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농 최양부

1992년 8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무역과 환경에 관한 국제세미나’는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세미나는 지구 환경보호를 위한 환경보전형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실천하는 조치들이 앞으로의 농산물무역협상에도 반영되어야 한다며 다음 무역협상은 ‘그린 라운드(Green Round)’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는 특히 네덜란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비료와 농약 사용량을 현재 수준의 절반 이하로 감축하는 환경농업정책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1992년 6월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로에서 개최된 UN 환경회의가 발표한 ‘리우 선언’의 영향으로 환경농업은 이미 세계적 화두가 되어 있었다. UN 환경회의는 리우 선언을 통해 모든 유엔회원국이 농업정책을 환경보호 측면에서 재조명하고 토지자원의 합리적 이용, 토양의 보전과 복구, 수자원 관리, 병충해 종합관리 등 ‘지속 가능한 환경친화적 농업(sustainable, environmentally friendly agriculture)’을 실천할 것을 권고했다. 현대 화학 농업의 자연생태환경파괴를 비판하고 ‘지속 가능한 (생태적) 유기 환경농업’을 세계가 지향해야 할 미래농업의 새 방향으로 제시한 것이다. 국제사회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환경친화적 농업에 대한 관심증대에 고무되어 나는 우리도 이제는 지속 가능한 환경보전형 농업육성을 위한 정책과 제도 도입을 국가적으로 공론화하고 관련 정책을 추진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환경농업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전적으로 우연이었다. 5년간(1972.6-1977.8)의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 준비를 하던 1977년 5월 어느 날 나는 미주리대학교 (콜롬비아) 구내서점을 찾았다. 나는 우연히 보게 된 ‘Radical Agriculture’ (Richard Merrill ed. Harper & Row, Publishers, 1977) 라는 책 제목에 이끌려 그 책을 사 들고 귀국했다. ‘Radical Agriculture’란 ‘본원적 농업’ 또는 ‘농업의 근본’이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 책은 현대 화학 농업의 환경파괴와 대안 농업으로 유기농업 등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을 편집한 책으로 현대농업에 대한 문명적 비판과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는 책이었다. 1962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출간 이후 미국 농학계는 ‘대안 농업’ 연구에 착수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가적으로 식량 증산을 외치던 시기여서 비료와 농약의 과다사용에 따른 환경파괴를 공개적으로 거론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못 되었다. 그러나 나는 우리나라에서도 머지않아 환경파괴문제가 사회 문제가 될 것이란 생각으로 환경보전형 농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992년 리우 선언과 네덜란드 세미나는 잠자고 있던 환경농업에 대한 나의 관심을 다시 일깨우는 촉매 역할을 했다. 나는 우리나라도 환경보전형 농업의 육성 정책도입을 거론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11월 3일 네덜란드 정부 환경농업정책전문가(A.M.W. Kleinmeulman)를 초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최초로 ‘환경보전과 농업발전 심포지움’을 개최했다. 이러한 인연들로 1993년 10월 30일 나는 한살림으로부터 정책토론회 기조 발제자로 초청받았다. 나는 이 기회를 이용 “문명의 전환과 우리 농의 장래: 우리 농의 새 비전을 세우자!”라는 제목의 기조 논문을 발표했다. 나는 발제문을 통해 우리도 이제는 지속 가능한 환경보전형 유기농업육성정책을 추진할 때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나는 ‘안전한 식품과 깨끗한 환경’을 확보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건강한 농업을 위해서는 유기농업과 같은 ‘환경보전형 농업’의 육성을 위한 새로운 정책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책 연구기관의 부원장이란 직책을 가진 사람이 정부의 식량 증산정책에 반하여 비료와 농약을 덜(또는 안) 쓰는 유기, 환경농업을 정책적으로 육성하자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데는 사실 용기가 필요했다. 나의 발언은 환경농업육성정책의 도입을 공론화하는 새로운 전기를 만들었다. 이 일로 인해 나는 박재일(朴才一, 1938-2010) 회장을 비롯한 이상국, 조완형 등 한살림 관계자들과 친교를 맺게 되었고, 1993년 12월 23일 김영삼 대통령 농수산수석비서관이 된 후 한살림과 박재일 회장의 지원을 받아 우리나라 최초로 환경농업정책 도입과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는 ‘환경농업과’ 신설(1994), ‘환경농업육성법’ 제정(1997)과 ‘환경농업단체연합회’ 창립(1994) 등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에 앞서 나는 1993년 8월10일부터 13일까지 농협중앙회 안성교육원에서 “농업무역 혁신과 아시아 농업·농기업의 미래‘를 주제로 아시아농업경제학회 창립기념 제1차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학회에는 차바 차키(Csaba Csaki) 세계농업경제학회장을 비롯한 유지로 하야미(Yujiro Hayami, 일본), 비제이 비아스(Vijay S. Vyas, 인도), H. S, 디론(H. S. Dillon, 인도네시아), 쟈말루딘 슐레이만(Jamallundin Sulaiman, 말레이시아), 료헤이 가다(Ryohei Kada, 일본), 아세니오 발리사칸(Arsenio Balisacan, 필리핀)과 다니엘 섬너(Danieal Sumner, 미국) 등 18개국에서 총 48명이, 국내에서는 김동희 교수(단국대)를 비롯한 50명의 학자가 참석 총 59편의 논문발표를 했다. 처음 개최된 역사적인 아시아농업경제학회 총회에서 김동희 교수가 초대 학회장에 선임되었다. 나는 초대 사무총장에 선임되어 2003년까지 학회 기반을 세웠고, 박성쾌, 최정섭, 정기환 박사가 나를 돕느라 고생 많이 했다. 2008년에는 7대 학회장에 선임되었으며 2011년 하노이에서 학회창립 2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성대하게 개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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