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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 최양부의 자전적 농정사 <9>민주화·개방화에 대응한 새 도전에 나서다-(12)1989년 ‘한국농정 40년사’와 ‘농지개혁사연구’가 발간되다

[한국농어민신문]

우농 최양부

1988년 대한민국 건국 40주년을 3년 앞둔 1985년 2월 농림수산부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공동으로 ‘한국농정 40년사’를 편찬하기로 하고 사업계획을 수립했다. 정부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출범 이후 1988년까지 한국경제의 고도 경제성장과 함께 발전해온 농림수산업의 변화와 농림수산정책의 역사적 전개와 변천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후세의 기록으로 남길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농림수산부와 연구원 인사들(12명)로 편찬위원회(‘편찬위’)를 구성하고 편찬사업 추진계획을 수립했다. 연구원은 편찬사업을 담당할 ‘농업사연구실’을 신설했으며, 김성호 연구위원을 책임자로 임명하고 김운근, 허영구 연구원 등으로 기획총괄팀을 구성했다.
 
편찬위는 건국 이후 전개되어온 농정 40년의 역사를 ‘건국 이후 격동기(1948-1960), 산업성장기 (1961-1976), 전환기1977-1988)’ 등 3기로 구분하고, 각기별로 추진된 농정을 25개 정책 분야로 세분하는 한편, 분야별로 집필자 29명과 감수위원 81명을 별도로 위촉하여 집필과 감수를 담당하도록 했다. 25개 정책 분야별 집필은 정부와 연구기관, 학계를 망라하여 해당 정책의 변화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전문가들을 찾아 위촉했다. 집필에 참여한 29명의 분야별 집필자는, 농업정책개설, 김운근, 박진도, 정영일; 농지제도, 김성호, 전경식; 농지개발, 성영호; 농업생산자재(비료, 농약), 김대경, 농업기계화, 한성금; 농업금융, 김영철; 농수산통계, 신윤; 식량작물생산, 송춘종; 원예작물생산, 김윤선; 특용작물생산, 정규용; 잠사업, 권영하; 축산, 송찬원; 농산물 가격 및 유통, 심영근; 양곡 수급 관리, 문팔용, 주용재; 농산물무역, 김위상; 국제협력, 조일호; 동물검역, 김범래; 식물검역, 심성섭; 농사시험, 김동수; 농촌지도, 고일웅; 임업, 최민휴; 수산, 박구병; 농업협동조합, 이내수; 축산업협동조합, 이신곤; 수산업협동조합, 최정윤 등이다.

농정사는 정부 수립 이후 지난 40년간 추진해온 정책과제들을 분야별로 총망라하여 종합적으로 일관성 있게 파악할 수 있도록 정책자료와 관련 통계 등을 정리하여 상하(上下) 2권으로 집대성되었으며, 처음 계획보다 1년 늦은 1989년 10월에 발간되었다. 농정사는 이외에 40년간의 농림수산관계법령, 조직, 기구, 부서별 주요업무, 예산과 인력, 기본통계 등은 물론 농정관계 신문기사 등을 정리하여 11권의 ‘농정사 자료집’도 함께 발간했다. ‘한국농정 40년사’는 1948년 건국 이후 1988년까지 추진된 우리 농정에 대한 회고와 반성, 평가는 물론 우리 농정의 역사적 변천을 분야별로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여 주는 소중한 역사적 기록이 되었다.
 
1989년 12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 농정사 연구의 중요한 작품이 된 ‘한국농정 40년사’ 편찬에 뒤이어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농지개혁사연구’를 발간했다. 1984년 연구에 착수하여 6년 만에 마무리된 농지개혁사 연구는 김성호 연구위원을 연구책임자로 전경식, 장상환, 박석두 연구원 등이 참여하였으며, 김운근, 허영구, 김태곤 연구원 등은 별도로 추진된 ‘농지개혁사 관계 자료집( I∼VI)’ 6권의 발간에 참여했다. 특히 전경식 초빙연구원은 해방 직후 신한공사에 입사했다가 정부 수립 후 농림부로 옮겨와 1982년 정년 할 때까지 한평생 농지개혁업무에만 봉직해온 우리나라 ‘농지개혁의 산증인’이다. 그가 개인적으로 보관해온 농지개혁에 관한 많은 정부 문서와 관련 자료들은 우리나라 농지개혁사업의 성격과 추진실태를 바르게 정리하고 그동안의 농지개혁에 대한 잘못된 평가를 바로잡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48년 7월 17일 공포된 대한민국 제헌헌법은 86조에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법, 소유의 한도, 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라고 농지개혁방침을 천명했다. 그해 8월 15일 출범한 초대 이승만 정부는 1949년 6월 21일 ‘농지개혁법’을 제정 공포하고 농지개혁에 착수하여 1950년 3월 15일부터 24일까지 농가별 분배농지 일람표를 열람시키고 4월 10일까지 분배예정통지서 발부를 마치고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정부는 6.25 전쟁 등으로 농지개혁사업의 추진 경과와 일지, 관계 법령, 통계자료 등 농지개혁의 전말(顚末)을 총정리 한 종합보고서를 발간하지 않아 농지개혁사업의 추진과 성과에 대해 많은 억측과 심지어 잘못된 평가를 불러왔다. 특히 우리가 ‘유상몰수, 유상분배’ 방식으로, 북한이 ‘무상몰수, 무상분배’로 농지개혁을 추진한 사실을 두고 한국의 농지개혁은 북한보다 못한 ‘농민적 개혁이 아닌 실패한 개혁’이란 부정적 평가마저 생겨났다. 특히 ‘해방전후사의 인식’(한길사, 1979)에 실린 ‘해방 후 농지개혁의 전개 과정과 성격(유인호)’이란 논문 등의 영향으로 한국의 농지개혁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일반인의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농지개혁 이후 40년 만에 출판된 김성호 연구위원의 농지개혁사연구는 1950년 농지개혁은 제헌헌법의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정신과 자본주의 시장경제원칙에 따라 우리 농민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지주제의 굴레에서 벗어나 농지에 대한 사적 소유권을 확립하고 독립된 자작농으로 거듭난 진정한 의미의 ‘농민적 농지개혁’이었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그동안 우리 농지개혁에 대한 평가가 왜곡되고 폄하된 것임을 일깨워 주는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내년이면 농지개혁 70주년을 맞는다. 1950년의 농지개혁은 대한민국과 농업·농민의 운명을 새롭게 결정한 역사적 대사건이다. 1950년 농지개혁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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