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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 최양부의 자전적 농정사 <7>전환시대의 경제 논리와 개방농정을 비판하다-⑭한국농촌경제연구원 폐원의 위기를 넘다

[한국농어민신문]

우농(愚農) 최양부 

당시 김영진 연구위원은 ‘전두환 대통령 경제교사까지 겸하고, 농업에 심한 편견을 갖고 있던 청와대 경제수석 김재익 씨 때문에 연구원도 해체되어 그 기능의 일부가 KDI로 넘어갈 뻔했다’라고 당시를 회고한다.


1981년 8월 춘천에서 열린 한국농업경제학회에서 나는 ‘경제주의의 빈곤과 80년대 농정의 선택’이란 제목의 논문발표를 통해 1980년 말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추진했던 특별작업 ‘80년대를 향한 새 농정방향의 구상’에서 제기한 증산농정과 개방농정에 대한 비판과 80년대를 향한 새 농정방향과 과제의 선택 문제를 다시 제기했다. 새 구상의 농정비판이 대외적으로 알려지고 인용되면서 학계와 농민단체들의 신군부 개방농정을 비판하는 기본 논리가 되었다.
농수산부는 1981년 초 80년대 새 농정방향 수립을 연구원에 지시했다. 연구원은 반성환 연구위원을 책임자로 지정하고 정책 분야에 따라 연구실별로 정책방안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특별작업을 추진했다. 연구원은 1981년 12월 ‘80년대 농정의 기본구상’을 만들어 고건 농수산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1982년 5월 국보위 입법회의 의원을 지낸 박종문 강원도지사가 농수산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복합영농’을 기본구상에 포함 시키는 보완작업을 지시했다. 성배영 연구위원이 책임을 맡아 재작업을 추진하여 1982년 6월 ‘80년대 농정의 기본방향’을 만들었다.

연구원은 농수산부 의사를 반영하여 80년대 새 농정의 기본목표를 국민 식량 수급 안정을 위한 식량 수급조정과 식량 증산, 농어민소득증대와 복지 농어촌건설을 통한 도농 간 소득균형과 농어촌복지향상으로 설정했다. 식량 수급조정을 위해서는 자급률 제고, 수입 적정화와 다변화, 소비 합리화를 추진하며, 식량 증산을 위해서는 생산기반 확대보전(농경지 확대보전과 이용률 제고, 농촌 노동력확보, 생산 자재 원활한 공급), 생산성 제고(토지 및 노동생산성 제고와 농업기계화, 경영기술제고), 품목별 생산대책(곡물 생산량 확대, 과실 채소류 생산안정, 축산개발, 수산진흥, 산지 합리적 이용)을 주요 농정과제로 설정했다. 이외에도 농업경영구조개편과 제도개선, 농업자금공급 원활화, 농산물가격 안정화, 농산물유통 근대화와 함께 도농 간 소득균형을 위해서 농업소득 증대, 농외소득 기반구축, 그리고 농어촌복지향상으로는 농어촌사회복지개발, 농어촌지역 균형개발 정책을 제시했다.

박종문 장관은 개방농정의 기조인 저미가(低米價)정책과 농산물수입자유화정책으로 농가소득이 급격하게 하락하고 농가 부채가 날로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미맥(米麥) 위주의 단순영농으로는 농가소득증대가 어렵다며 주곡 농사에 채소, 과수, 특용작물, 축산 등을 결합한 ‘복합영농육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농수산부와 농촌진흥청은 복합영농의 기본유형으로 ‘벼(보리)+지역특화작목+보완작목’으로 제시하고 지역 특성에 따라 시군단위로 복합영농 시범단지를 만들어 생산, 경영, 유통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도록 했다. 연구원에서는 허신행 수석연구원이 복합영농의 이론체계연구를 했다. 박 장관은 1983년 3월 1986년까지 2177억 원을 투입하여 복합영농 시범단지 900개를 조성하고 시범 마을도 3600개 육성하겠다고 발표하고 복합영농 정책을 주도하면서 ‘박종문 장관의 정책’이 되었다. 그러나 1983년 새마을운동중앙회의 압력으로 외국산 육우 과다수입과 농가 입식으로 소값이 폭락하는 소 파동(1983~85)이 일어나면서 복합영농은 농민들로부터 ‘복통영농’이란 비판을 받으며 빛바랜 정책이 되었다.

개방농정을 둘러싼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과 농정당국을 비롯한 농업계와 농민단체 간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던 1982년 연구원은 뜻밖에 폐원(閉院)위기를 맞았다. 1982년 정부는 국제경제연구원을 폐원시키고 한국과학기술정보센터와 통합하여 새로운 한국산업경제기술연구원(현 ‘산업연구원’) 설립을 추진하는 등 정부출연 연구기관 개편작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때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을 폐지하고 한국개발연구원(KDI)에 통합시키는 안이 제기되었다. 당시 김영진 연구위원은 ‘전두환 대통령 경제교사까지 겸하고, 농업에 심한 편견을 갖고 있던 청와대 경제수석 김재익 씨 때문에 국제경제연구원이 해체될 때 하마터면 연구원도 해체되어 그 기능의 일부가 KDI로 넘어갈 뻔했다’라고 당시를 회고한다. 김 위원은 다행히 허문도 청와대 정무 수석비서관의 도움으로 연구원이 위기를 모면했다고 했다. 허문도 수석은 서울대 농대 농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기자를 하다 정계에 입문하여 전두환 대통령 정무 수석비서관이 된 김 위원의 농학과 직계후배였다. 1980년 4월 농수산부 식산차관보를 사직하고 11월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긴 후 사실상 김보현 원장의 보좌관 역할을 해오던 김영진 연구위원은 허문도 수석과 박종문 장관, 윤근환 농협중앙회장 등의 지원으로 1983년 1월 부원장이 되었고, 1984년 3월부터 1990년 3월까지 원장을 하게 된다.

연구원 폐지가 무산되자 김재익 수석은 ‘연구원운영 혁신안’으로 ‘연구는 치우고 한자리 물가 유지를 위한 대 농민 경제교육이나 하라’고 지시했다. 연구원은 거원적으로 경제교육팀을 만들어 1982년 3월 16일부터 6월 3일까지 전국을 4개 권역으로 나누어 183개 시군에서 ‘농어민 및 농수산공직자 경제교육’을 실시했으며 나는 충남북 지역을 담당했다. 이후 경제교육은 연구원의 주요한 사업이 되었다. 전국 시군단위에서 실시된 농수산공직자 경제교육은 오히려 지방 공직자들에게 연구원을 알리는 기회가 되었다. 연구원은 이 기회를 이용 개원 이래 처음으로 농정여론조사 현지 통신원 2043명을 연구원으로 초청하여 통신원 교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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