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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 최양부의 자전적 농정사 <10>우루과이 라운드(UR)농업협상의 최전방에 서다-(1)1990년 7월 5일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듯‘UR 사태’가 발생하다

[한국농어민신문]

1990년 2월 1일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아지켄’)에서 8개월의 안식년을 보내고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복귀했다. 2월 12일 일본에서 정리한 ‘산업화에 따른 일본농업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주제로 세미나를 하는 것으로 연구원 생활을 재개했다. 연구원에는 신임원장 선임을 둘러싼 일진광풍이 불고 지나갔다. 성배영 부원장 뒤를 이은 허신행 부원장이 우여곡절 끝에 김영진 원장 후임으로 3월 2일 선임되고, 3월 14일 나는 부원장에 취임했다. 연구원(員)들은 원·부원장이 연구원 운영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내 인생의 진로를 바꾸는, ‘운명의 과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5월 어느 날 대학 후배인 윤장배 농림수산부 국제농업과 사무관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우루과이 라운드(UR, Uruguay Round) 농업협상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오는 7월 21부터 29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GATT에서 UR 농업협상이 열리는데 협상 참관을 위해 제네바에 가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정부의 UR 농업협상을 지원하는 연구원 부원장으로서 UR 농업협상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고했다. 그는 UR 협상에 관한 나의 관심을 촉구하며 GATT 방문을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UR 농업협상은 내 전공인 농촌개발 분야와는 거리가 먼 국제무역 분야여서 나의 관심밖에 있었고 언론 등을 통해 접하는 상식 수준의 이해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윤 사무관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경험 삼아 참관해 보겠다고 했다. 이날의 ‘우연한 결정’이 내 인생의 진로를 연구자에서 행정가로 바꾸어 놓는 ‘운명의 결정’이 될 줄을 그때는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 무렵까지만 해도 나의 속마음은 연구원 생활을 계속할지에 대한 말 못 할 고민이 있었다. 1988년 서울대학교 농경제학과 교수 채용 공모에 응모했다가 좌절된 이후 학자의 길을 걷기 위해 대학으로 적을 옮기는 것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때 ‘나를 원하는 대학’으로 적을 옮겼더라면 내 인생의 길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주변에는 대학이 내 적성에 더 맞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1990년 7월 5일 국내언론들은 일제히 UR 농업협상위원회 드쥬(Aart de Zeeuw) 의장이 6월 27일 자로 GATT 사무총장에게 제출한 농업협상에 관한 ‘드쥬 의장 초안’을 대서특필했다. UR 농업협상이 드쥬 의장 초안대로 타결되면 ‘쌀을 포함한 모든 농산물의 예외 없는 시장개방과 쌀 수매 등 모든 보조금을 철폐 또는 감축해야 한다’라고 보도했다. 이때 ‘UR 농업협상=쌀 시장개방’이란 등식이 만들어졌다. 농민들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표현처럼 ‘UR 사태’가 발생했다. UR 농업협상 반대시위가 일어나자 UR 농업협상은 순식간에 국정 제1의 정치적 의제로 떠올랐고 ‘UR 정국’이 만들어졌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7월 21일부터 29일까지 정부대표단 (단장, 조규일 농림수산부 기획관리실장)의 자문자격으로 강봉순 교수(서울대)와 같이 제네바를 방문했다. 조일호 농업정책국장, 천중인 농무관, 윤장배 사무관과 김종진 농무관보, 연구원에서는 김한호 연구원이 참가했다.
UR 농업협상 현장을 참관하면서 GATT가 농업부문 협상에 UR 협상의 성패를 걸고 있으며, ‘모든 농산물의 예외 없는 시장개방’을 통하여 ‘농업을 GATT 체제!’로 완전히 편입시킨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워놓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 쌀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았다. 그리고 오는 12월 3일부터 7일까지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GATT 통상장관회의를 개최하여 협상을 마무리 짓는다는 계획에 따라 10월 15일까지 나라별 이행 계획을 GATT에 제출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상옥 주제네바대표부 대사는 UR 농업협상이 이제 본격적인 협상 국면으로 들어섰다며 농림수산부의 각별한 관심과 대책 수립을 주문했다.

나는 UR 농업협상에 대해 비장한 생각을 하며 귀국했다. 7월 30일, 귀국 다음 날, 나는 연구원 간부 회의에서 ‘UR 농업협상 참가 보고’를 했다. UR 농업협상의 긴박성을 알리고 연말까지 ‘UR 농업협상지원 특별대책반’을 구성 운영할 것을 제안하는 한편 농림수산부와 연구인력 지원 등 UR 협상 지원 강화방안에 관한 논의에도 착수했다. 8월부터 부원장으로써 농림수산부와 연구원 간의 UR 농업협상 지원에 관한 가교역할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나는 밀려드는 언론사 인터뷰, 특강 등 외부 요청 때문에 뒤늦게 UR 농업협상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렇게 UR 농업협상에 관한 밀린 공부를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9월 초 어느 날 농림수산부 장관 비서실로부터 전화가 왔다. 장관이 오찬에 초청하니 과천의 한 식당으로 나오라고 했다. 식사 자리에는 이병기 차관, 조규일 차관보 등 농림수산부 간부들도 같이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강보성 장관은 정말 ‘뜻밖의’ 말을 꺼냈다. 강 장관은 “최 부원장이 우리 농민과 농업을 위해 UR 농업협상에 나서주기 바란다”는 말과 함께 ‘UR 농업협상 정부대표단 대변인(speaker)’을 맡아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강 장관은 우리 농정도 잘 알고 농업경제이론에도 밝으며 영어가 되는 전문가를 수소문하다 나를 적임자로 추천받았다고 했다. 장관의 말 한마디에 내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뒤이어 ‘농림수산부 장관자문관(UR 농업협상 담당)’이란 새로운 직함이 나에게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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