연구원이 개최한 ‘농지제도개선을 위한 공청회’에서 김성호 연구위원은 ‘농지소유현황과 개선방안’이란 주제 발표를 통해 ‘1985년 현재 전체 농경지 면적의 30.5%인 65만 4천 ha가 임대차 농지가 되었으며 임대차면적의 63%가 영세 부재지주 소유’라고 밝혔다.

나는 농지임대차와 영세 부재지주를 관리하는 정책을 세우고 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이를 양산(量産)하고 있는 메커니즘에 대한 논리적 설명이 필요하며 산업화의 충격을 받은 전통적 농가경제의 성격 변화에 대한 이론화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농가경제가 가족의 안녕(安寧)과 성장을 최우선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행동하는 ‘가족경제’라는 사실을 중시하고 농가경제는 가구주(경영주)의 생애주기, 즉 ‘농가생애주기(Farm Household Life Cycle, F-사이클)’에 따라 생성, 확장, 쇠퇴, 소멸의 단계를 거치며 변화한다는 ‘F-사이클 가설(假說)’을 1985년 한국사회학회 학술대회에서 처음 발표했다. 나는 오내원 연구원과 같이 분가한 농가는 농지를 부모로부터 상속받거나 임대 또는 매입을 통해 농업기반을 마련하며 확장기를 거치며 농지면적을 확대하고 노년기에는 자녀들의 교육과 결혼, 분가 과정에서 당대에 축적한 농지를 자녀들에게 상속하거나 매매하면서 쇠퇴, 소멸하게 된다는 이론적 전망을 ‘농가경제의 동태적 변화와 F-사이클 가설’(농촌경제 9(4), 1986:23-32)이란 논문을 통해 정리했다.

우리는 산업화의 충격으로 농민 자녀들이 도시로 이주하게 되면서 부모 중심의 농촌본가와 자녀 중심의 도시분가가 생겨나 ‘1가족 다가구’가 형성되는 현실을 주목했다. 농가 경영주의 고령화로 쇠퇴기가 되면 자녀들에게 농지 상속이 이루어지게 되며 농촌에 남은 자녀는 새로운 농가를 구성하나 도시로 떠난 자녀는 자연스레 부재지주가 된다. 가족농가는 F-사이클의 지배로 쇠퇴기가 되면 당대에 축적한 농지를 분할상속하여 영세 소농을 재창출하거나 부재지주를 낳는다. 가족농의 농지 상속은 전통농촌사회의 새로운 소농 재창출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며 농가경제의 지속적인 농지 규모확대 등 자본축적과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영농후계자가 없는 농가의 경우 ‘F-사이클 단절’로 새로운 농가 창출이 중단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농가 호수의 절대적 감소와 농촌 출산력 저하로 이어지고 농가인구와 농촌인구 감소를 가져오고 농업, 농촌의 쇠퇴를 유발한다. F-사이클이 지배하는 소농적 가족농가의 현실에서 경영주의 고령화와 자녀의 도시 이주는 장기적으로 농가와 마을의 소멸을 초래할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는 F-사이클 가설과 이를 근거로 한 이론적 예측 등에 대한 실증적 검증에 착수했다.

우리는 1986년에 실시한 한국농촌사회경제의 장기변화에 관한 조사연구(‘농가경제의 동태적 변화 분석: 농지소유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국농촌사회경제의 장기변화와 발전(1985~2001) 5, 1987:68-72)의 대상지인 충남 4개 마을 197호 농가 가운데 세대 간 농지 상속 등에 대한 추적조사가 가능한 부대(父代) 농가 130호(호당 평균 2066평 농지 소유)에 대해 심층분석을 했다.

부대 농가는 총 324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그 중 농지 상속(한사람 또는 분할)을 받은 아들은 168명(51.8%)으로 그중 135명이 새 농가(호당 평균 1726평 소유)를 구성했으며 나머지 33명은 비농가로 부재지주(호당 평균 1079평 소유)가 되었다. 농지 상속을 못 받은 아들 156명 가운데 108명은 비농가가 되었고 나머지 48명은 농가로 남았다. 아버지 대 농가 130호는 자대(子代)에는 183호로 53호가 증가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F-사이클의 지배로 농지 상속에 따라 영세 소농과 부재지주가 동시에 창출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부대 130호 농가와 자대 183호 농가 경영주의 고령화와 영농후계자 단절로 인해 농가 창출이 중단되고 부재지주가 증가하면서 농가 감소로 인한 마을의 소멸 전망 등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33년이 지난 지금 당시 농가와 마을이 어떻게 변했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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