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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愚農) 최양부의 자전적 농정사 <9>민주화·개방화에 대응한-(3)1988년 12월 농협법 개정으로 직선제 조합장, 중앙회장 시대를 열다

[한국농어민신문]

우농(愚農) 최양부

농 협중앙회는 1989년 1월 6일부터 1990년 5월 31일까지 선거관리본부를 설치 운영하고 1989년 3월 7일부터 1990년 3월 31일까지 전국 1636개 조합에서 조합장 선거를, 1990년 4월 18일에는 1465명 조합장 직선으로 초대 직선(민선) 중앙회장(한호선)을 선출했다.


1987년 6.10 시민항쟁과 6.29 대통령 직선제 수용선언(일명 ’6.29선언‘)에 뒤이은 10월 헌법개정으로 이어진 민주화 열기는 마침내 농협 민주화로 이어졌다. 가톨릭 농민회가 1983년 8월 1일 ‘농협 조합장 직선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한 이후 4년여 만인 1987년 8월부터 농협은 자체적으로 농협법 개정 시안을 만들어 정부에 건의했다. 농협은 농민조합원 단체이면서 경제사업체라는 특성을 감안하여 간선제를 선호하나 조합별로 조합원총회의 결정에 따라 직선제와 간선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1988년 6월 15일 농림수산부는 농축수협법 개정 공청회를 개최하고 의견을 수렴하였으나 조합장 직선제를 둘러싼 농협과 농민단체 간의 갈등으로 농협법 개정을 의원입법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8월 6일 야 3당(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개정안 단일안을 마련 국회에 접수했다. 국회는 논란 끝에 12월 17일 농협 조합장은 직선제로, 수협과 축협은 직선제와 간선제 가운데서 선택하도록 하고, 중앙회장은 조합장 직선제로 하며, 1990년 3월 말까지 조합장을, 4월 말까지 중앙회장을 선출하는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정부는 12월 31일 이를 공포했다. 이와 함께 1962년에 제정된 ‘농업협동조합 임원 임면에 관한 임시조치법’이 폐지되면서 26년간 실시되어온 농협 조합장, 중앙회장 임명제는 폐지되었다.

1988년 개정 농협법은 농협운영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중앙회 사업계획 및 예산의 정부 승인제가 보고제로 바뀌었다. 정책 사업에 대해선 농림수산부 장관의 승인을 받는다는 단서가 붙기는 했으나 농협은 자율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조합에 대한 지방 행정기관의 감독권을 폐지하고 농수산부 장관의 조합 감독권을 중앙회장에게 위임할 수 있게 했다. 조합은 대의원총회에서 조합의 예산·결산(안)과 사업계획(안)을 심의 의결할 수 있게 되었다.

농협중앙회는 1989년 1월 6일부터 1990년 5월 31일까지 선거관리본부를 설치 운영하고 1989년 3월 7일부터 1990년 3월 31일까지 전국 1636개 조합에서 조합장 선거를, 1990년 4월 18일에는 1,465명 조합장 직선으로 초대 직선(민선) 중앙회장(한호선)을 선출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한 회장이 마치 1988년 3월 초대 민선 회장에 당선되었고, 농협법도 마치 1987년 10월 헌법개정과 함께 개정된 것으로 말하고 있으나 이는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이는 한 회장 재임 기간(1988.3.22∼1994.3.18)에 대한 잘못된 해석 때문이다. 한 회장은 1988년 2월 25일 노태우 정부 출범 시 초대 농림수산부 장관(1988.2.25∼1988.12.5)이 된 윤근환 당시 농협중앙회장(1982.7.3∼1988.2.25) 후임으로 임명되어 마지막 대통령 임명직 회장을 2년(1988.3.22∼1990.4.17)간 역임했다. 그리고 1990년 4월 농협법 개정에 따른 조합장 직선으로 선출하는 중앙회장 선거에서 초대 직선제 회장에 당선되어 4년간(1990.4.18∼1994.3.18) 회장직을 수행했다. 당시 한 회장은 중앙회장 선거에 다시 출마한 전 농수산부 장관과 중앙회장을 역임한 윤근환 후보와 현직 부회장인 정기수 후보를 누르고 회장에 당선되었다.

1988년 12월 농협법 개정으로 1990년 4월 이후 농협은 직선제 조합장, 중앙회장 시대를 열었으나 농협을 ‘진정한’ 농민조합원의 단체로 탈바꿈하기 위한 농협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나 방안은 없었다. 관제(官制)농협을 민주농협으로 혁신하는 개혁은 조합장과 중앙회장 선출이 직선제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관제농협의 관행이나 정부의 간섭과 통제는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더욱이 농협 민주화의 미래를 결정하는 역사적 전환기에 권위주의 시대 농협 관제화에 앞장섰던 인사들이 농협개혁의 칼자루를 쥐고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적 희극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1987년 10월경 농협중앙회가 주최한 ‘농촌변화와 농협의 역할’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 초청받은 나는 ‘지방화(와 민주화) 시대에 대응하는 농협발전구상’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산업화, 시장경제화, 국제적 개방화, 그리고 지방화로 향하고 있는 국내외 정치경제환경변화 속에서 정부와 농협이 결단하고 실천해야 할 지상과제는 1961년 이후 29년간 농협을 정부 기관처럼 부려온 정부와 농민조합원 위에 군림해온 농협 임직원들이 ‘농협의 오래된 미래’인 ‘농민의, 농민에 의한, 농민을 위한 농협’을 발전목표로 설정하는 진솔한 자기성찰과 분명한 입장표명, 그리고 농협을 농민조합원에게 되돌려 주기 위한 농협 자율화와 민주화를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제시하는 구체적인 ‘농협발전계획’을 수립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농협은 농민조합원의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농민단체이면서 경제사업체’이기 때문에 농민조합원들의 시장교섭력을 강화하여 조합원의 경제적 이익을 증진하는 것이 농협의 기본 사명이라고 했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농협 민주화를 둘러싼 정부와 농협, 농민조합원과 임직원, 정치권과 전문가들의 이해가 충돌하면서 농협의 미래가 요동치고 있었다. 농협을 주인인 농민조합원에게 되돌려 주는 농협개혁에 관한 나의 관심은 그렇게 1987년에 생겨나 오늘까지 32년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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