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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 최양부의 자전적 농정사 <10>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무역협상의 최전선에 서다-(10)‘정부의 협상 목표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협상 전략이 있다’

[한국농어민신문]

우농 최양부

1993년 12월 1일 자 조선일보는 ‘UR 협상 이렇게, 미-일 협상 타결 우리에겐 유리’라는 제목으로 나의 인터뷰 기사와 해설기사를 대서특필했다. 정부의 쌀 시장개방에 관한 최종 협상 목표에 대해 전해 듣는 순간 ‘그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협상 전략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실을 정부에, 그리고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가슴이 뛰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마지막 협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정부 협상대표단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한 협상 목표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좋은 환경이 생겨났기 때문에 더 좋은 결과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하지만 시간이 없고 누구와 상의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조급한 마음에 평소 알고 지내던 송희영 조선일보 경제부장을 만나 정리한 ‘쌀 시장개방 최후 협상 전략’에 관한 자료를 보여주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송 부장은 선뜻 기사를 쓰겠다고 했다. 박정훈 기자와 별도 인터뷰도 주선해 주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내 말만 믿고 신문 보도를 결심한 송 부장이 고맙기만 하다.

1993년 12월 1일 자 인터뷰 기사에서 당시 우리 사회의 비관적 견해들과는 달리 “우리와 공동보조를 취해오던 일본이 손을 들었으니까 이젠 우리만 벼랑에 몰렸다고 비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반대로 본다. 미국과 일본의 협상 타결로 오히려 우리에게는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미국은 일단 일본을 굴복시켜 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협상하기에 따라서는 부담 없이 한국에 유리한 협상(양보) 카드를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라는 낙관적인 협상 전망을 밝혔다.

12월 1일 오전 10시경, 황인성 국무총리 비서실로부터 전화가 왔다. 총리가 오찬을 같이 하고 싶어 하니 12시까지 총리공관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황 총리와 함께한 자리에는 이기호 총리실 행정조정실장이 배석했다. 황 총리는 아침 조선일보 기사를 잘 읽었다며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협상 전략이 무엇인지 설명해 보라고 했다. “UR 농업협상의 대원칙인 모든 농산물의 예외 없는 시장개방원칙 수용은 이제 불가피하게 되었으며 대통령께서도 결단을 내리셨으니 문제가 없다. 쌀 시장개방을 10년간 유예받는 문제도 한국에 대해 ‘농업 개도국’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 대한 미국 등 관계국들의 양해가 이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별문제가 안 된다. 남아있는 협상은 유예기간 동안 쌀 최소의무수입물량을 얼마로 할 것이냐인데 앞으로 우리가 협상하기에 따라 정부가 정한 3∼5%보다 더 좋은 조건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끌어낼 수 있는 최상의 방안 중 하나는 1995년 개방 첫해부터 처음 5년간(1995-1999)은 0%로 하고, 나머지 5년간(2000-2004)은 1∼2%로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0%가 어렵다고 하면 1%를 제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협상은 장관급 협상으로는 어려우며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미국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클린턴을 설득해야만 가능할 수 있다. 특히 김영삼 대통령이 UR 협상의 성공적 타결을 위해 후보 시절 선거공약으로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겠다고 한 농민과의 약속을 파기하고 쌀시장개방원칙을 수용하는 결단을 내렸으니 최소의무수입물량만큼은 자신의 재임 기간인 처음 5년간을 0%로 동결했으면 한다는 식으로 클린턴 대통령을 설득하면 0이 아니면 1∼2%를 만들어내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나의 설명을 들은 황 총리는 “방금 설명한 내용을 정리하여 대통령 보고 자료를 만들라”고 하면서 “마침 내일 아침 대통령과 주례회동이 있으니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하겠다”고 했다. 나는 이 실장과 같이 ‘대통령 보고 자료’를 만들고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으로 돌아왔다. 퇴근 무렵 이 실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황 총리 뜻이라며 “내일 정부대표단이 제네바로 출발하는 데 나도 제네바로 떠날 채비를 하고 김포공항으로 가서 대기하라”면서 “만일 황 총리 건의를 대통령이 수용하면 대표단과 같이 제네바로 가서 대통령이 언제 클린턴 대통령과 전화 통화하면 좋을지 택일하여 건의하고 기타 협상 동향을 파악 직접 보고하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갑자기 ‘총리의 특명’을 수행하기 위해 UR 정부 협상대표단의 자문자격으로 대표단에 합류하게 되었다.

다음 날 나는 김포공항으로 나갔다. 초조한 마음으로 이 실장의 전화를 기다리는 데 11시경(?) 마침내 전화가 왔다. 이 실장이 “총리 보고에 대해 대통령이 실행하라는 승낙이 떨어졌다며 지시대로 실행하라”고 했다. 그리고 “청와대 박재윤 경제수석비서관이 정부대표단장(허신행 농수산부장관)에게는 대통령에게 보고한 정부 협상 목표는 없던 일로 하고 앞으로 청와대 지시를 받아 협상을 추진한다는 새로운 협상 훈령도 시달했다”고 했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제네바행 비행기에 올랐다. 정부대표단원들은 내가 갑자기 무슨 일로 대표단에 합류하게 되었는지, 무슨 활동을 하는지 몰랐다. 제네바 도착 직후 1990년 UR 협상 참여 이후 지난 3∼4년간 맺은 개인 인맥을 동원하여 정부대표단과는 별도로 UR 협상 동향파악에 나섰으며 수집한 정보자료와 의견은 매일 팩스로 직접 총리실 이 실장 앞으로 보냈다. 보낸 문건은 총리실에서 박 경제수석에게 직접 전달했다. 박 수석은 제네바에 있는 정부대표단장에게 협상 지침을 내렸다. 12.4∼5일간 제네바에서는 한-미 농림부 장관 협상이 3차례 열렸고 한국 입장이 미국 측에 전달되었다. 미국 측은 한국 요구에 난색을 표했다. 박 수석은 정부대표단에 미국 측의 반발에 물러서지 말고 단호하게 맞서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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