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우농(愚農) 최양부

1982년 당시 전 농가의 30% 정도가 겸업화되었고 농가 성격의 이질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은 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정부가 주곡 증산을 위한 획일적인 농가지원정책으로 시장에 개입하여 농가의 자원이용을 왜곡하고 더 나아가 농가 간 소득 격차를 유발하고 비효율성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농가 경제의 성격 변화 가운데 중요한 변화는 농가의 상업화와 겸업화였다. 그러나 농가의 상업화와 겸업화 실태를 실증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분석지표가 필요했다. 당시 학계에서는 농가의 상업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농업소득 가운데 농산물판매총액을 기준으로 산출한 ‘상품화율’을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농가가 생산한 농산물 가운데 자가소비나 농산물 시장가격의 변동에 따라 영향을 받는 사후(事後)적 평가라는 결함이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와 박성재, 오내원 연구원은 농가가 시장판매를 목적으로 품목을 선택하고 면적을 결정하는 사전(事前)적 의사결정을 나타내는 ‘상업화율’이란 새로운 지수를 개발하기로 했다. 먼저 농가가 재배하는 작물 재배면적에 사육하고 있는 가축, 과수, 시설 등 평가액을 평균 지가로 나누어 면적으로 환산한 것을 합산하여 농가의 ‘총환산 재배면적’을 계산하고 이 가운데 가계소비를 위한 것을 제외한 순수하게 시장판매 목적으로 한 ‘총환산 상업적 재배면적 비율’로 농가의 상업화율을 측정했다. 이 지수에 따라 계측한 표본농가의 평균 상업화율은 63.6%였으며, 상업화율 50% 미만의 자급지향 농가는 전체 표본농가의 22.3%(758호)로 평균 상업화율은 32.3%로 파악되었다. 50% 이상 되는 시장지향 상업적 농가는 77.3%(2575호)로 평균 상업화율은 72.8%로 나타났다. 이는 상업적 농가 대비 자급적 농가 비가 7:3 정도로 1982년 당시 상업화가 이미 높은 수준으로 진행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였다.

농가의 겸업화 정도 파악을 위해서 우리는 농가소득 가운데 농업소득을 제외한 나머지 소득으로 농외소득률을 평가하는 관행적 방식을 따르지 않고 농가소득에서 이전소득을 제외한 농가가 순수히 농외취업 또는 농외사업 활동을 통해 얻은 소득만을 반영한 수정된 농외소득률을 계산하여 농가 겸업화 정도를 파악했다. 표본 농가의 평균적 농외소득률은 15.3%로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으며 농외소득률이 50% 이상인 농가는 370호(11.1%)에 불과했다. 그러나 우편조사를 통해 새로 파악한 표본농가의 연간 농외취업 일수가 30일 이상인 농가를 별도로 겸업농가로 분류한 결과 표본 농가의 68.9%(2269호)는 전업(專業)적 농가, 나머지 31.1%(1025호)는 겸업적 농가로 분류되었다. 역시 전업 대비 겸업농가의 비가 7:3 정도로 나타났다.

농가의 상업화와 겸업화 실태분석과 별도로 표본농가의 경영주를 대상으로 농가의 장래희망을 조사하여 농가발전 희망유형을 ‘농업 전업, 겸업(적극적, 소극적) 확대, 탈농업(2∼3년 내 농업폐업) 희망’의 3가지로 구분하였다. 분석결과 우편조사 답변 농가(3294호) 가운데 농업 전업희망은 64.9%(2137호), 탈농희망 4.0%(131호), 나머지 31.1%(1026호)는 겸업희망 농가로 파악되었다. 이상의 실증분석결과들은 1982년 당시 전 농가의 30% 정도가 겸업화되었고 농가의 장래희망 등에서 농가 성격의 이질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정부가 주곡 증산을 위한 전국 획일적인 농가지원정책으로 시장에 개입하여 농가의 자원이용을 왜곡하고 더 나아가 농가 간 소득 격차를 유발하고 비효율성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농가의 소득과 경영규모, 상업화와 겸업화 등에 관한 실증분석에 농가의 장래희망, 경영주의 나이(60세 이상)와 영농후계자 유무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여 우리는 ‘농가발전정책 목표집단’으로 ‘농업적 육성, 겸업적 육성, 탈농업 지원(사회보장지원, 은퇴 유도) 대상’의 4가지 정책 유형을 설정하고 그에 따라 표본농가를 4개 정책 집단으로 구분했다. 그 결과 농업적 육성 대상 농가가 52.9%(1744호), 겸업적 육성 32.5%(1072호), 사회보장지원 9.5%(314호), 은퇴 유도 5.0%(164호)로 구분되었다. 이를 토대로 우리는 농가유형별로 차별화된 다양한 농가육성정책을 설계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맞춤형 농정’의 원형이 우리 농정사상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농가유형론’이란 새로운 정책개념을 제시한 ‘농가경제의 유형과 성격분석’(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3.12)이란 연구보고서를 완성했다.

1983년 말 건의한 농가 유형별 육성정책은 GATT(관세와 조세에 관한 일반협정) BOP(국제수지를 이유로 한 수입유예) 조항 졸업 당시 1989년 4월 노태우 정부가 수립한 ‘농어촌발전종합대책’에서 농정사상 처음으로 ‘상업적 전업농가 육성정책’으로 채택되었다. 1993년 12월 UR 농업무역협상 타결 이후 1994년 김영삼 정부가 수립한 ‘농어촌발전대책 및 농정개혁추진방안’에서는 개방시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품목별 전업농가 및 농업 법인(조합, 회사) 경영체 육성정책’으로 구체화하면서 우리 농정의 핵심 정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겸업농가의 농외소득증대를 위한 농공단지 조성과 농산물가공 등 농촌 2, 3차산업 개발, 60세 이상 고령 농어민을 위한 특례연금과 농가의 국민연금가입, 은퇴 농가의 경영이양연금 지급 등 농어민을 위한 사회보장정책들도 그때 처음으로 우리 농정에 도입되었다. 당시 일부 농민단체는 전업농가 육성정책을 ‘엘리트 농정’이라고 비판했으나 그때 육성된 농가들이 오늘의 우리 농업을 이끄는 기간농가로 성장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농가 유형별 육성정책은 2007년 노무현 정부와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 ‘맞춤형 농정’이란 이름으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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