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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 최양부의 자전적 농정사 <8>산업사회의 새 농정을 설계하다-⑤강진 농촌정주(定住)생활권 개발 기본구상에 도전하다

[한국농어민신문]

우농(愚農) 최양부

나는 농민에게 일상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1일 생활거점인 농촌중심도시(시, 읍, 혹은 면 소재지)와 배후 마을을 통합한 정주생활공간(권)을 농민과 농촌주민 모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자치적 지역사회로 발전시키는 것을 농촌발전 목표로 설정했다.


새 역사는 새로운 도전에서 시작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강진 농촌정주생활권 개발 기본구상(‘강진구상’)을 위한 연구팀은 농촌개발연구의 새 역사에 도전하기 위해 다산(茶山) 정약용이 18년간 강진 유배생활 중에 기거한 다산초당에 모였다. 37년 전인 1982년 4월 초의 일이다. 우리는 다산이 조선의 3농(農)(민, 업, 촌) 문제 해결을 위해 정조(正祖)에게 ‘농정소(訴)’를 올리는 등 정책방안 마련에 고심했던 역사를 상고(尙古)하고 ‘다산에게 부끄럽지 않은 농촌발전전략을 세우자!’라며 결의를 다졌다. 우리는 그해 강진을 붙잡고 정말 뜨겁게 강진을 누볐다. ‘강진구상’에는 이용만, 정기환, 김수욱, 이동필 등 5명의 연구원과 지역개발을 공부한 정철모, 강병주, 손익섭, 남황우, 강철기 등이 참여했으며 중반쯤 새로 박성재, 오내원이 합류했다.

나는 2000년대를 향한 복지농촌건설을 위한 새로운 농촌발전전략을 세우는 출발점으로 ‘정주선호가설’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인간은 일정한 장소에 거처를 정하고 살며, 그들이 정주하는 생활거점으로부터 최소한의 일상생활 활동반경(대략 16km 정도)으로 형성되는 정주생활권 내에서 그들의 인간다운 삶의 영위에 필요한 기본수요를 충족하기 바란다’라는 작업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농민에게 일상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1일 생활거점인 농촌중심도시(시, 읍, 혹은 면 소재지)와 배후 마을을 통합한 정주생활공간(권)을 농민과 농촌주민 모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자치적 지역사회로 발전시키는 것을 농촌발전목표로 설정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농촌개발의 새로운 발전과제로, 첫째는 1960~70년대 식량 증산을 위한 농업개발중심에서 농업과 농산물 가공 등 2, 3 차산업을 포함한 농촌산업경제 개발로, 둘째는 마을환경개발 중심에서 농촌중심도시와 배후 마을을 통합한 정주생활권 개발로, 셋째는 농가소득증대 중심에서 농촌주민의 사회복지개발로 전환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전략과제별 사업들을 종합한 중장기(5개년)개발계획과 투자계획을 수립하고 자율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것을 주장했다.

나를 포함하여 연구진 모두에게 지금까지 농민과 농가와 마을, 혹은 농업과 쌀만을, 또는 주택, 도로, 교육, 문화 등 부문별로 기능적으로 분해하고 해체하여 특정한 품목이나 사업만을 중심으로 농촌개발을 생각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이들 모두를 포함한 강진이란 농촌지역을 유기적으로 통합된 하나의 정주생활공간(권)이며 자치적 지역사회로 인식하고 발전의 미래상을 그리는 일은 그 자체가 새로운 도전이었다.

우리는 강진이란 농촌지역의 경제사회와 문화, 행정과 정치 등 강진의 속살을 보기 위해 강진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관계기관을 방문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강진의 지리와 자연환경적 특성, 부존자원 등을 각종 통계과 문헌을 통하여 조사하였으며, 강진주민들이 이루어 놓은 역사와 문화의 숨결을 느끼면서 오늘을 사는 그들이 바라는 강진발전의 미래상을 다양하게 듣고 정리했다. 강진사회가 당면한 문제와 강진사람들이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주민개발수요를 조사하고 주민공청회를 열어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그들의 관점에서 개발사업을 선정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연구팀들은 4월부터 10월까지 7개월여간을 강진 현장에서 보냈다.

나는 강진 구상을 위해 연구진을 7개 부문으로 구분하여 자신들의 전공과 취향에 따라 담당하도록 했다. 즉 강진 정주체계와 기반조성(강진읍과 마량, 병영, 성전, 도암 등 중심지와 마을 등), 생활환경개발(주택, 상하수도, 도로, 교통, 통신과 공원, 하천 정비, 환경보전 등), 산업경제개발(농가소득, 경제 작물 재배확대, 축산과 수산, 농업용수, 경지정리, 농업기계화, 광공업, 산지개발 등), 문화진흥(향토문화, 청자문화와 다산유적 정비 등), 관광개발(주요 관광거점개발과 관광망 구축 등), 교육 인력개발(유아, 초, 중, 고등학교 시설정비와 농촌인력개발 등)과 사회복지증진(의료와 영세빈곤층 생활 안정, 사회복지시설 확충 등) 등으로 나누었다. 나는 기본구상(주민개발수요, 인구 및 경제성장 목표, 개발목표와 개발과제 선택)과 추진전략을 맡아 강진구상 전체를 기획하고 7개 부문 계획을 총괄적으로 조율했다.

11월 초부터 나는 연구진들이 현장조사와 토론을 통해 지식과 정보와 생각을 공유하는 집단창작과정을 거쳐 작성한 부문별 보고서 초안을 통합하는 종합보고서 작성을 시작했다. 방대한 분량의 원고를 모두 살피고 다듬고 고치고 자르고 붙이는 편집작업 모두가 내 몫이 되었다. 나는 작업의 무게뿐만 아니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국토개발연구원이 수립한 개발계획과는 수준이 다른 농촌전문가다운 계획을 수립했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밤잠을 설치곤 했다. 나는 원고 보따리를 싸 들고 조용한 여관을 정하고 오직 보고서 집필에만 몰두했다.

한 달여의 여관 작업 끝에 나는 ‘2000년대를 향한 농촌 정주생활권개발 기본구상: 전남 강진권 사례 연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완성했다. 지금까지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과 정책대안을 담은 강진 보고서는 내무부를 비롯한 관계 전문가들로부터 산업사회 농촌지역개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 때문에 연구원은 계속해서 경기도 안성군(1983), 경상남도 고성군(1983~84) 정주생활권 개발계획을 수립하면서 자타가 공인하는 농촌개발 연구와 계획수립 전문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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