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우농(愚農) 최양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1978년 출범한 이후 지난 40년간 수행한 수천 가지 농정연구들이 과연 우리 농(업, 촌, 민)과 농정, 학문 발전에 얼마나 유용했는지, 어떤 긍정적 또는 부정적 영향을 미쳤는지 진솔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1982년의 폐원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1983년 4월 개원 5주년을 맞이했다. 연구원 설립을 설계하고 추진한 김동희 교수는 5주년을 회고하며 연구원이 ‘단기적 정책연구와 함께 장기적 및 이론적 연구도 병행하여 세계적 수준의 우수한 두뇌들이 일생을 바쳐 연구하는 연구원으로 발전하기를 염원’했다. 연구원 설립을 결단하고 지원한 당시 장덕진 농림수산부 장관은 ‘연구원 창원(創院)의 이상은 높았다. 누대(累代)로 내려와 쌓인 우리 농촌·농업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많은 사람의 간절한 소망과 의지와 갈구가 담겨있다. 연구자의 길은 외롭고 멀다. 이 길을 스스로 선택한 자에게는 인내와 긍지와 양심을 동반하는, 극기의 노력이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당부하며 개원 5주년을 축복했다.

김동희 교수는 1975년 국립농업경제연구소장 재직시절부터 국가공무원으로 구성된 연구소로서는 우수 연구인력 확보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연구 및 운영의 경직성으로 정책환경변화에 부응하는 다양한 연구를 신속하게 능동적으로 수행하기 어렵고 연구의 자율성을 보장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 교수는 연구원 출범 직후 부원장으로서 인재 영입에 총력을 쏟았다. 1978년 4월 출범 당시에는 김 부원장과 김영식, 성배영, 오호성, 주용재와 나까지 모두 6명 정도의 박사급 수석연구원이 있었으나 초창기 5년 동안 반성환, 황인정, 연구위원급과 강봉순, 강정일, 김동일, 김학은, 김형화, 이정환, 이중웅, 윤호섭, 정찬길, 허신행 등(가나다순) 미국과 일본, 유럽에서 농업경제학, 경제학, 사회학 박사학위를 마친 수석급 인재들이 대거 합류했다. 국립농업경제연구소장을 역임했던 김성호 농수산부 국장과 김영진 차관보도 연구위원급으로 합류했다. 이들 가운데 강정일, 김성호, 김영진, 성배영, 이정환, 이중웅, 윤호섭, 허신행과 나까지 9명 정도가 연구원을 지키며 구심 역할을 했고 나머지는 대학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구원 출범 이후 처음 5년 동안 연구원에 몸담았던 책임연구원급 인재로는 강수기, 김명환, 김상종, 김수욱, 김운근, 김정기, 김정부, 구천서, 민상기, 박수일, 오치주, 유남식, 이광석, 이광원, 이두순, 이영석, 이용만, 이정룡, 이철현, 정명채, 주우일, 허길행, 현공남 등이, 연구원급 인재로는 강병주, 김병택, 김은순, 김종숙, 김진수, 김진석, 김충실, 김형모, 권태진, 박성재, 백종희, 서종혁, 신영태, 오내원, 오세익, 옥영수, 유남식, 유승우, 윤석원, 이동필, 이상학, 이영만, 이은우, 전창곤, 정안성, 정철모, 조덕래, 조명기, 최세균, 최정섭, 최지현, 한두봉, 황연수 등이 합류했다. 

이들 대부분은 훗날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연구원의 인재로 성장했고, 그 들 가운데 상당수는 대학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구원은 그야말로 농업경제학 분야 인재들을 모았다가 대학교수로 공급하는 기지 역할을 했으며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 그들은 한국농업경제학회 등을 이끌어가는 중추 세력으로 성장하고 농정여론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연구원은 출범 이후 40년 동안 2명의 농수산부 장관(허신행, 이동필), 대통령 농림해양 수석비서관(최양부)과 주아르헨티나 대사(최양부), 10명의 원장(허신행, 강정일, 이정환, 최정섭, 오세익, 이동필, 최세균, 김창길과 식품개발연구원장을 지낸 성배영, 강수기)을 배출했다.

연구원은 출범 이후 전환기 농정을 위한 다양한 정책연구를 추진했다. 처음 5년간 수행한 주요 정책연구들로는, 80년대 장기농업개발전략(김영식), 정부 양곡관리와 식량 수급(주용재), 농지 제도개선(오호성), 농산물유통개선 및 (가락동)도매시장건립(성배영), 농업관측과 농산물가격(허신행), 농업기계화(김영식), 농업금융(이정환), 축산개발(허신행, 김형화), 수산개발(주우일), 농업협동조합 기능진단(성배영), 농업재해보험 설계(이중웅), 농외소득과 농촌공업개발(최양부), 농가 유형과 발전전략(최양부), 농촌정주생활권 개발구상(최양부) 등을 꼽을 수 있다.

연구원은 농어민의 농정 여론과 농어촌동향 파악을 위해 농정여론조사사업을 추진했다. 여론조사를 위해 전국에서 2,043명의 현지 통신원을 확보하여 우편조사와 현지 면접조사를 하여 ‘최근의 농어촌동향’이란 보고서를 작성하여 농정수행과 연구에 참고자료가 되도록 했다. 여론조사사업은 언론계 출신 전문가인 권화섭, 이기중, 이동규, 이인철, 신우재, 최익수 등이 여론조사업무의 기반을 구축하고 조사분석과 보고서 작성을 했다.

연구원은 출범 이후 40년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 정부와 학계와 긴밀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농정연구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특히 ‘1987 민주체제’ 수립 이후 5년 주기로 바뀐 역대 정부의 농정형성과 선택, 추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연구원이 1978년 출범이후 지난 40년간 우리 농정에 대한 역할과 책임은 그 만큼 크다. 그동안 연구원이 수행한 수천 가지 농정연구들이 과연 우리 농(업, 촌, 민)과 농정, 학문발전에 얼마나 유용했는지, 어떤 긍정적 또는 부정적 영향을 미쳤는지 진솔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1983년 4월 1일 개원 5주년을 맞아 나는 뜻밖에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출범 이후 5년간 ‘각종 연구사업과 경제교육 등을 통하여 농어촌경제사회 발전과 국리민복 향상에 크게 기여한 공로’ 때문이라고 했다. ‘상처뿐인 영광’이란 생각과 나만 받는다는 사실때문에 부담스러웠으나 연구원 모두가 뜨겁게 불태운 5년의 도전과 열정에 주는 훈장이라 생각하고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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