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ㆍ독자투고
우농 최양부의 자전적 농정사 <9>민주화·개방화에 대응한 새 도전에 나서다-(13)1989년 6월 4일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로 안식년을 떠나다

[한국농어민신문]

1988년 10월 대통령소속 경제구조조정자문회의 파견업무를 마치고 연구원으로 복귀한 후 21세기 농정보고서를 마무리 지으며 나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탈진한 상태가 되었다. 1979년 1월 경제기획원의 개방농정 발표 이후 10년 가까이 전통적 농경사회가 무너지는 전환시대의 ‘대안 농정’을 찾아 혼신을 다해왔고 새로운 ‘21세기 산업사회 농정패러다임’을 정립하는 일을 마침내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자부심과 보람도 느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상태였다. 그래서 새로운 에너지 재충전을 위해 안식년(安息年)을 갖고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1세기 농정기획반 활동이 마무리되는 1989년 5월 이후가 적당한 때라는 생각을 하고 안식년 휴가준비를 시작했다.
 
안식년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을 정하는 데는 농림수산부 조일호 국장의 권유도 한몫했다. 그는 21세기 농정비전에 대한 농림수산부 내의 비판여론이 비등하다는 점과 내가 책임자로 있는 농어촌지역종합개발연구단 소속 직원의 불합리한 업무추진으로 나의 책임론이 거론되고 있다고도 했다. 나는 1987년 2월 ‘21세기 농정기획반’ 특별작업을 시작하면서 연구단 업무는 모두 수석연구원들에게 위임했는데 문제가 생겼다며 잠시 서울을 떠나는 것도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당시 연구원은 성배영 부원장(1989.9.9.)과 김영진 원장(1990.3.1)의 임기만료가 예정되어있었다. 차기 부원장과 원장 선임을 둘러싸고 나를 포함한 수석연구위원들 간 알력이 생겨나면서 나는 선배들의 집중견제를 받았다. 내가 안식년을 떠난다는 것은 자리다툼에 관심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불필요한 갈등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안식년을 떠나면 30여 명에 이르는 농어촌지역종합개발연구단 직원들의 거취가 문제 되었다. 나의 안식년 휴가계획에 연구단원들이 동요하게 되면서 연구단을 해산하기로 했다. 1985년 9월 14일 출범한 연구단은 3년 4개월여의 활동을 마무리 짓고 1989년 1월 17일 해체하고 연구실체제로 축소 개편되었다. 그동안 연구단에서 나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연구원들은 이용만, 정철모, 이동필, 정기환, 이정(正)한, 박성재, 오내원, 박시현, 김정연, 허장, 윤원근, 이병기, 김경덕, 이정기, 강병주, 남황우, 손익섭, 이광원, 민상기, 김수욱, 이영대. 장우환, 송해안, 이홍렬, 양정묵, 조가옥 등등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연구원 정규직이 되었고, 일부는 대학이나 다른 연구기관으로 옮기거나 학업을 위해 유학을 떠났다. 10여 년이 지난 후 이들은 모두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연구원과 대학 등에 자리를 잡고 우리나라 농촌지역개발연구와 정책을 주도하는 인재들로 성장했다. 연구단은 농촌정주생활권에 입각한 산업사회의 농촌발전전략으로서 농촌지역종합개발방식이라는 새로운 모형을 개발하고 이를 정책화하였으며, 산업사회 농정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등 우리 농정과 농촌발전에 큰 족적(足跡)을 남겼다.
 
1988년까지만 해도 연구원(院)에는 안식년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안식년을 떠나기 위해서는 이 제도를 새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연구원(員)들 대부분이 언젠가는 자신들도 이용할 수 있는 제도라는 점에서 공감하는 편이어서 안식년 제도 도입에 대한 거부반응은 없었다. 나는 연구원에서 안식년제도를 만들어 장기 휴가를 떠나는 첫 번째 연구원이 되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기회가 되면 일본의 농업과 정책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을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농림수산부 공무원들이 일본의 농업정책을 많이 참고하는 등 일본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다행히 당시 나는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아지켄’, IDE, Institute of Developing Economies)로부터 ‘객원연구원’ 초청장을 받아놓고 있었다. 1980년대 초 일본에서 열리는 아시아지역 농촌개발과 농촌공업개발 등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하여 논문발표 등을 하면서 아지켄 관계자들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인연으로 아지켄으로부터 언제든지 편리한 때에 방문해 달라는 초청장(standing invitation)을 받았다. 아지켄은 일본 통산산업성 산하 국책연구소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개도국에 관한 조사연구 등 국제활동을 활발히 하는 곳으로, 특히 영어를 상용화하고 있어 일본어를 모르는 나에게는 의사소통이 편했다. 나는 아지켄에 나의 안식년 계획을 전했다. 1989년 6월부터 1990년 1월 말까지 8개월간 방문하는 것으로 하고, 체재비용 일체는 아지켄이 부담하기로 했다.
 
1989년 6월 4일 나는 1977년 결혼 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 곁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가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아지켄과 협의하여 연구주제를 ‘산업화와 농업의 변혁: 일본의 경험 (Japanese Road to Agricultural Transformation in Industrialization)’ 으로 정하고 8개월간 일본의 경제성장과 산업화, 농업발전과 정책변화 등을 이해하고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한국과 일본이 외형적으로 구분이 어려울 만큼 비슷한 모습이나 역사적으로는 얼마나 다른 경험을 가진 나라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더욱이 일본과 한국농업의 역사적 발전과정의 근본적 차이도 새삼 알게 되었다. 8개월간의 안식년 연구를 마치고 1990년 2월 1일 연구원에 복귀했다. 나라에는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무역협상이란 GATT 발 초대형급 태풍이 몰려오고 있었고, 연구원에는 새로운 도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농어민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관련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