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열린 UR 농업협상 장관급회의는 임시의장으로 스웨덴의 헬스트롬(Mats Hellstrom) 농업부 장관을 선임했다. 회의 참가자는 국가별로 장관이나 대사와 배석자 1명으로 제한했다. 나는 조경식 장관을 수행하는 배석자로 선정되어 장관회의에 참석하여 회의 진행을 모니터하고 필요한 경우 회의 내용을 요약하여 조 장관에게 브리핑하거나 조 장관의 공식 발언을 위한 발언록을 작성하는 등의 일을 했다. 특히 각국 대표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온 신경을 곤두세워 한마디라도 흘려듣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회의는 미국과 EU의 대립으로 교착상태를 해소하지 못하자 12월 6일 오후 헬스트롬 의장이 향후 5년간 농산물에 대한 국내 보조와 수출 보조금, 관세율을 대폭 삭감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UR 농업협정문에 대한 기본합의가 안 이루어진 된 상태에서 드쥬 의장 초안을 전제로 한 품목별 양허 협상을 위한 관세율과 보조금의 삭감목표치를 먼저 제시한 것으로 미국과 케언즈그룹 등 수출국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우리가 의장 중재안을 수용하는 것은 쌀을 포함하여 모든 농산물의 시장개방을 수락하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조 장관의 마지막 발언을 준비하면서 고심했다. 발언 초안을 만들어 외교부와 농림수산부 관계자와 협의했다. 그들은 내가 작성한 초안을 읽어보고 다른 의견제시가 없었다. 조 장관도 발언문 초안을 검토한 후 그대로 수용했다. 12월 6일 마지막 밤 회의에서 각국 대표들은 돌아가며 자국의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했다. 미국을 비롯한 캐나다, 호주 등은 찬성하고 EU와 일본이 반대했다.

조 장관 발언 차례가 되었다. 조 장관은 경상도식 특유의 강한 톤의 영어 발음으로 준비한 발언을 했다. 조 장관은 헬스트롬 중재안이 수출국 위주로 작성되어 균형을 잃고 있으며, 농업의 비교역적 요소 등 수입국 입장은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우리는 수용할 수 없다(We cannot accept...)’라고 강한 어조로 우리 입장을 밝혔다. 조 장관의 발언은 듣기에 따라서는 매우 직설적인 반대 의사표시였다. 그는 한국농업의 어려운 사정을 알리고 쌀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우리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조 장관 발언은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 통상교섭역사에서 미국 등의 입장에 정면으로 반대하여 ‘NO’라고 말한 최초 사례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후 조 장관 발언은 두고두고 인구(人口)에 회자(膾炙) 되었다.
 
1990년 12월의 브뤼셀 UR 장관회의는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결렬되었고, 1991년 초 협상을 재개한다는 일정만 합의하고 끝이 났다. 대표단 협상 평가 자리에서 조 장관 발언이 ‘비외교적인 강경 발언이었다’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이상옥 주제네바대표부 대사는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국제사회에서 우리 입장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제는 우리도 ‘NO’라는 말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라고 뜻밖의 발언을 했다. 이어서 이 대사는 헬스트롬 중재안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천명하지 않으면 회원국들 사이에 우리가 쌀 시장을 개방하는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상황에서 “조 장관의 발언은 잘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가 ‘UR 협상을 결렬시켰다’라는 식으로 우리에게 브뤼셀 UR 협상 결렬의 책임을 전가하고 나섰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브뤼셀 협상 결렬은 “한국, 일본, EU와 같은 국가들의 협상 의사 부재에 기인한 것”이라며 한국을 첫 번째로 언급하며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국내언론들은 부시 대통령 발언을 대서특필하며 조 장관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국내언론들은 협상 분위기에 맞지 않게 우리가 무리하게 쌀 등 농산물 개방 예외를 주장하고 있다는 식으로 우리의 UR 농업협상 전략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정부는 조 장관 발언으로 혹시라도 미국 측으로부터 통상마찰 등 다른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이러한 국내외 분위기 속에서 노태우 대통령은 브뤼셀 장관회의 정부대표단 단장이었던 박필수 상공부 장관을 경질하고, 이상옥 대사를 외교부 장관에 임명했다. 정부는 공석이 된 주제네바대표부 대사 대신 선준영 주체코 대사를 1991년 1월 15일 재개된 UR 무역협상위원회 회의 수석대표로 제네바에 파견하여 미국 대표부 등을 찾아가 우리 정부의 ‘유감’을 전하도록 했다.

정부는 GATT 회의석상에서 NTC 15개 농산물 수도 대폭 줄여 쌀 등 일부 품목만 개방유예를 요청한다고 우리 기본입장을 수정하는 유화적 조치도 취했다. 사실상 쌀을 제외한 나머지 품목에 대한 시장개방 예외요구를 철회한 셈이 되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당시 조경식 장관 발언은 우리 쌀 문제를 UR 농업협상 타결을 위해서는 GATT가 관심 가져야 할 주요의제의 하나로 부각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다. 조 장관 발언은 UR 협상 타결 마지막 순간까지 정부가 쌀을 붙잡고 끈질기게 협상하여 결국 GATT로부터 예외(특례)조치를 받아내게 하는 단초(端初)를 만들었다고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
 
1990년 12월의 브뤼셀 장관회의가 성과 없이 끝나면서 GATT는 협상 전열을 재정비했다. GATT는 UR 협상의 성패를 쥐고 있는 농업협상의 진척을 위해서는 회원국이 합의하는 UR 농업협정문부터 만들어야 했다. 결국 던켈(Arthur Dunkel) GATT 사무총장이 직접 팔을 걷고 나섰다. 던켈 총장은 자신이 농업협상위원회 의장을 맡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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