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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 최양부의 자전적 농정사 <7>전환시대의 경제 논리와 개방농정을 비판하다-⑨개방농정은 일방적으로 농민 희생만을 강요하는 정책이다

[한국농어민신문]

우농(愚農) 최양부 

비교우위론을 내세워 농산물수입 자유화와 저곡가정책을 추진하는 개방농정은 외환 관리를 통한 물가안정을 위한 것이고 도시 노동자 가구의 생계안정을 위한 것이며 농외소득 증대정책으로 농업소득 감소를 대체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경제 안정화 정책의 사회적 비용을 일방적으로 농업부문으로 전가하고 농민 희생만을 강요하는 정책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연구원’)은 1978년 4월 출범부터 경제기획원(‘기획원’)의 경제안정론자들이 주도하는 ‘전환기 농정’을 둘러싼 기획원과 농수산부 간의 정책갈등에 휩싸였다. 기획원 김재익 경제기획국장과 강경식 기획 차관보, 김만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등 경제안정론자들은 1977년 5월 아시아 농정 관계자들이 참석한 농업정책개발 국제세미나에서 처음으로 비교우위론을 거론하고 1978~79년간 농산물수입자유화정책을 강행한다.

1979년 1월에는 80년대를 향한 새 전략(‘새 전략’)을 발표하고 앞으로 추진할 새 농정의 목표를 주곡자급과 농가소득증대에서 경제안정과 서민생활 보호로 전환하고, 수입자유화를 통한 물가안정을 추진하며 국내농업은 비교우위에 따라 국제경쟁력 확보전망이 없는 밀, 보리, 콩, 참깨, 옥수수, 쇠고기, 분유 등은 개방하고 쌀을 비롯하여 고추, 마늘, 양파, 감자, 돼지고기, 닭고기 등은 선택적으로 육성한다고 했다.

이중곡가제로 누적된 양곡관리특별회계(‘양특’)와 비료 저가지원으로 인한 비료계정 적자 해소를 위해 고미가와 비료 지원정책을 점진적으로 폐지하는 양정 전환, 농업인구감소와 영세농의 전업(轉業), 대규모 기업농 육성과 농업기계화 촉진, 농지 상한제 완화, 농가소득은 농업소득에서 농외소득증대 중심으로 전환 등등 앞으로 추진할 새로운 농정방향과 과제들을 제시했다. 나는 기획원의 새 전략을 ‘개방농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1978년 10월경 개방농정을 체계적으로 연구할 기회가 나에게 찾아왔다. 경제기획원은 개방농정의 핵심정책인 농외소득정책 추진을 위한 농외소득 증대방안 연구용역을 연구원에 의뢰했다. 모두가 부담스러워했고 결국 연구책임이 나에게 주어졌다. 기획원은 1979년 1월 발표한 새 전략에서 수출 확대로 외환이 증가하면서 통화팽창으로 인한 물가상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수출경쟁력 유지를 위해 저임 노동기반인 도시 노동자의 생계 안정을 위한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목표를 설정했다. 기획원은 물가안정을 위해 농산물수입자유화정책과 저곡가정책을 추진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농가의 농업소득감소는 농외소득증대로 보완한다고 했다. 그러나 농산물수입 자유화나 저곡가정책 추진으로 단기적으로 발생하는 농업소득 감소를 중장기에 걸쳐 실현 가능한 농외소득 증가가 피해 농가의 소득증가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나는 이처럼 정책 대상과 시차가 다른 농외소득 증대로 농업소득 감소를 대체한다는 정책 발상은 비현실적이며 단기적으로 농업소득 감소를 대체하는 정책 방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개방농정은 결국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쌀 생산 농가의 경제적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이 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농외소득 증대 정책은 그 자체로서 농촌 지역 균형개발, 농업구조 개선, 농가 소득원 다양화 등을 위해 필요하고 바람직한 정책이란 점을 인정하고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연구원은 1978년 4월 개원 이래 매월 외부 인사를 초청하여 세미나를 개최했다. 1979년 4월 18일 개방농정을 주도하고 있는 기획원 김재익 경제기획국장을 세미나 연사로 초청했다. 그는 세미나 하루 전인 4월 17일 ‘경제안정화시책’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고 그가 주장하는 개방농정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된 시점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세미나는 특별했고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김보현 원장을 비롯한 연구직원 대부분이 참석한 자리에서 그는 개방농정의 본사(本師)답게 개방농정의 당위와 새로운 농정과제를 설명하고 연구원의 이해와 지지, 협조를 당부했다. 세미나는 김 국장이 앞장서서 주도하고 있는 개방농정에 대한 특별교육 시간이었다. 특강이 끝난 후 질의 응답시간의 분위기는 가라앉았고 누구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침묵을 깨고 발언을 신청했다. 나는 김 국장이 주도하는 개방농정은 반 농민적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비교우위론을 내세워 농산물수입 자유화와 저곡가정책을 추진하는 개방농정으로의 급진적인 농정전환은 외환 관리를 통한 물가안정을 위한 것이고 도시 노동자 가구의 생계안정을 위한 것이며 농외소득 증대정책으로 농업소득 감소를 대체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경제 안정화 정책의 사회적 비용을 일방적으로 농업부문으로 전가하고 농민 희생만을 강요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농산물수입 자유화를 급진적으로 추진할 경우 경쟁력 기반이 취약한 국내 농업생산기반 붕괴를 촉진하고 국민 식량의 해외 의존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세추이(與世推移) 할 줄 모르는 젊은 박사의 개방농정 비판으로 세미나장 분위기는 순식간에 경색되었고 김 국장은 불편한 마음으로 서둘러 연구원을 떠났다. 연구원과 김 국장과의 악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1982년 뜻밖에 연구원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유신독재 하 개방농정의 갈등 속에 출범한 연구원은 개방농정을 반대하는 농민단체와 불평하는 농수산부, 예산 당국인 기획원의 틈바구니에서 독자적인 농정 플랫폼을 제시하기에는 아직은 연구 부족으로 역부족이었다. 연구원은 농수산부, 기획원과 청와대, 농민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연구자들은 개인적 견해를 대외적으로 밝히기도 어려웠다. 나는 개방농정으로의 급진적인 농정 전환은 우리 농촌 현실에서 농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나는 개방농정론자들이 비교우위론이란 경제이론을 앞세워 농산물수입자유화정책을 정당화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윤리적으로 정당한지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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